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중심가에 유명한 일본 라멘집이 있다. 늘, 가게 앞에는 최소 20~30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있고 창 안으로 보이는 가게 인테리어는 실제 일본 수산물 시장에 와있는 양 생동감이 넘쳤다. 프렌치의 일본 사랑은 대단하다. 맛집부터 예술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더구나 맛집과 예술은 프렌치가 일가견이 있는 분야가 아닌가.
이렇게 까지 매일같이 줄을 서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이 들었다. 구글 평점이 좋고, 인스타그램에서 검색도 많이 되는 집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세 번이나 왔었는데 최소 1.5~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그냥 돌아가거나 차선책을 택해야 했었다. 세상 쓸데없지만, 도전 의식이 고개를 들었다. 머지 않은 미래에 꼭 먹어보리. 이렇게 까지 맛집에 공을 들일 일인가, 싶다. 파리의 물가는 높고, 외식비는 특히 높은 편이다. 미슐랭 레스토랑처럼 '이걸 먹어도 되는 걸까' 싶도록 예쁘고 맛난 음식도 많지만, '이 돈이면 내가 평소에 사고 싶던 모자를 샀겠다' 싶을 정도로 비싸지만 맛없는 음식점도 많다. 그래서, 진짜 맛있는 집을 발견하면 꼭 확인해보고 싶고, 직접 확인하면 아끼게 되는 것이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이 날은 오후 5시에 이 라멘집에 도착이 가능했고, 프렌치는 8시에 저녁을 보통 먹으니 길게 기다리지 않더라도 먹을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오늘이야말로 드디어 맛을 보는 날이라며 남편이 주차하는 사이 나는 130일 된 둘째를 아기띠에 태운 후, 아직 성하지 않은 무릎을 바삐 움직여 다다다다 달려갔다.
웨이팅 리스트를 걸어 놓으니 예상 대기 시간이 5분에서 18분으로 나온다. 4번의 방문 중 오늘의 줄이 가장 짧다. 보람이 있다. 이 정도면 기다릴 만 하다, 라고 자기 최면을 걸면서 온 가족이 기다리기 시작했다. 잘 하면 5분이면 된다. 주차하고 걸어오는 남편과 첫째에게 전화까지 걸어 빨리 뛰어오라고 재촉했다. 곧 들어간다!
파리 레스토랑은 대부분 공간이 매우 좁다. 다닥다닥 붙어앉는 경우도 많고, 겨울은 외투를 벗어놔야 하니 만석인 곳에 가면 외투를 이고지고 먹어야 하는 수준이다. 이렇게 좁다보니, 2인 자리 위주로 구성한 레스토랑이 많다. 우리는 4인 가족. 분명, 우리가 첫 번째 대기자인데, 자꾸 다른 사람들이 내 눈 앞에서 먼저 들어간다. 한 팀 정도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순서를 지나쳐서 사정을 봐줬겠지. 또 한 팀이 우리 보다 먼저 들어간다. 우리가 첫 번째 대기자인데. 도끼눈을 뜨고 종업원에게 상냥하게 질문을 한다. 내가 첫 번째 대기자인데 왜 다른 사람들이 먼저 들어가는 것일까? 종업원은 건조하게 대답한다. 4명 자리는 좀 더 기다려야 한다. 2명 자리라서 먼저 간 것이다. 파리의 겨울은 극한의 추위가 없다고는 하지만, 쌀쌀한 바람이 부는 겨울 30분 넘게 서 있으면 배가 더 고파지기 마련이다. 12살 첫째는 이왕 이렇게 된 거, 라멘 두 그릇을 먹어야겠다고 한다. 나도 라멘에 에피타이저까지 먹어야겠다고 했다. 다음에 또 여기서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지 않으니 오늘 먹어보고 싶은 것은 다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4명 자리가 났고, 이게 뭐라고 설레임을 안고 자리를 잡는다. 라멘 한 그릇과 물잔 하나 내 앞에 딱 놓으면 다른 접시는 놓기 어려운 초밀집 테이블들이 좁게 배치되어 있었다. 아직 키가 70cm 정도인 두찌는 테이블 한 쪽 구석을 내어 재웠다. 모든 의자는 등받이가 없고 엉덩이를 다 커버하지 못하는 스툴이라서, 엉덩이 면적의 반을 겨우 의자에 걸친 채, 외투는 벗어서 무릎 위에 올려놨다. 라멘을 흘리면 안되는데, 걱정하면서 손으로는 외투가 땅에 끌리거나 떨어질까 꼭 잡고 있었다.
기다린 오기가 있지, 첫째는 결심대로 두 그릇을 시키고, 나는 라멘과 오픈만두 그리고 생맥주 한 잔 시원하게 시켰고 들이켰다.
이날, 네 번째 방문해서 추운 겨울 밖에서 40분 기다려서 겨우 먹은 라멘은 절반의 실패였다. 맛은 분명 꽤 있다. 보통 라멘집은 돼지고기나 닭고기 육수를 쓰지만, 이 집은 특이하게도 생선 육수를 쓴다. 전혀 비리지 않고 고명으로 올라간 정어리와 계란과 고기는 알맞게 딱 요리하고 익혀서 국물과 면과 잘 어울렸다. 맥주도 신선하게 잘 관리한 흔적이 역력했고, 오픈 만두도 다른 곳에서 먹어보기 힘든 독특한 이 집만의 좋은 메뉴였다.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할 일은 아니었다. 짭짤한 국물이 술술 넘어가길래 국물까지 싹 비웠더니 나는 그날 바로 2kg가 쪘다. 즉각적인 자극을 좋아하는 나의 몹쓸 목구멍을 원망했다. 보복소비를 했더니 라멘을 먹고 85유로 (약 11만원)을 냈다. 이렇게까지 내고 먹을 일이었을까. 추운 밖에서 오들오들 떨었더니 피곤해서 할 일도 다 못하고 밤에 쓰러져 잤다.
단 한 가지. 예상치 못한 소중한 것을 배웠다. 매몰 비용 오류.
추운 데 밖에서 30분 이상 기다리다 보니, 여기서 이걸 멈출 수 없다 하여 기어코 더 기다리고, 일견 억울한 마음에 평소보다 더 먹어버려서 살찌고 많은 돈을 내는 오류 덩어리가 된 것이다.
평소에는 세상 똑똑한 척은 다 하면서, 흔하디 흔한 매몰 비용 오류에 빠진 것은 이미 살 찌고 돈 쓴 뒤에 깨닫는다. 우둔함에 종종 빠지지만, 그래도 어서 알아차리고 빠져 나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