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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팰롱팰롱 Nov 16. 2020

차별이야기

The Hate U GIve 당신이 남긴 증오

여태껏 살면서 다행히도 폭력적인 인종차별을 직접적으로 겪어본 적은 없다. 내가 겪은 인종차별은 호주에 있을 때 어느 한 한국식당에서 밥 먹고 있는데 어떤 백인 남자가 유리를 깨부수고 "F*cking Asians! Go back to your country"라고 했었던 적이 있지만 나한테 직접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그 외에 몇 번 인종차별을 당한 적이 있었지만 굳이 따져 보자면 중간맛 정도 됐던 것 같다.

캐나다에 와서도 인종차별은 겪긴 했다. 길거리에서 노숙인들이 돈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욕을 퍼붓고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느니 하는 그런 사소한 일 외에 내가 겪은 인종차별은 대부분 일하면서 겪었다. 아무래도 주로 전화로 일을 하다 보니 사람들이 더욱 무례해진 것도 한 몫하는 것 같다. 대부분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들어주지 않는다고 네가 내 말을 못 알아들으니까 다른 사람 바꾸라는 사람도 있고, 다른 “영어 구사자”를 바꾸라는 사람도 있었다. 매니저에게 대충 설명하고 돌려주면 대부분 자기도 똑같은 말을 했다고 나쁜 XX라고 매니저들이 이야기해 주었다. 혹은 예전에 백오피스에서 일할 땐 가끔 전화받으면 프런트 데스크 바꾸라고 명령조로 대꾸하는 사람들이 있다. 늘 그렇듯 내가 도와줄 수 있다 무엇을 도와줄까라고 되물으면 당장 프런트 바꾸라고 너한테 말할 거 아니라며 신경질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 부서에서 나만 유일하게 악센트가 있었고 다 똑같이 대답하는데 유독 내게만 그런 일이 생긴 것은 명백한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한다. 악센트가 있다 보니 힘들어하는 고객들은 분명 있다. 나도 아직까지 인도 악센트를 들으면 힘들다.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면 십분 이해되지만 대부분 이들이 인종차별주의자인지 아닌지는 태도에서 결정되는 것 같다. 미안해하면서 공손히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냐고 부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화를 끊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무례한 사람도 있다.-한 번은 너무 무례하길래 화가 나서 다른 사람 바꿔 준다고 홀드 시켜놓고 영영 바꿔주지 않은 소심한 복수를 한 적도 있다.

캐나다를 흔히 샐러드볼에 비유하며 다양성을 잘 수용하는 나라라고들 한다. 내가 생각했을 땐 사회분위기 자체가 인종차별은 나쁜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 같긴 해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은근 그런 사회분위기 때문에 미묘하게 차별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인종차별의 대표적인 예로 얼마 전에 캐나다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놨던 방화사건이 있다. 한 백인이 원주민이 쓰던 생선 창고에 불을 지른 사건이었다. 불은 창고를 완전히 연소시켜버렸고 원주민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평소에도 백인들이 바다에서 조업 중이던 원주민을 총으로 쏘면서 조업을 하지 못하게 위협하고 원주민 어부에게는 배에 공급되는 오일을 판매하지 않거나 원주민이 잡은 생선을 받아주지 않는 등 지속적인 차별을 해왔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겪은 일은 아니고 주변 지인이 겪은 일을 들은 것도 있다. 내 룸메이트가 다니던 어학원에서 한국인들 네댓이 토론토의 한 놀이공원을 갔다고 한다. 그곳에서 ‘Large coke' 하나를 주문했는데 거기에 무슨 수천 가지 음식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점원이 계속 ‘라지 코크'를 못 알아듣는 척하면서 계속 난 네가 무슨 말하는지 모르겠다며 비아냥 거렸다고 한다. 결국 이들은 주문을 포기하고 물러났고 다음 사람이 주문했는데 한 백인 아저씨였다고 한다. 그 백인 아저씨가 가서 똑같이 라지 코크를 주문했고 그 점원이 바로 가져다 주자 그 아저씨가 바로 그 점원에다 대고 내가 말하는 것은 알아듣고 쟤네들이 말하는 것은 왜 못 알아듣느냐, 나는 쟤네가 말하는 것 다 알아들었는데 네가 못 알아들었다면 네 듣기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당장 가져다주고 사과하라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아저씨가 그렇게 사이다를 날려 준 것은 통쾌한 일이나 만약 그 사람이 백인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그 외에도 유튜브만 찾아봐도 종종 캐나다에서 일어나는 인종차별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얼마 전에 읽은 "The Hate U Give"라는 책에서 인종차별에 대해 잘 다루고 있다. 흑인들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인종차별이 얼마나 무서운지, 또 그것이 사회를 얼마나 병들게 하는지는 책을 통해 충분히 체감할 수 있었다. 주인공 스타는 우리가 흔히 아는 그런 할렘가에 사는데 어느 날 동네 친구의 파티에 초대되어 갔다가 어린 시절 친구가 경찰의 총에 희생되는 것을 바로 앞에서 목격하게 된다. 그 이후 스타는 자신의 트라우마와 사회의 시선을 극복하고 흑인에 대한 차별과 동시에 흑인 사회를 병폐하게 만든 갱단과도 맞서 싸우게 된다는 이야기가 큰 줄거리이다. 책이 분량이 있는 만큼 주인공의 심리 변화나 사회적으로 받는 압박감, 갱단에 의해 가족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대해서 촘촘히 잘 묘사해 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다 보면 마치 내가 극 중 스타가 되어서 혹은 스타 바로 옆에 붙어서 24시간 붙어 다니며 그녀가 보고 느끼는 것 하나하나를 같이 공유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문체도 현재형으로 계속되기 때문에 더욱 생생하게 느껴진다. 같은 기간에 호킹 박사의 책을 읽었는데 잘 교육받은 천재 백인 물리학자가 규칙을 잘 지친 문법과 다양한 아카데믹한 어휘로 쓴 책과 문법이 깨어지고 줄임말이나 슬랭이 자주 나오며 생존을 위해 아이러니하게 목숨을 걸고 맞서 싸우는 흑인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 책을 같이 읽어 내려가자니 두 집단 사이의 갭이 더욱 극명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모든 흑인이 줄임말이나 깨어진 문법을 쓰는 것도 아니고 백인들이 슬랭을 쓰지 않는다는 것도, 모든 흑인이 교육을 받지 않는다는 것도, 백인이 모두 교육을 잘 받았다는 것은 더욱 아니다.

책에서 이야기의 핵심을 잘 드러내는 부분은 백인 아이 크리스가 흑인 아이들이 투쟁하는 것을 도우면서 나누는 대화에서 잘 드러난다. 크리스는 DeVante라는 이름을 가진 흑인 남자아이에게 왜 흑인들은 평범한 이름을 쓸 수 없는 것이냐고 질문한다. 그러자 흑인 남자아이는 평범한 것이 무엇을 의미하냐고 흑인들 사이에서 자기 이름은 평범한 것이라고 반문한다.

자신의 잣대로 세상을 이문법적으로 나누어서 나와 같다, 같지 않다로 나누고, 같지 않은 것은 잘못된 혹은 이상한 것이라고 바라보는 것. 그것이 바로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인종차별에 대해서 자연스레 생각해보게 된다. 이야기는 흑인들이 받는 인종차별에 관한 이야기지만 모든 차별을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을 읽고 내가 받는 차별 또 내가 하는 차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살아오면서 나 또한 인종차별뿐만 아니라 성차별 빈부차별 등 각종 차별을 당하고, 차별을 하며 살아왔다. 나도 어떤 나만의 잣대로 옳고 그름을 따지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반성했다.

차별은 그 차별을 받는 당사자에게도 트라우마로 이어질 수 있는 아주 무서운 경험일 것이다. 인종차별로 올라오는 유튜브 비디오를 보고 있다 보면 갑자기 내가 사는 이 사회가 무섭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무척 자극적이어서 계속해서 보게 되는데 또 한편으론 나도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어느새 나 자신을 비디오 속으로 대입하게 되고 몇 편 보다 보면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무서운 공포에 휩싸였다. 그래서 이젠 의도적으로 보지 않으려고 한다.

어떤 종류의 차별이든 그것이 나쁜 이유는 이렇듯 당한 사람에게는 직접적인 트라우마를 겪게 되지만 결과적으로는 공포가 사회에 만연하게 되고 그것이 결국 사회를 좀 먹는 전염병과 같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차별을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차별에 대한 책들이 나오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도 각종 차별이 너무도 만연하기 때문일 것 있다. 우리가 스스로 차별에 대해서 각성하고 모두가 차별 없이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형태는 무척 폭력적인 형태로 가 닿아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병들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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