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의 한계.

by 꿈꾸는나비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제법 쌀쌀하다. 낙엽도 한없이 떨어지건만... 나는 오늘이 되어서야 거실 한편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선풍기들을 정리했다. 이 선풍기들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한 달도 전부터 닦아서 넣어야지, 해야지, 해야지 하며 하루하루를 미루어 오던 과거 나의 게으름의 결과물이다. 유난히 길고 더웠던 올해의 여름처럼 나의 게으름도 길기도 길었다. 오늘에서야 나는 과거의 나에게 회신을 보낸다. 닦아서 넣었어.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하고 걸레질을 하고 화장실 청소와 재활용분리수거를 꼬박꼬박 하면서도 거실 한 편의 선풍기들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내일 하지 뭐, 다음 주에 하지 뭐, 그다음 주에 하지 뭐. 그러다 오늘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 마음속에는 '오늘은 꼭 하자.', '아직도 안 한 거니?', '와, 아직도야?'. 스스로에게 보내는 경고와 재촉이 쌓여갔다. 덩그러니 모인 선풍기들을 보고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 '저거, 닦아서 넣으려고 모아둔 거야.' 라며 묻지도 않는 가족들에게 답했다. 그렇게 한 달을 미뤘던 나의 게으름의 한계는 딱 여기까지였다.



아침부터 선풍기를 한 대씩 분해해서 물로 잘 씻어 말린 후 다시 조립하여 커버를 씌웠다. 미뤘던 일을 다하고 나서야 마음 한 편의 찜찜함이 씻겨나간다. 나의 선택적 회피와 게으름의 대상이 선풍기뿐이었을까? 그동안 미루고 미뤘던 일들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여러 장 모아뒀던 병원 영수증을 정리해서 실비 청구를 하고 오랜만에 친구에게 안부문자도 전해본다. 대출연장한 책을 겨우 마저 읽었다. 그러고도 남은 이것저것의 잡다한 일들... 해야지, 해야지, 내일 할까? 나는 너무 쉽게 나와 타협해버린다. 나는 또 게으름을 피운다. 게으름이 한계에 다다를 때를 또 기다린다. 마음 한편에 찜찜함이 또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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