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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팰롱팰롱 Jul 17. 2020

캐나다 호텔 취업 도전기

광탈의 역사를 딛고 일어난 불굴의 영찔이

“유감스럽지만 이번에는 당신과 함께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다음 기회에 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몇 번째 떨어진 것인지 모르겠다. 부푼 꿈을 안고 캐나다에 있는 한 대학에 입학했고, 이제 인턴십을 해야 하는 마지막 학기만 하면 졸업이었다. 같은 반 친구들은 내가 짧게나마 한국에서 경력도 있었고 성적도 좋아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교수들도 조차도 문제없을 거라 믿었다. 자만심이 문제였던 걸까.

 

면접을 보는 족족 다 떨어졌다. 포시즌스 호텔부터 파크 하얏트 등 토론토에 있는 대형 호텔 면접은 거의 다 봤던 것 같다. 하지만 내 높은 이상과 달리 면접 보는 족족 광탈해버리는 현실에 한숨만 늘어갔고 하늘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수없이 면접을 보면서 잃은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 영어 실력의 한계를 알 수도 있었다. 또 면접관의 질문 패턴이 어떠한지도 파악해 나갔고 캐나다 호텔에서는 어떤 형식으로 면접이 이루어지는지도 익숙해져 갔다. 한 군데에서 면접이 떨어질 때마다 집으로 돌아가 질문들을 복기하며 다시 대답해 보며 연습했다. 다시 또 면접을 나가고 또 떨어지고 또 복기하며 서서히 면접요령을 익혀나갔다. 희한한 것이 낙방의 경험들이 쌓여갈수록 돌발 질문에도 여유가 생겼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러는 사이 토론토에서 웬만큼 알아주는 호텔들은 이미 면접을 봐 버렸거나 채용이 끝나 더는 인턴을 뽑지 않는 곳들이 늘어갔다.

 

너무 낙심했던 나머지 한 일주일 잠수를 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집에 틀어박혀서 누워만 있었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내가 그러는 동안 부모님 속도 까맣게 타들어 갔다. 들려오는 좋은 소식도 없는데 자식이 소식마저 끊었으니 참 여러 가지로 불효했다. 그렇게 일주일 잠수를 타고나니 뭐라도 해야겠다는 정신이 들었다.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소위 남들이 별로 하고 싶어 하지 않는 호텔 식음료 부서에 인턴 자리가 있다고 해서 간단한 면접을 보고 들어갔다. 말이 인턴이지 그냥 무급 직원으로 막 부려 먹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졸업해서 좋은 취업 자리를 노려야겠다고 생각하며 다니던 중에 마지막 한 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토론토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한 대형 호텔 인사과에서 인턴을 뽑는데 면접 보러 오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면접 보러 가기 전 그간 연습했던 질문들을 외우고 또 외웠다. 어차피 떨어져도 돌아갈 곳은 있다는 배짱이 있어서였던지 면접 날에는 호텔에 일찍 도착해서 그곳 직원과 인사도 하고 인턴 면접 보러 왔다며 내 소개를 하는 여유를 떨었다. 직원들은 호텔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고 그 과정에서 나는 긴장이 풀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긴장도 풀렸고 경험도 쌓여서였을까. 면접에 합격했고 나와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아갈 듯이 기뻤다. 이미 한 달 정도를 다른 곳에서 했지만, 기꺼이 포기하고 새로운 곳에서 인턴십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갖은 고생 끝에 인턴 합격하고 보스가 핀을 달아 주었을 때의 그 감격이란..

 

한 번 그렇게 쌓인 경험들은 몸에 배는 것 같다. 혹은 정식 직장을 잡은 것은 운이 좋아서였을 수도 있다. 인턴십이 끝나갈 때쯤 토론토 있는 다른 큰 호텔에서 대규모 job fair가 열렸다. 인턴 업무를 한 시간 정도 일찍 마치고 이력서 한 장 달랑 출력해서 면접을 봐야하는 줄도 모르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마지막 참가자로 도착했다. 알고 보니 같은 반 친구가 그 호텔에서 인턴십을 하고 있었고 그곳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그 친구는 곧바로 급한 대로 내 이력서에 레퍼런스 써주었다. 총 각기 다른 4명의 면접관과 4번의 면접을 그날 하루 만에 다 봤는데 처음 2번은 그동안 수없이 봤던 면접에서 쌓은 스킬들을 열심히 풀었다. 3번 째는 우리나라로 치면 부 총지배인쯤 되는 분이 면접관이었는데 이때부터는 무척 순조로웠다.  내 이력서를 보더니 “음.. 한국인이네?? 내 아내도 한국인이야! 이야, 너 제주도에서 일했구나!  나도 제주도 가봤어!” 하는 바람에 제주도에 관한 수다를 떨다가 끝났다. 4번째는 총지배인이었는데 아예 “너 여기까지 왔으면 이미 뭐 할 말 다 했겠지. 나는 더 물을 것도 없어. 우리 호텔 인사과 매니저는 봤니?”라며 소개해 주었고 그렇게 식음료 부서에 합격했다.

이후 프런트 팀으로 넘어가고 싶어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이고 프런트 팀원들과도 친하게 지낸 덕에 1년 후 다시 면접 보고 회사 내 부서이동을 통해서 프런트 팀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누가 나한테 해외 호텔 취업 팁을 물어본다면 나는 두 가지를 말해 주고 싶다.

첫째, 쫄지 마라, 절대. 생각해 보면 나는 여러모로 자신이 없었다. 영어를 못한다 생각해서, 캐나다에서 경험이 없어서, 노랑머리에 파란 눈의 면접관들을 처음 봐서 위축되었다. - 사실 노랑머리에 파란 눈이 아닌 면접관들도 많다.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 그런 내 자신감 없는 모습은 위축된 자세로 충분히 뿜어져 나왔으며 말투 또한 적나라하게 ‘나 엄청 쫄았어요 후덜덜.’이라고 하고 있었다. 나중에 복기하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나도 모르게 무엇을 못 하지만, 무엇을 못 해서, 무엇은 없지만… 등등 지금 생각해보면 찌질한 말들을 참 많이 했다. 원어민이 아닌 건 그들도 안다. 경험이 없는 것도 안다. 내가 없는 것이 무엇인지 다 알고 있다. 알지만 가치를 알아보고 면접을 보자고 한 것이다. 그러니 쫄지 마시라. 영어는 어느 정도 의사소통만 가능하면 면접관들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긴장해서 '더' 못하는 것까지도 알고 이해한다. 면접의 기본이지만 내가 뭘 잘하고 어떤 보탬이 될 수 있는지 조리 있게 잘 말해서 나를 팔아야 한다는 것만 명심하면 된다. 단, TMI도 금지다. 인턴 때 그래서 면접에서 탈락하는 경우도 봤다. 면접 장소에 일찍 가서 누구라도 붙잡고 이야기를 해보는 것도 제법 도움이 된다. 특히 영어에 썩 자신이 없다면 일찍 가서 입도 풀고 뇌도 가동해 두는 것이 좋다.

 

둘째, 일단 발을 디밀고 봐야 한다. 어느 부서에서 일하고 싶으냐에 따라 통과해야 하는 구멍이 훌라후프만 할 수도 있고 바늘구멍만 할 수도 있다. 하우스키핑은 평소에도 자리가 잘 나는 편이고 인원도 많이 뽑지만, 프런트 쪽은 자리도 잘 안 나고 인원도 많이 안 뽑는다. 물론 처음부터 프런트 팀에 입사에서 잘 다니는 직원들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안다. 그런 요행은 나에게 없다는 것을. 그렇다면 발을 디밀고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일단 진입 장벽이 낮은 부서에 입사부터 하고 눈도장을 찍는 방법이다.  레퍼런스도 없고 경험도 없다면 일단 쉬운 부서에 들어가서 부서 이동을 노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수습 기간이 지나고 열심히 하는 일하고 오며 가며 간단한 인사라도 하면서 눈도장을 잘 찍어둔다면 부서 이동도 비교적 쉽다. 채용공고가 났을 때 회사에서 제일 먼저 면접 기회를 가지는 사람들은 거의 회사 직원 혹은 회사 직원이 추천한 사람이다. 물론 면접을 잘 봐야 한다. 하지만 이미 직장 내에서 신뢰를 잘 쌓았다면 그 면접 또한 한 수 먹고 들어가는 면접이라 봐도 될 것이다. 



한 번 경험을 쌓으면 그다음부터는 회사에서 크게 사고 치지 않는 한 다른 곳에도 비교적 쉽게 취업이 되는 편이다. 작년 이곳 핼리팩스로 처음 와서 일자리를 구할 때도 경력이 있어서인지 이력서를 돌린 곳들은 거의 다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고 면접 본 호텔에서 떨어진 적은 없었다. - 물론 토론토보다 경쟁률이 덜 심한 것도 있다. - 대신 일 하면서  이직할 때 면접에 내놓을 수 있을만한 에피소드를 저축해 두는 것도 중요하다. 거의 모든 경력직 면접이 그렇겠지만 기억에 남는 고객 응대 사례 이런 것들은 필수 질문이다. 인맥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앞서 말했지만 캐나다는 인맥 사회다. 채용하면서 레퍼런스 체크를 하는 곳이 많다. 메**트 호텔 계열은 형식적이지만 반드시 체크를 하게 되어있다. 지금 이직한 호텔도 힐*계열인데 내가 제출한 레퍼런스 세 군데 다 체크했었다. 무작위로 이전 호텔에 전화해서 아무 매니저랑 레퍼런스 체크를 했다고 해서 가슴이 철렁했지만.  그러니 직장 생활을 할 때도 인맥을 잘 쌓아서 나에 대해 좋게 말해줄 사람을 확보해 두어야 하고, 이직을 할 때는 떠나기 전 레퍼런스 부탁을 미리 해두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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