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염 수술의 추억)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난 가을이 두려웠다. 봄도 마찬가지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만물이 소생하는 희망의 계절이지만, 나는 봄이 다가오면 긴장부터 하기 시작했다. 가장 활동하기 좋다는 봄, 가을이 나에게 공포의 시기가 된 이유는 바로 지긋지긋한 비염 때문이었다.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가 되면, 비염이 심해졌다. 시도 때도 없이 콧물이 흐르고, 어쩔 때는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이렇게 비염이 도지면 비염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꼭 감기로 이어졌다. 비염을 고치려고 여러 병원을 다녀봤지만, 비염은 쉽게 낫지 않으니 건강관리를 잘하라는 말씀뿐이었다.
비염과 함께 한 역사는 고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 때부터 만성 비염으로 이비인후과를 제 집 드나들듯이 다니더니, 군대에 가서는 더 심해졌다. 그러다 회사에 취직하면서부터는 그 정도가 더욱 악화되었다. 회사 사무실이란 공간 자체가 너무 건조했다. 사무실의 건조한 공기는 비염에 그야말로 쥐약이었다. 책상에 화초나 가습기를 가져다 놓았지만 소용없었다.
비염으로 한창 고생하던 가을의 어느 날, 선배와 점심을 먹다가 비염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그 선배가 한 이비인후과를 소개해 주었다. 우리나라에서 이비인후과 전문병원으로 손에 꼽는다고 했다. 본인도 비염으로 엄청 고생했는데, 그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정말 좋아졌다고 했다.
그 주 토요일에 바로 그 병원을 찾아갔다. 살던 집과는 두 시간이 넘는 거리였지만 문제 되지 않았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병원에 가 보니 다섯 분의 의사 선생님이 모두 이비인후과 전문의였고, 5층 건물 전체가 이비인후과 질환 치료를 위한 전문병원이었다. 차례를 기다려서 진료를 받았다. 선생님께서는 일단 여러 가지 검사를 해보자고 하셨다. 알레르기 반응 검사부터 호흡량 검사까지 몇 가지 검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검사 결과는 일주일 후에 나온다고 했다.
“그동안 힘드셨겠어요.”
일주일 후 병원에 갔을 때, 의사 선생님께서 던진 첫마디였다. 비염이 심할 때의 호흡량이 정상일 때의 4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코뼈도 휘어 있어서 그 상태가 더 심해 질 수 있다고 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알레르기성 비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알레르기성 비염은 수술해도 효과가 별로 없는데, 환자 분의 경우에는 비후성 비염입니다. 비후성 비염의 경우에는 코 속 살이 부어올라 숨을 쉬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하죠. 수술해서 살을 절개하면 많이 호전될 겁니다. 그리고 휘어진 코뼈를 바르게 펴야 합니다. 당장 수술 날짜 잡읍시다.”
수술 날짜는 2주 후 토요일, 수술 시간은 오전 7시로 잡혔다. 그리고 당일 퇴원하는 것이다.
수술 전날 회사에서 조금 일찍 퇴근을 하고, 바로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서 하루를 보내고, 토요일 오전 6시에 일어났다. 그리고 오전 7시에 수술실로 향했다.
“환자분의 병명은 비후성 비염과 코뼈가 휘어 있는 비중격 만곡증입니다. 따라서 먼저 콧 속 살을 절개한 후, 휘어있는 코뼈를 바르게 잡는 시술을 할 것입니다.”
코 부위를 부분 마취하면서 의사 선생님께서 설명해 주셨다. 부분 마취라 모든 감각이 살아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을 가린 천 사이에 틈이 있어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점점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제 수술을 시작합니다. 조금 아프더라도 참으세요.”
수술이 시작된 모양이다. 간호사의 분주한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살을 절개합니다. 잇몸에 묵직한 느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잇몸? 코 속 살을 절개하는데 왜 잇몸에 느낌이 올 수 있다는 거지?’라고 생각한 순간, 의사 선생님의 수술 도구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메스가 아닌 마치 스타워즈에서 나온 제다이의 광선검 같은 모양이었다.
“이제 레이저로 살을 태울 것입니다.”
그랬다. 그것은 내 생각을 넘어선 첨단 수술 도구였다. 제다이의 광선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레이저처럼, 그 수술기구는 레이저가 발사되는 첨단 도구였던 것이다. 내 살은 칼로 도려내어지는 것이 아니라, 레이저로 태워 없어지는 것이었다. 현대 문명의 혜택을 이렇게 온몸으로 받을 줄이야...
갑자기 돌이 잇몸에 나라와 부딪치는 것 같은 강한 느낌이 왔다. 레이저가 발사된 것이다.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였다.
‘지지지지직’
무언가 타는 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나도 모르게 눈을 떴다. 그리고 천 사이에 벌어진 틈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바라보았다.
연기였다. 숯불에 삼겹살을 구울 때 나는 연기가 내 코 속에서 나오고 있었다. 마치 괴수 영화에 나오는 용가리처럼 코에서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코 속에 살이 많으셔서 태울 것이 많네요.”
의사 선생님은 웃으며 부드럽게 농담을 던지셨다. 하지만 난 도저히 웃을 수 없었다.
“이제 코뼈를 바르게 교정하겠습니다.”
그 말씀과 동시에 무언가 둔탁한 기구를 드는 소리가 들렸다. 수술을 받으면서 될 수 있으면 눈을 감고 있으면서 몸에 힘을 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 예사롭지 않은 소리는 내 눈이 자동적으로 그것이 어떤 기구인지 확인하도록 만들었다.
분명히 망치와 정이었다. 학비를 벌기 위해 공사장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돌을 쪼개기 위해 정과 망치를 자주 사용했다.
‘그런데 이런 수술에서 왜?’ 내 머리 속은 복잡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이제 코뼈를 바로잡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과 동시에 정과 같이 생긴 막대가 내 코 속으로 들어왔다.
‘텅!’
망치가 정을 치는 금속성 소리와 함께 둔탁한 충격이 머리를 강타했다. 의사 선생님이 망치를 휘두르며 내 코에 들어가 있는 정을 치고 있었다.
‘텅!’, ‘텅!’, ‘텅!’
충격이 올 때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저 울고만 싶었다. 레이저를 이용한 수술과 망치와 정을 이용한 수술. 최첨단 의료 기술과 원시적 형태의 의료 기술을 한 번에 체험하고 있는 현장이었다.
“이제 수술을 모두 마쳤습니다. 고생했습니다.”
눈을 감고 자포자기하고 있을 때, 그렇게 듣고 싶었던 음성이 들려왔다. 실로 천상의 음성이었다.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수술의 끝은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다.
코 안으로 거즈가 끝없이 들어갔다. 도저히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의사 선생님의 손놀림은 코 안이 완전히 거즈로 가득 차 있다고 느끼게 되어서야 멈추었다.
“코 속을 따라가면 부비동이라는 비교적 넓은 공간이 있습니다. 사람 몸에 상처가 나면 자연히 지혈이 되지만, 부비동 안의 상처는 지혈이 되지 않습니다. 수술 후 피를 멈추게 하기 위해서는 부비동 안을 완전히 막아놔야 해요. 호흡은 입으로만 가능합니다. 사흘간 그렇게 지내시고, 사흘 후에 다시 나오세요.”
코를 완전히 막아 본 적이 있는가! 정말이지 고통스럽다. 입으로만 숨을 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잠을 잘 수 없다. 너무 피곤해서 잠이 들어도 숨이 답답해서 곧 깨게 된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니, 머리도 아프고 하루 종일 정신이 멍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월요일 오후에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이 핀셋으로 코 안에서 거즈를 꺼내는데 계속 나온다. 정말이지 많이도 집어 놓았다. 이 정도의 거즈가 들어갈 정도로 코 안 공간이 넓을 줄은 상상조차 못 하였다.
정말 난 이제 다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그때 코피가 주르륵 흐른다.
의사 선생님이 웃으며 말씀하신다.
“코 안 부비동은 지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완전히 피가 멈추기까지는 20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때까지는 코 안에 지혈하는 솜을 넣고 다니셔야 합니다.”
화요일이 되었다. 이제는 출근을 해야 했다. 거울 앞에 섰다. 코 구멍에 집어넣은 솜이 그대로 노출된다. 깨끗한 양복 정장이 코 구멍에 보이는 하얀 솜으로 인해 그대로 개그맨 복장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코에 집어 놓은 하얀 솜은 수시로 빨간색으로 변해갔다. 어쩔 수 없었다. 하얀 마스크를 썼다.
회사에 일찍 출근해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마침 부장님께서도 함께 타셨다. 반갑게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부장님께서 굳은 얼굴로 내게 말씀을 건네셨다.
“자네, 보기보다 반골이군.”
“네?”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평소에 지시한 업무도 열심히 했는데 말이다.
“자네 지금 노조 투쟁에 동참해서 마스크 쓴 것 아닌가?”
겨우 상황 파악이 되었다. 그 당시 회사의 노조는 회장 사무실 점거 투쟁 중이었다. 부장님은 그러한 투쟁에 적극 동참하여 침묵시위를 하려고 하는 줄 아셨던 거다. 어쩔 수 없이 마스크를 벗었다.
코 구멍에 박혀 있는 하얀 솜. 부장님은 그대로 웃으며 쓰러지신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업무를 시작하였다. 직원들이 하나둘씩 출근하고 나에게 수술은 잘 받았냐고 안부를 묻는다. 일을 하면서도 마스크를 벗을 수 없었다. 그리고 솜을 갈아 교체하러 자주 화장실에 갔다.
일주일쯤 지났을 때였다. 회사 전체에 이런 소문이 퍼졌다. 한 남자 직원이 코 높이는 성형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남자 직원이 성형수술을 했다는 것은 드문 일이라 나도 모르게 호기심이 났다. 알아보니 그 직원이 바로 나였다.
비염과 비중격 만곡증으로 수술을 받은 후 나의 코 상태는 놀라울 정도로 호전되었다. 환절기라 해서 콧물로 흐르지 않았고, 숨 쉬는 데에도 아무런 불편이 없다. 감기에도 잘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비염으로 고생하는 사람을 만나면 내 경험을 이야기해 주곤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또다시 똑같은 수술을 받아야 한다면? 그건 싫다. 정말 싫다. 그래서 평소 건강관리를 잘 하는 것이 최고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