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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린 Mar 02. 2024

이야기가 있어야 끌린다.

퐁피두 미술관

위대한 예술 작품은 좀처럼 여행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어쩌나. 내가 가서 봐야지.


예술 작품을 도록으로 보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다르다. 엄청난 자연 경관을 직접 가서 보는 것과 비슷하달까. 

예술 작품은 가까이서 보면 작가의 서명부터 세밀한 붓터치까지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정말 내가 좋아하는 느낌은 바로, 예술 작품을 직접 보면 작가의 고통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작가의 고통을 통해서, 내 삶의 고통이 위로 받는 느낌이다. 

당신도 힘들었구나, 나도 그렇다. 

그런데, 당신은 힘든 걸 이렇게 아름답게 승화했구나, 하면서 먹먹하기도 하다. 

미술에 문외한이라, 이런 느낌이 나 혼자만의 착각은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며칠 전 윤여정 선생님의 영상을 보고 동지를 얻은 듯 했다. "배고플 때, 절실하게 할 때, 진짜 예술이 나온다. 미술 작품도 그렇지 않냐고. 화가가 진짜 어려울 때 절실하게 그린 작품들에서 대작이 나온다고."  




먹고 살기 위해서만 산다면, 생은 고역이다. 몸뚱아리에 의식주를 채워 넣기 위해서 돈을 벌고 옷을 사고 장을 보고 요리를 한다면, 인생에서 의미를 발견하기 어렵다. 비록 나는 오늘도 이 글을 쓰기 직전, 의식주를 해결하려 기계적으로 밥을 하고 옷을 껴입고 퀀트 투자를 했지만 말이다. 정한 기준에 따라 매수 매도를 누르고 자산을 계산하고 나면, (요즘 장이 좋으니) 3초 정도는 기쁘다가 곧 무력감에 빠진다.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

배곯지 않고 사는 것이 참 감사한 일인데, 그러다 보니 더 의미 찾기 같은 노력에 자꾸 관심이 간다.  


그런데, 예술 작품에는 고역인 삶에서 작가만의 길을 내는 노력이 담겨있다. 어떤 노력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어떤 노력은 경쾌하다.



초창기 샤갈의 그림은 우울하기 짝이 없지만, 그래서 더 정이 간다.  

젊은 샤갈이 처음 파리에 도착했을 때는 경제적으로 어렵고, 그래서 우울하고 힘들었다고 한다. 암울하고, 어둡다. 부푼 꿈을 갖고 어렵게 파리에 입성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현실. 내일이면 인정받을까, 하루가 일 년 같았을 것이다. 신에게도 의지해보지만, 종종 천길 낭떠러지에 떨어질까 무서웠을 것이다. 우리가 하는 걱정의 90%는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 걱정은 지킬과 하이드처럼 우리 안에 늘 존재하고 있다. 딱 지금의 나와 같다. 샤갈, 당신 참 마음에 든다.

     



그러다 그는 점점 유명해지고 성공 가도를 달린다. 


이제 그의 그림들은 꿈을 꾸는 듯, 환상적이다. 동화책의 삽화 같이 가볍기도 하지만, 샤갈이 꿈꾸던 세상에 대한 열망이 명확히 드러난다. 

성공한 사람 특유의 가볍지만 자신감 있는 터치. 하지만, 중간중간 드러나는 왜곡된 형태로 보여주는 삶의 어두운 측면들.







샤갈은 장수했다. 오래 살았고, 끊임없이 작품을 그렸고, 명성을 얻었고, 파리 시내의 오페라 가르니에의 디자인도 맡았다.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언젠가 능력이 된다면, 샤갈의 그림을 사서 내 서재에 떡하니 걸어놓고 싶다. 

(샤갈은 다작을 했기 때문에 아주 비싸지 않은 그림도 꽤 있다. 여전히 나에겐 비싸지만 말이다) 


고통스럽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나의 시간이 온다는, 샤갈의 기운을 받고 싶달까.  

미래의 내 서재에서 샤갈의 그림은, 산다는 것은 고통과 환상이 공존하는 것임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힘들 때는, 밝은 면을 보라고 그럼 기쁜 날이 올 거라고 이야기해주는 역할도 할 것이다. 

무엇보다, 너는 지금 이야기가 있는 삶을 쌓고 있는 중이라고 말해줄 것 같다. 

이어령 선생님께서 가장 부유한 삶은 이야기가 있는 삶이라고 했듯이, 너는 지금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음을 일깨워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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