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사촌 여동생이 어제 갑작스레 유명을 달리했단 소식을 들었다. 우리가 결혼할 때 그녀는 유학 중이라 볼 수 없었고 그녀의 결혼식엔 우리가 참석을 못했고, 그 후 명절날 시댁에서 딱 한번 봤었다. 두 번째 만남이 장례식장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남편의 늦은 퇴근으로 저녁 9시가 넘어서야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남편은 사촌 여동생이 어릴 적 자주 집에 놀러 오곤 했는데 크면서 자연스레 연락도 뜸해졌다는 얘기, 피아노를 전공하고 유학을 오래 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얼마 전 암투병 중인 남편의 요양을 위해 지방에 같이 내려갔다는 얘기가 그녀의 마지막이 되었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차는 막혔다. 도착까지 두 시간을 그렇게 달렸다. 그래도 힘들다고 할 수 없다. 이런 외출에는 좋고 싫음이 없다. 비가 거세게 내리쳐 앞이 안 보이는 길이었지만, 어제 그 폭염을 뚫고 지방에서 딸의 시신을 거두어 서울로 올라온 이모님 보다 힘들었으랴. 우리는 지금 그 누구보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장례식장은 시간이 늦어서 한산했다. 영정 사진 속 환한 그녀의 모습에 숙연해졌다. 장례식장은 늘 어렵다.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적당한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 평생 그녀를 한번 만난 내 말 한마디가 그녀의 곁을 평생 함께한 그들의 마음에 위로가 될까.
결혼해서 처음으로 시어머니가 소주 드시는 모습을 봤다. 조카의 비보가 못 드시는 술도 드시게 했다. 막내 이모님이 내 옆에 와 앉으셨다. 두 분은 조카의 어릴 적 이야기를 주고 받으시며 그렇게 함께 술을 드셨다. 나는 조용히 두 분의 이야기를 들어드렸다.
짧은 조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나는 집으로 갈 수 있지만 그녀는 이제 집에 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