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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린 Jul 23. 2023

아들의 수학 과외 선생님이 보트에 산다.

틀을 깨는 재미

오늘 아들의 수업은 선생님 집에서 받기로 했다. 

아무 이유없이 갑자기 선생님이 어디 사는지 구경해보고 싶었다. 프랑스에 정착하고, 여기서 은퇴한 전형적인 영국인 할아버지는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다. 

 

주소를 받아서 내비게이션을 따라 간 곳은 센느강변의 보트하우스 밀집 지역. 

나는 포커페이스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반쯤 놀라고 반쯤은 의구심에 가득한 눈, 그리고 웃으려고 노력하는 입으로 말을 했다. 좋은 풍경의 집에 사는구나.  

"Oh, You live in boathouse with beautiful scenery"


구경을 시켜준다고 했다. 

아슬아슬해 보이는 난간의 다리를 지나서 보트 하우스로 들어갔다. 

거미줄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었다. 

거실은 바람과 비, 햇빛을 여과없이 느낄 수 있게 시원한 야외에 있었다. 역시 곳곳에 거미줄과 먼지가 그득했다. 


선장실은 용변을 보는 화장실과 화구 1개짜리 간이 주방으로 개조되어 있었다. 화장실 타일은 유명한 누군가가 만든 것으로 꾸민 것이라고 했다. 아직 놀라있던 터라, 타일의 아름다움을 다 느낄 수 없었다. 

 

갑판에 샤워부스를 설치해놨는데, 천장이 없다. 

하늘과 구름 아래에서 씻어야 한다. 겨울에는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물이 따뜻하니 샤워할 때는 좋다고 한다. (프랑스의 겨울은 0도 아래로 내려가는 일이 거의 없다) 다 끝난 뒤, 수건으로 빨리 닦고 옷을 빨리 입으면 괜찮다고 한다. 

나는 절대로 여기서 못 살 것 같다. 


그렇게 보트하우스 투어를 마치자마자 남편에게 사진과 문자를 남겼다. 

"태윤이 수학 과외 선생님이 보트에 사네???" 

반응 역시 놀라웠다.  

"와우. 나중에 놀러간다고 해. 태윤이 낚시도 좋아하니 잘됐다" 

물음표 세 개 해석이 안되었을까. 


이 분은 세계 탑10으로 꼽히는 영국계 사립 학교 선생님으로 정년퇴임까지 했다. 온화하고 신사적이며, 차를 한 잔 내줘도 감사하다고 진심으로 인사하는 사람이다. 자녀들도 근처에 살고 있다 그랬고, 유럽 다른 곳으로 종종 여행도 간다. 그래서 솔직히 나는 우리와 비슷한 환경에서 살면서 분위기만 영국풍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게다가 보트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아파트/주택과는 비교가 안되게 열악한 환경인데 보트에 살기로 결정을 할 때는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주식을 하다가 돈을 다 날렸나, 부인이랑 이혼할 때 위자료로 다 내줬나, 우리의 과외비로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 수준인걸까, 사실확인도 못할 거면서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보트가 좋아서 여기 살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 선생님이 어디에 살든 본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것이지. 

그런데, 아이의 수업을 맡겨도 되는 것일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대치동의 사무적이고 현대적인 인테리어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보트 하우스를 예상한 것도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남편은 이에 대한 의심 한조각 없이 놀러간다고 얘기를 해보자고 순진하게 답을 하니 처음에는 기가 막혔다. 아이 수업하는 동안 근처에 장을 보러 갈 계획이었는데, 예상을 뒤엎는 상황에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근처 타박(tabac - 간단한 안주거리와 술, 담배 등을 파는 가게로 프렌치들이 동네 마실처럼 가는 곳)에 앉아 생맥주 한 잔을 들이켰다.   


나는 의심이 많다. 남편은 걱정이 없다. 희안한 조합이고, 수 년간 참 안 맞았다. 나의 이 성향이 어디서 왔나 생각해봤다. 아빠는 의심이 많은 편이다. 아마도 직업의 영향이 클 것이다. 내가 처음 해외 여행을 갈 때, 대한민국 영사관/대사관 번호를 외웠어야 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어떤 선택을 할 때, 최악의 경우를 늘 생각해서 대비해야 한다고도 배웠다. 모험보단 현상 유지를 더 선호하신다. 그래서인지, 나도 타인을 잘 믿지 않고, 성악설에 더 무게를 둔다. 또, 사소한 물건 하나도 잘 잃어버리지 않는다. 


반면, 남편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마음을 여는 스타일이다. 금방 사랑에 빠지는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물건도 자주 잃어버린다. 지갑부터 결혼반지까지. 처음엔 격노했지만, 이젠 비싼 물건을 사주지 않는 것으로 위안 삼는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만취하면 유체가 이탈해서 본인 몸뚱아리도 잃어버리는 것 같다. 자유로운 영혼이라 그런지, 이해 안가는 부분도 분명 있지만, 틀에 갇혀 있지 않고 유연하다. 


수업을 마치고 온 아들에게 물었다. 선생님 집 어땠냐고. 아들은 우리집 보다 좋다고 했다. 약간 충격을 받은 나는 되물었다. 왜?. 더 집중이 잘 된다고 한다. TV도 없고, 강물 소리 들으면서 앉아있으니 그럴 법도 하다. 


나와 전혀 다른 이 두 사람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자니, 처음의 의심은 사라지고 기분이 살짝 좋아졌다. 나와 달라서 다행이다. 다 같이 의심의 구렁텅이로 들어갈 일은 없겠구나. 우리가 서로 다르니 균형을 맞춰나가기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틀에 갇혀 생각하고 행동하는 스스로에 대해 알아차리니, 다 고쳐진 것이 아니더라도, 좋다. 마흔이 넘도록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좋다. 너무나 불완전하지만, 내가 누구였는지 누구인지 아는 기쁨이, 좋다. 



선생님 집(보트하우스)으로 들어가는 입구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응접실


햇빛, 비, 바람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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