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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석 Oct 29. 2017


나목(裸木)

 어린 시절에 살았던 동네의 작은 언덕에는 아름드리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언제인지는 모르나 벼락에 맞았다는 그 나무는 속이 불에 타서 크게 패인 상태였다. 늦은 가을, 벼락을 맞아 시커멓게 그슬린 채 나무 가지만을 가지고 혼자 서있는 그 나무의 첫인상은 황량함 그 자체였다. 그런데 놀라웠던 것은 봄이 되니 새잎이 돋았고, 금세 짙은 푸름이 그곳에 가득했다. 그 나무에서 발견한 생명성은, 늘 나무에 잎이 가득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이상의 무언가를 생각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가지에 잎을 모두 떨어뜨린 채 겨울을 견디며 새 봄을 기다리는 나무의 모습을 나목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는 것은 훨씬 나중에 알게 되었다. 반면, 살아있는 듯 보이나, 죽어있는 나무도 있다. 그 모습 그대로 고착화되고 고정되어 그렇게 죽어가는 나무를 고목이라 부른다. 계절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같은 모습으로 있는 것이다. 

 추운 겨울에는 나목과 고목의 모습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봄이 다가왔을 때, 나목은 찬란한 봄을 준비하고, 고목은 앙상한 가지 그대로 그렇게 말라간다.


 2011년에 작고하신 박완서 선생님은 20살 때 미군부대 PX에서 초상화 그리는 화가들에게 미군을 소개해주는 일을 했다. 본인보다 훨씬 연배가 높은 화가들의 생계를 책임진다고 생각하며, 그분들을 '김씨, 이씨' 이러면서 하대하며 불렀다고 한다. 어쩌면 서울대 국문과 합격까지 했으나 전쟁으로 중퇴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삶이 그녀를 모질게 만들었을지 모른다. 그러한 때에 초상화를 그리던 한 화가가 개인적으로 그린 그림을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되고 충격을 받는다. 시대가 그를 미군부대에서 '환쟁이'로 초상화를 그리면서 살아가게 했지만, 그는 '화가'였던 것이다. 그리고 20년 후, 그녀는 그 화가가 작고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화가의 유작전을 보러 가 그가 남기고 간 그림들에 큰 감명을 받게 되고, 안에서 북받쳐 오르는 것을 감당하지 못해 소설을 쓴다. 그것이 바로 '나목'. 오늘의 박완서 선생님을 있게 한 소설이다. 그리고 그 소설의 모티브가 된 화가는 바로 고(故) 박수근 화백이다. 

박수근, 나무와 여인, 1962년

 ‘내가 지난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枯木),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裸木)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김장철 소슬바람에 떠는 나목, 이제 막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 나목이기에 봄은 아직 멀건만, 그의 수심엔 봄의 향기가 애달도록 절실하다. 그러나 보채지 않고 늠름하게 여러 가지들이 빈틈없이 완전한 조화를 이룬 채 서 있는 나목, 그 옆을 지나는 춥디 추운 김장철 여인들. 여인들의 눈앞에서 겨울이 있고, 나목에게는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봄에의 믿음. 나목을 저리도 꿋꿋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 이리라.'

                                                    - 故 박완서 선생님의 '나목' 중에서


 아마 스무 살의 소녀 박완서가 본 초상화가들의 생활은 삭막하고 황폐한 고목 그 자체였을 것이다. 사실 그러했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사회 속에서 미군 초상화를 그리는 것으로 하루하루 연명했다. 고(故) 박수근 화백 또한 상당히 불우한 생을 살았던 사람이다. 겨울에 집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물감을 받아놓은 그릇의 물이 얼어버렸을 정도로 곤궁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유작은 1996년 미국 소더비 경매에서 31만 달러를 호가했고, 2007년 한국에서 열린 경매에서는 45억이 넘는 호가를 보이기도 했다. 이는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로 기록에 남는다. 그리고 그는 가난한 서민들의 소박한 삶을 소재로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리고자 일생을 바친,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기억되고 있으며, 세계적인 반열에 오른 한국 화가로 평가받는다.

박수근, 빨래터, 1954년  (경매가 45억 2천만원)

 그녀가 젊은 시절의 시각으로 바라본 그의 생활은 고목이었으나, 실상 그의 삶은 나목이었던 것이다. 박완서 선생님께서 박수근 화백의 유작전에서 받았다는 충격은 바로 이러한 깨달음이었을지 모른다. 동시에 그것은 그녀 자신의 삶에 대한 깨달음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 후 사십 대 중년의 나이에 소설 '나목'으로 문단에 등단하여, 그 후 점차 거목의 삶을 사시게 되니 말이다.


 나목의 삶, 고목의 삶.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은 다른 사람이 언뜻 보기에 쉽게 구분할 수 없을지 모른다. 사람들은 척박한 땅에 깊게 내리 뻗은 나무의 뿌리를 알지 못하고, 그저 땅 위의 나무와 가지만을 바라볼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결국 매일매일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는 자기 자신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일상이 가지고 있는 힘은 무섭다. 일상에 젖어들어 하루하루 정신없이 보내면, 어느덧 메말라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반복되고 단조로운 일상이 얼마나 삶을 고착시키는지를 쉽게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무서운 것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일상을 다르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바로 기다림을 가슴에 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기다림은 희망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을 묵묵히 견뎌내며, 조용히 준비하는 것이다. 언제가 다가올 그 봄을 말이다. 그때가 오면 앙상했던 나목에는 푸르름이 가득하게 될 것이다.

 나목은 우리에게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오히려 모진 겨울 한가운데 서서, 그 시간을 인내하라고 한다. 그 속에 봄에 대한 희망을 간직한 채, 그 속에 생명을 간직한 채 말이다. 

 그렇게 나목은 찬란하게 빛날 그 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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