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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성빈 Just Seongbin Jun 29. 2022

[전시] 이안 쳉의 라이브 시뮬레이션

리움미술관 [세계건설 : WORLDING]전 작품 보기


 리움 미술관에서 미국 출신의 뉴미디어 작가, 이안 (Ian Cheng) 아시아  개인전 [세계건설 : WORLDING] 하고 있다. 요즘에는 비판적인 시각보다기술이나 디지털 생태에서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에 눈이 간다. 전시 관람을 유희적 놀이로 느낄지언정 괜찮은 여가생활로 생각했었지만 요즘엔 예전 같지 다. 이것도 시대정신이려나.


 전시는  5 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보는데 1시간 30 정도 소요된다.  글에서는 작품에서 느낀 단편적 감상과 그것과 연결된 흥미 위주로 기록하기로 한다.



사절 시리즈 : 완전한 종결이 없는 라이브 시뮬레이션(Live Simulations)


 이안 쳉(Ian Cheng)은 라이브 시뮬레이션(Live Simulations)이라는 그만의 미디어 형식을 통해 내러티브를 전달한다. 라이브 시뮬레이션은 게임 제작에 사용되는 유니티(Unity) 게임엔진과 인공지능(AI)을 연계해 가상 생태계를 만든다. 아래 세 가지 이미지들은 그의 대표작인 사절 삼부작(Emissaries trilogy, 2015-2017)인데 그 소개에 러닝타임이 infinite라고 쓰여 있다. 단순히 같은 영상의 반복이 아닌, 특정 알고리즘에 의해 작가가 최초로 생성한 가상공간 안에서 대상들이 서로 소통하고 관계를 만들고 그 안의 세상을 바꿔간다.


Emissary In The Squat Of Gods, live simulation and story, infinite duration, 2015
Emissary Forks At Perfection, live simulation and story, infinite duration, 2015-2016
Emissary Sunsets The Self, live simulation and story, infinite duration, 2017


 이안 쳉의 사절은 그가 구축한 세계관이 있고 그 세계 안에서 ‘사절(emissary)’이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며 다른 대상과 환경에 비선형적으로 반응하며 끊임없이 변한다. <사절> 시리즈의 세상을 들여다보는 카메라 앵글 또한 쉼 없이 바뀌며 사절의 세상을 3인칭 시점, 그 세상에 속해 있지 않은 관찰자의 시점으로 보여준다. 작가의 세상 속 대상들은 서로 스치듯 만나 관계 맺고 그 사이의 새로운 데이터를 만들어 현재 이후의 미래에 새로운 움직임과 반응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예술가는 대상들이 서로 조응하는 방식과 방향은 정할 수 있지만 그 결과는 작가 또한 알지 못한다. <사절> 시리즈의 재생 시간이 무한(infinite)인 이유 또한 한번 일어난 일이 똑같이 다시 반복되지 않음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는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처럼 매 순간 새로운 미래를 갱신하는 사절의 시간은 끝없이 나아가는 현실의 시간을 닮은 동시에 관람자와의 동일시를 방해해 그가 구축한 세상에서 한걸음 떨어져 보게 한다. 바로 세 개의 연작 모두 버드 아이 뷰(bird eye view)로 세상을 보여줘 전지적 관찰자이자 신(god)의 시점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관람자에게 주어진 이런 시점은 몇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먼저, 마치 컴퓨터 게임인 심즈(Sims)와 같이 세계와 도시를 만드는 창조자의 태도를 가지게 해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창조자는 관리자가 될 수는 없다. 마치 부동의 원동자처럼 관람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치 다 알고 있었다는 듯 무정히 바라만 보는 것일 뿐이다. 인간의 양육은 부모로부터의 독립이 목적이다. <사절>또한 작가의 손에서 분리된 이후, 관객이 바라보는 가운데 관계들이 발생하며 매 순간 데이터가 쌓인다. 하지만 그 데이터들은 서사 전개에 목적 있는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관람자는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들의 움직임을 바라볼 뿐이다.

 

 네모난 창과 같은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는 <사절>의 세계는 나와는 분리된 다른 세계로 관람자에게 다가온다. 관람자가 숨 쉬는 전시장 공간과 스크린을 가운데 두고 분리된 공간은 그 안의 시간은 실제 시간(real time)과 과연 같을지, 스크린이 꺼져도 스크린 속 세계는 세계라 부를 수 있까 싶기도 하고 이 작품 속 세상이 사실은 작가의 눈속임으로 전혀 상호작용하지 않는 대상은 아닐지 의문이 들기도 하다. 이러한 지점은 디지털의 속성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디지털의 복제 가능성과 분산적인 성격은 우리가 현실에서 중요시하는 진짜(real)에 대한 감각을 역설적이게 자극한다. 작가는 그의 신작인 <Life After BOB: The Chalice Study>에 관련한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이 나보다 내 삶을 더 잘 살 수 있다면 인간인 내가 할 일이 남아있는지’라 말한다. 컴퓨터로 구현되는 인간의 신경다발인 인공지능과 컴퓨터로 구현되는 세계인 가상공간은 예술에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준다. 기술에 의한 인간기능의 연장과 인지할 수 있는 세상의 확장은 우리 기존의 한계를 넓혀주는 동시에 절대적이라고 여겼던 전통적 가치에 의문을 던지게 해 준다. <사절>에서 작품 스스로 고유한 줄 알았던 세계를 끝없이 재시작(replay)함으로 우리의 세계로 다시 돌이켜 생각하게 한다.


결국, 이안 쳉의 가장 핵심적인 뉴미디어 활용법인 라이브 시뮬레이션은 멀리서 보면 재현 미술의 연장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BOB (Bag Of Beliefs)>에서 작가가 만든 신념의 가방이라는 지네를 닮은 생명체는 관람자의 신념을 배우며 성장한다. BOB의 움직임 또한 현실의 생명체를 닮았다. 사람들이 만나서 관계를 맺고 그 이전과는 달라지고 그 역으로 진행할 수는 없다. 엔트로피 증가로 이어지는 현실의 세계를 <사절>은 재현한다. 이전 데이터 누적으로 <사절>의 두 번째 작품인 <완벽을 향해 분기하다>는 끝없이 분열하는 시바견을 보여준다. 여기서 시바견은 사절의 임무를 맡게 되는데 멸종한 인간과 교감하며 인류의 마지막 모습을 포착하라는 것이다. 재현된 인간의 모습을 포착하라는 임무는 인간에게 무조건적인 애정과 충성을 바치는 개에게 운명과도 같이 타자의 합일을 쫓는다. 이처럼 이안 쳉의 작업은 새로운 기술을 매체 형식으로 채택했지만 미메시스라는 회화적 전통을 계승한다. 가상세계가 세계이기 위해서는 현실의 속성을 필연하기 때문이다.


BOB (Bag Of Beliefs) (artificial lifeform, 2018-2019) Created by Ian Cheng


 <사절>은 시작과 끝을 계속 다른 방식으로 무한히 플레이한다. 이때, 시작과 끝이 있으려면 그 안에 최소한의 내러티브, 즉 서사가 담겨야 한다. 작가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의 작업에서 내러티브는 관객으로 하여금 작가가 만든 세계에 빠져 들겠 끔 하는 일종의 트로이의 목마라고 설명한다. 즉 그 세계에 흥미를 느끼고 몰입하게 하기 위한 장치라는 뜻이다. 한편 <사절>에서 내러티브는 형식을 차치하고 작업이 핵심적으로 담는 주제이기도 하는데 인간 인지/의식의 진화과정을 표현한다. 1부, <신들의 품에서 거하다>는 신들의 목소리에 기대어 살다가 우연한 사고로 스스로 생각하게 된, 자의식을 가지게 된 소녀를 사절로 삼게 된다. 이제 신들의 시대는 끝이 나고 인간 스스로가 신이 되는, 주체가 되게 되는데 서구 역사의 인본주의 혹은 계몽주의의 탄생으로 여길 수도 있고 한 개인의 역사로 보면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로 이어질 수 있다. 2부, <완벽을 향해 분기하다>는 인류가 없어진 이후 AI가 20분간 인간 한 명을 되살리게 되는데 이때 사절인 시바견이 그들의 마지막을 관찰하라는 임무를 맡게 된다. 시바견은 끝없이 마치 플라나리아처럼 스스로 분기(分岐)하는데 이는 끊임없이 스스로 학습하고 귀납적으로 학습하는 컴퓨터를 떠올리게 한다. 마지막 3부인 <스스로를 일몰 시키다>에서는 슈퍼 지능으로 완벽해진 ‘어머니 AI’가 등장한다. 어머니 AI는 슈퍼 지능을 가진 완전한 존재이지만 인간의 육신의 감각을 탐하다가 괴물이 되어버릴 위험에 처하게 된다.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1987)에 등장하는 인간이 되고 싶은 천사 다미엘이 떠오르는 대목인데 작가는 가지지 못할 것을 탐하는 존재, 결국 인간의 완전체가 되었을 때 더 큰 것을 탐하는 인간의 속성을 강조해 보여줌으로 존재의 역설을 표현한 것 같았다.  



제10의 예술 : 게임


 라이브 시뮬레이션 이기 전에 <사절> 시리즈의 특징은 게임 형식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 말하는 게임이란 무엇일까. 게임은 예술과 스포츠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용자들과 경쟁을 하기도 하지만 시각을 중심으로 사운드, 촉각, 인터랙션들을 활용해 감각을 자극하고 그 형식 안에서 특정 내용을 전달받기도 한다. 게임은 오로지 말초적인 오락만을 추구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소설, 영화처럼 게임도 작든 크든 해석의 여지가 있고 기존의 방식을 뛰어넘는 형식을 매개로 정보가 전달된다.  


MoMA가 소장하는 14개의 비디오 게임 중 SimCity 2000. 1994. Will Wright for Maxis, now part of Electronic Arts, Inc


 <사절> 삼부작에서 게임의 예술적 형식을 몇 가지 찾을 수 있다. 먼저 기술적인 부분에서 유니티(Unity) 게임 엔진 소프트웨어를 활용했다는 지점이다. 그중 이안 쳉은 공간을 설계하고 그 안에 3D 컴포넌트들을 담아 보여주는데 이때에는 물리 엔진이 사용된다. 우리가. 숨 쉬며 사는 세상을 기준으로 1의 중력을 가지고 있다. 게임의 가상공간 또한 현실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현실에서도 사용되는 물리 법칙이 그대로 적용한다. 현실의 중력장을 재현하는 것은 우리 일상에서 게임에서만 볼 수 있다. 물리법칙을 재현하는 이유는 상황을 제시하고 그 안에서 어떤 행동을 하든은 게임을 하는 사람, 곧 관람자에게 맡긴다는 뜻이다. 또 다른<사절> 삼부작의 게임적 특징으로는 내러티브의 사용이다. 게임에서는 서사나 스토리라고도 편히 부르는데 소설, 연극 등 리터럴 한 텍스트가 시간성 속에 메시지를 담고 이야기의 흐름을 몰입감 있게 전달받는다. 다만 내러티브의 맥락에서 기존 게임과 다른 지점이 있다면 관람자가 주인공으로서 플레이를 직접 해서 서사를 이끌어 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사절>의 경우 정해진 기본 컨셉으로의 서사가 있고 주인공인 각 작품의 ‘사절’들은 자신의 목적을 끊임없이 실행한다. 스스로 플레이되는 셈이다. 관람자는 창조자의 시점으로 창문 밖에서 바라만 볼뿐이다. 이때 관람자와의 상호작용은 이루어지지 않는데 이것은 그의 최신작인 <Life After BOB(2021)>과 다른 지점이다. <Life After BOB>은 약 50분간 상영하는 애니메이션과 인터랙션을 할 수 있는 파트로 두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월드 워칭 모드에서 작품과 인터랙션 하는 관람자


 관람자는 완결성 있고 닫힌 결말을 가진 애니메이션을 관람하고 바로 옆 상영관에서 애니메이션과 연동되는 웹사이트로 모바일로 접속해 작품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월드 워칭 모드’를 경험할 수 있다. 관람자는 모바일 인터페이스를 활용해 애니메이션을 조종할 권한을 부여받는다. 영상을 앞이나 뒤로 빠르게 옮겨 보기도 하고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공간을 360도로 둘러보기도 한다. 손가락으로 특정 대상을 탭 하여 상세한 설명도 읽을 수 있고 이해가 부족한 부분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도 있다. 인간-컴퓨터 인터랙션(Human-Computer Interaction)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작업으로 <사절 시리즈>와 큰 내용적 주제의식은 공유하지만 관람자와의 관계에서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여기서 관람자는 애니메이션 작업을 둘러보며 창작자의 의도도 파악하지만 서사를 주체적으로 이해를 시도한다. 사건에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물의 설명도 들여다보며 마치 위키피디아에서 하이퍼 링크를 옮겨 다니며 정보를 탐색하듯 완결된 서사를 해체하기도 한다.  




동시대 뉴미디어 아트


 이안 쳉의 개인전과 같은 기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히토 슈타이얼 - 데이터의 바다] 전을 한다. 히토 슈라이얼 또한 영상을 중심으로 다양한 미디어아트를 왕성히 선보이는 작가이다. 그는 이안 쳉과 기술을 자라 보는 시선이 사뭇 다르다. 먼저, 히토 슈타이 얼은 미래기술에 대해 우려한다.


Hito Steyerl    Hell Yeah We Fuck Die    2016           Video installation, environment


 그의 2016년작인 <Hell Yeah We Fuck Die>에서는 인간의 발길질에 계속 넘어지며 학습하는 우스꽝스러운 로봇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로봇들은 마치 사육장에서 착취를 당하는 동물처럼 인간들에게 폭력을 당하며 그 움직임과 대응방법을 학습하며 발전한다. 작가는 작품에서 인공지능의 귀납적 논리를 말하며 디스토피아적 상황을 제시한다. 이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야성적 충동>에서도 역사의 발전사에 대한 작가의 우려가 보인다. NFT, 가상화폐 교환으로 대표되는 크립토 생태가 또 다른 자본주의의 야성적인 이면이라는 것을 경제학자 케인즈를 소환해 이를 늑대와 양치기 소년의 서사로 만들어 전달한다. 미래와 기술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이안 쳉과 다른 지점이다. 이안 쳉은 기술과 AI를 주제 자체로 사용하지 않고 도구로 사용한다는 점에서부터 두 작가의 다른 관점을 엿볼 수 있다. 이안 쳉은 창조하고 바라본다는 것 그리고 가상의 생명체에게 인간의 것을 양분으로 제공한다는 점에서 ‘인간적’이라는 것을 가상의 디지털을 창조하는 행위에서 회복하려는 듯한 태도도 볼 수 있다. <Life After BOB>과 같이 인터페이스에 의한 관람자와의 인터랙션 요소가 적극적인 작업의 경우 그는 관람자를 디지털 가상의 서사 안에 끌어들이는데 이것은 기계와 인간 사이의 새로운 관계성을 탐구하고 마치 하나의 신체 일부분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사이버네틱스의 간접적인 연장이라 볼 수 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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