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막내 고모가 카톡을 보내셨다. 어린 시절 내가 고모에게 보낸 편지와 그림이었다. 삐뚤빼뚤한 글씨와 알록달록한 그림을 보고도 나는 이게 정말 내가 고모에게 보낸 건지 알 수 없었다. 나의 기억에는 없는, 그러나 내가 보냈다는 나의 편지와 그림. 사실 나를 더 놀라게 한건 40년간 이걸 간직한 고모였다. 앨범 정리를 하시다가 이걸 찾아서 반가웠다고 사진 찍어 보내신 거였는데 어떻게 40년간 이걸 가지고 계셨던 걸까. 40년이란 시간이 무색하게 글씨 하나 바래지 않고 크레파스는 선명하게 색이 남았다.
고모는 나와 17살 차이가 난다. 아버지 5남매 중 막내인 고모는 조실부모하여 장남인 우리 아버지와 올케인 우리 어머니를 부모님으로 여기며 살아오셨다. 내 기억 속 어렴풋이 고모의 모습이 떠오른다. 대학 졸업 후 병리사로 일하시면서 종종 우리 집에 오셨던 기억, 오실 때마다 맛있는 간식을 사가지고 오셨던 모습, 옆에 누워 재워주시던 기억이 난다. 그런 고모에게 나는 보고 싶다며 이런 편지와 그림을 드렸었구나...
맞춤법도 틀리고 삐뚤빼뚤하게 꾹꾹 눌러쓴 글씨와 한껏 멋을 부려 그린 그림을 보고 있자니 과거 나의 시간을 기억하고 저장해 준 고모에게 감사하다. 한편으로는 과거의 나를 마주하는 듯한 묘한 감정이 빠진다. 과거에서 보낸 편지 같다. 지나가는 나의 순간들을 누군가와 이렇게 공유했고 이런 방법으로 기억되고 있구나 싶어서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나도 고모의 시간을 공유했다. 고모의 대학졸업식에서 고모의 손을 잡고, 고모 결혼식날 드레스를 입은 고모옆에서, 고모의 신혼집에 초대됐을 때도, 첫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우리 집에 맡겼을 때도, 둘째의 돌잔치에서도...그렇게...고모의 환갑잔치에서도, 지난달 가족행사에서도, 나도 고모와 함께한 시간을 공유했다. 그리고 기억한다.
시간이 지나간 자리에 기억이 남는다. 그 기억은 훗날 추억으로 불리는거겠지. 그 시간을 공유한 모두의 기억을 모으면 순간이 재생될 수 있을까? 지금도 시간이 지나간다. 모든걸 기억할 수는 없지만 하나라도 기억에 담을 수 있길. 나의 기억이 나와 누군가의 시간 조각임을 느낀다. 지금 나는 이 글을 읽는 누군가와 이 순간을 나눠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