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린 Dec 07. 2023

잘 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France Bizot | Backlash

파리의 올해 11월엔 유독 비가 많이 왔다. 인스타그램에서는 우비 광고가 연신 떴고, 외출만 했다 하면 신발이 젖어 장마도 아닌데 장화를 신어야 하나, 고민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햇빛도 없고 추적추적 비가 오는 이런 날씨에는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가면 적은 돈으로도 따뜻하게 호사를 누릴 수 있다.   


11월 9일, 이날은 France Bizot 화가의 개인전 오픈 첫 날이었다. 이름이 France 이다. 그렇지, 프랑스인 Bizot 이라면, French Bizot이라고 했겠지, 하면서 피식 웃어본다. 게다가, 국적에 대해서는 굳이 먼저 말하거나 내세우지 않는 것이 다민족국가의 기본 예의다. 순간 헷갈렸던 나를 일깨우고 전시를 구경한다.


2시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우리는 2:10경 도착했는데 이미 꽤 많은 작품들이 판매되어 빨간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그녀는 폴라로이드 형식을 자신만의 캔버스로 주로 삼는 작가였다.

파스텔톤의 엿보는 듯한 상황의 그림들.

입술이나 악세사리에 포인트를 주는 색감들.

도도한 표정과 잘 정돈한 헤어스타일.


세련되고 패셔너블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게 아니라 그녀는 광고계에서 일을 오래하고 은퇴해서 작가가 된 것이라고 한다. 글을 쓸 때도 그렇지만, 그림도 관람객들을 설득하는 창작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설득에 필요한 3가지 요소가 그림에도 적용되는 것이겠지.


파토스 (감성): 창작물에서 표현하고자 한 감성, 감정.

로고스 (이성): 논리, 말이 되는 흐름.

에토스 (인성): 창작물을 만든 사람이 걸어온 길, 철학, 인생.


그녀가 소비를 촉진하는 최전선인 광고 업계에서 일했던 삶의 궤적이 작품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디지털 카메라가 나오기 전, 폴라로이드로 모델의 포즈와 느낌을 확인하던 그 시절부터 일을 했었을 그녀. 여러 폴라로이드를 벽에 잔뜩 붙여 놓고 좋은 포즈와 표정을 골라 그 느낌을 다시 모델에게 되살려 달라고 주문한 뒤, 최종 작품을 뽑아냈을 그 시절 그 과정들.


폴라로이드는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찰나를 탁 잡아서 손에 물리적으로 쥘 수 있는 이미지로 만들어낸다.

폴라로이드는 하얀 테두리 안에 담겨서 이미지가 더 부각되는 장점도 있다.

찍고 나서, 몇 초 간이지만 필름만 쳐다보고 있어 길게 느껴지는 그 시간을 기다려야 겨우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 애태우는 - 매력도 있다. 화질이 아주 뛰어나지 않기 때문에 새빨간 입술 같이 하나의 요소가 강조되면 시선을 끌 수 있는 폴라로이드의 특성.


그렇게 폴라로이드 형식은 그녀가 수십 년 간 일했던 그 경험들과 감성을 작품에 녹여내기 좋은 틀이 되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씩 가는 미술관이 아니라면, 평일의 나는 두 아이를 타국에서 키우느라 하루가 짧은 엄마이자, AI와 사람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연구자다.

생성형 AI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연구하다보면, 흥미롭기도 하지만 무섭기도 하다.


우리는 모른다, 지수 함수처럼 빠른 속도로 능력을 키워가는 생성형 AI가 어디까지 발전하고 어디까지 우리를 대체할지에 대해서 말이다.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설문 조사도 생성형 AI를 사용해서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고, 실제 사람 대상 조사한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머지않아 조사 회사를 대체할 수도 있겠지. 생성형 AI를 잘 쓰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결과물도 좋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어쩌면 사람 선생님보다 더 종합적으로 잘 가르치고, 무한 인내심을 갖고 사람이 틀린 부분을 고쳐줄 수도 있다.

정확히는 몰라도 위협적인 존재임은 분명하니, 소비자들의 반응에도 생성형 AI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이 깔려있다. 일부 분야에서는 사람보다 더 잘 진단하고 분석하는 생성형 AI임에도, 사람들은 아직 사람 만큼의 신뢰를 보내지 않고 있다.


AI가 사람만큼 잘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하지만, 사람은 prompt 입력만 하고 AI가 만들어내면 더 좋을까?

아닐 수도 있다.


의미 없이 복제되고 부지불식간 표절해서 만든 수많은 창작물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한 SF 소설 공모전 주체측은 폭발적으로 증가한 표절물들을 발견하고, SF 소설 공모를 무기한 연기에 들어갔다. 일본의 한 대학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에 존재하는 데이터 중 AI가 만들어낸 창작물의 비중이 높아질 수록 전체적인 품질은 떨어질 거라고 한다. 즉, 사람이 만들어내는 창작물이 끊임없이 높은 비중을 차지해야, 전체적인 순방향의 발전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일을 어디서 부터 어디까지 대체할지도 지금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마주칠 세상은 현재로선 전혀 예측이 안되고, 그렇기에 어떻게 키우는 것이 맞는지 더 고민하게 되기도 한다.


France의 작품들을 보면서 더 생각해본다. 로봇 팔을 갖고 생성형 AI를 두뇌로 쓰는 존재에게 작가의 의도를 입력하면, France가 만들어낸 유화와 부조를 만들어낼 지도 모르겠다. 그럼, 사람은 존재의 의미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고리타분하게도 24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의 3가지 요소에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세 가지 중, 으뜸이라면 에토스를 꼽고 싶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AI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창작물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는 사람이 살아온 과정과 자신만의 철학(에토스)에 기반해야 다른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에토스가 없다면, AI가 무한 복제할 수 있는 결과물과 다른 의미를 갖기 힘들다. 우리는 창작물을 볼 때, 만든 사람도 같이 본다. 도대체 누가 만들었나, 그 사람은 어떻게 살았고 살고 있나.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것 말이다. 도둑질을 하면서 정의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청산유수로 말하고 쓴다 하더라도 우리는 설득당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람과 그 사람의 창작물이 얼마나 일관되고 어울리는지 느낄 수 있다. 직감을 가진 사람이니 말이다.  

에토스가 탄탄해야, 그 에토스를 바탕으로 한 로고스(논리)를 만들 수 있다. 아직 온라인상에는 데이터화 된 적이 없는 논리라도, 나만의 에토스를 바탕으로 논리를 만들 수 있다.

또한, 나만의 삶을 개척하면서 생긴 고유의 파토스(감성)가 다른 사람들을 감화 시키거나 설득할 수 있다. 내가 겪었고 이겨냈다, 라는 이야기가 갖는 단점도 물론 있다. 섣부른 일반화나 과장, 허풍, 과거에 대한 미화로 인한 왜곡 등, 안 좋은 점도 있다. 그러나, 담백하되 충분한 성찰을 통해 흘러나오는 로고스와 파토스는 조합된 정보가 갖지 못하는 힘이 있다.     


몇 줄 입력해서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그럴싸하지만 정말) 잘 조합해 내놓는 결과물과 차별화되려면, 이 방법 밖에 없다.  



Made by.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졌는지는 늘 중요했다.

우리의 선택은 다면적이다. 우리는 선택할 때 선택지 안에 담겨있는 이야기도 같이 본다. France의 작품이 전시와 동시에 흥행에 성공한 이유, 생성형 AI에 맞서 창작자가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동시에 생각해볼 수 있는 그런 전시, 하루였다.


Backlash 사무실에 걸린 한국인 작가의 그림. 생명력을 중요시한다는 작가의 힘과 에너지가 느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과거의 나를 깨부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