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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팰롱팰롱 Nov 11. 2020

캐나다판 보이스피싱을 당했다

안 그래도 털어갈 것도 없는데 가만 좀 냅둬라~!

휴무라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다가 잠시 쉰다고 뒹굴뒹굴하는데 하필 딱 그 타이밍에 No Caller ID라고 찍힌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민 변호사 사무실에서 가끔 전화가 오면 그렇게 와서 변호사인가 하고 전화를 받았다. 웬 여자가 전화 와서 자기는 Service Canada에서 전화하는데 내 이름 석 자를 또박또박 부르며 내가 맞냐고 물었다. 맞다고 하니 내가 신청했던 해고 보조지원금에 신청서에 서류가 누락되어서 연락한다며 내가 맞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내 SIN(Social Insurance Number) 마지막 네 자리를 알려 달라고 했다. (캐나다에서 일하려면 SIN이 있었야 한다. 말하자면 사회보장번호인데 아주 중요한 정보이고 보통 신용카드 만들 때 등 중요한 일에만 쓰이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절대로 집주인에게도 친구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알려줘서는 안 된다고 재차, 삼차 강조했었다.. 아뿔싸....) 마지막 네 자리인데 별일이나 있겠나 싶어서 나는 알려줬고, 이어서 내 생년월일을 물었다. 생년월일까지 말하기 찝찝함이 느껴졌지만 내 마지막 4자리와 그걸로 설마 무엇이나 할 수 있겠나 이렇게 나인지 확인할 때만 쓰이겠지 싶어서 알려줬다. 그랬더니 내가 맞다고 하면서(내가 맞는 걸 내 입으로 증명한 셈이지...) 작년 9월에 내가 워킹 비자를 소지하고 있었는지 그때 어디에서 근무하고 있었는지 물어보며 그 워킹 비자 복사본이 제출이 안 되었으니 그걸 우편으로 보내 달라고 했다. 여기 공무원들이 대부분 네가지가 무척 없으신 데 비해 너무나 상냥하고 친절하게 알려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사실 그때라도 알아봤다고 한들 이미 내 정보는 다 털린 뒤긴 했지만.. (근데 사실 할리팩스 공무원들은 거의 다 친절하다.. 적어도 지금까지 겪어본 바로는) 아무튼 그때는 정말 뭣도 모르고 분명 보낸 기억이 있는데 하여튼 캐나다 일 처리 하나는 더럽게 못한다고 속으로 쒸불튀불하기 바빴다. 아무튼 우편으로 보내야 할 주소까지 받아 적고 지금 새 워킹 퍼밋으로 바뀌었는데 그것도 복사본 보내야 하냐며 아주 친절하고 상세히 물어본 나님... 거기에 그것도 모자라서 보조금 받았던 내역에 대한 상담이 필요한데 어떻게 해야 하냐며 친절히 물어보기까지 했다...멍충미를 아주 그냥 따발총으로 발사했다... 그 여자는 속으로 얼마나 신났을까... 아무튼 거기까지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그녀는 나에게 친절하게 번호 하나를 알려주며 그곳으로 연락해서 상담받으라고 했는데 나중에 검색해보니 정부 공인담당 부서 전화번호이긴 했다.... 이럴 땐 허술하다고 해야 하나.. 아님 원래 너무 허술한데 내가 더 헐랭이 똥멍청이였던가...

아무튼 맘이 급해진 나는 집에 있는 복합기로 복사를 하려고 했는데 암만 하려고 해도 복합기가 복사가 안 되었다.... 통화 내용을 다 들었던 복합기는 아마도 '이 바보 멍텅구리야 하지 마라고!! 보이스피싱이라고!!안 해!! 난 안 해!! 그만해!!'라고 외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복사하기를 포기하고 낼 출근해서 회사 복사기로 복사해야겠다 생각하고 여권, 비자까지 다 챙겨두고 잠들었다.

다음 날 회사를 마치고 마음이 급해진 나는 서둘러 복사를 하고 이왕이면 돈 좀 주더라도 추적 가능한 우편으로  보내야겠다라고 아주 마음을 굳게 먹으며 우체국으로 향했다. 추적 가능한 우편 봉투를 사고 주소를 적으려던 찰나 그 순간에라도 무언가 찜찜함이 느껴진 것은 정말이지 신의 한 수였다. 순간 무언가 좀 이상한 감이 느껴졌고 바로 앞에 Service Canada가 있는데 확인해서 나쁠 것 없지 않냐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우체국 직원에게 나중에 다시 온다고 하고 Service Canada로 향했다.

입구에 선 시큐리티한테 대충 설명했는데 진짜 말 끝나기도 전에 그거 사기야!!!라고 했다.. OMG.... 네..? 네..??? 당연히 믿고 싶지 않았고 서비스 캐나다로 보내라고 했는데요? 아니라고요? 그럴 리가.... 했더니 들어가서 직원하고 확인하고 오더니 너만 벌써 세 번째다, 가능한 한 빨리 경찰에 신고하고 여기 신고하고 저기 신고하고 어쩌고 저쩌고...

네?? 저 당한 건가요....???? 아니라 해주세요 제발요..ㅜㅜ


그리하여 난생 두 번째로 캐나다 경찰서엘 갔다. (첫 번째는 지갑 도둑맞아서.. 참 스펙터클하다 진짜....) 신고하러 갔는데 웬 할머니 경찰인지 공무원인지 하여튼 그분이 접수하는데 말도 잘 못들어서 겨우 대화하고.... 아무튼 여차저차 파일을 하는데 솔직히 신경 1도 안 쓰는 게 보였다. 어차피 금전적인 피해가 지금 당장 일어난 것도 아니고 솔직히 그게 소액이라면 별반 차이도 없을 것 같긴 하지만... 아무튼 울먹울먹 맘을 가다듬고 내 SIN 넘버 마지막 네 자리가 털렸어요....로 신고를 시작하며 이것저것 말하고 사건 번호 같은 것 받고 나왔다. 경찰에서 다시 서비스 캐나다에 사건번호 알려주라고 해서 다시 갔는데 시큐리티님께서 지금은 필요 없다, 금전적인 손해가 발생하면 그때 이것이 필요할 테니 잘 들고 있으라며 Good Luck! 하는데 진짜 그 말이 더 무서웠다.....

마치 앞으로 너에게 일어날 그 모든 난관에 행운을 빌어!라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은행에 들려서 사기당한 것 같다고 아주 그냥 홍보하고 돌아다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직원에게 말했다... 그렇지만 은행에도 일단 알아봐야 했기에... ㅜ 은행 직원은 일단 은행 계좌나 그런 것들을 알려준 것은 없기 때문에 지금 당장 어떻게 할 것은 없다며 측은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캐나다에 와서 세금 보고를 한 첫 번째 해, 그다음 해에 어딘가에서 전화가 왔는데 세금 보고가 잘못되었고 지금 내야 할 벌금이 엄청 쌓였으니 당장 돈을 내야 한다고 했다. 처음 세금 보고를 했던 해라 심장이 쿵 내려앉았고 아 그... 그래?? 라며 더듬더듬 대꾸하는데 무언가 자꾸 티가 나는 그 허술함에 냄새를 맡고 아아 그래요? 하고 장난쳤더니 나중에는 막 경찰이 너 잡으러 갈 거다 어쩐다 지금 경찰이 가는 중이다 하는데 알았어 알았다규 하고 끊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상대방이 내가 누군지 어디서 사는지도 몰라서 사실 처음부터 의심스러웠는데 이번에는 조금 더 치밀하고 협박도 없었고 너무 자연스러웠다.... 어떻게 보이스피싱을 당하지?? 했는데 아... 이렇게 당하는구나.... 하는 순간이었다.

신고해야 할 곳 중  아직 한 군데는 코로나 때문에 축소 운영되느라 겨우 연락했더니 시스템 다운타임 걸려서 한 시간 뒤에 다시 전화 달라고 했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져서 내일 다시 전화해 봐야 할 것 같다..

이렇게 털리고 나니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기분이라 너무 찝찝하기만 하다. 캐나다에서의 내 신상에 별일이 없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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