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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페트라 Feb 20. 2024

고수(향신채)와 두리안

수도 방콕 돌아보기, 태국 - ①

가족여행 겸 떠난 태국여행, 열대기후의 달콤함을 농축시켜 놓은 듯한 과일을 실컷 먹을 생각에 설레었다. 하지만 그다지 반갑지 않은 음식도 있었으니, 고수라는 향이 있는 미나리과 풀이 들어간 음식이 그것이었다. 고수를 굉장히 싫어하는 나와 아버지가 식당에 가서 가장 많이 요청했던 것은, '음식에서 고수를 빼주세요'였다. 그러면 종업원은 번역된 문장이 적힌 휴대폰 화면을 보며,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 고수는 파티의 불청객 같은 재료라고 느껴졌다. 고수 잎을 몇 개라도 넣으면 투명한 물에 파란 물감을 떨어뜨리듯이 음식의 분위기를 흐려놓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음식, 인도음식 등 향이 강한 음식을 잘 먹는 나였지만, 고수만큼은 꼭 빼고 먹었다. 10년 전 다녀온 중국으로의 교환학생에서 가장 기억나는 단어도 고수를 뜻하는 '香菜(xiāngcài)'일 정도이다.


하지만 동생은 나와는 상당히 다른 입맛을 가졌다. 고수를 빼달라고 요청한 나와 달리, 동생은 큰 눈을 반짝이며 '저는 고수를 많이 넣어주세요.'라고 주문을 넣었다. 동생은 고수를 파티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고수를 잔뜩 뿌린 동생의 조식 쌀국수>


짓궂은 버릇이 나온 내가 동생에게,


"고수는 화장품 맛이 나는데 왜 좋아해?"라고 했더니 돌아오는 답변은,


"그럼 두리안은 휘발유 냄새가 나는데 왜 그렇게 좋아해? 난 그거 못 먹겠어~ 그런 거랑 비슷한 경우 뭐."


두리안은, 천국의 맛, 지옥의 냄새를 가졌다고도 알려진 열대과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냄새단계에서 더 이상 접근을 못하기도 한다. 원산지인 동남아의 호텔에서도 반입금지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두리안의 버터와 크림덩어리 같은 과육은 입안에서 묵직하게 녹아내리며 나의 미각을 즐겁게 해 주었다. 사람들이 기피하는 그 냄새도, 내게는 그 과육과 어우러져 맛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준다고 느껴졌다. 기어코 방콕에서 두리안 전문카페까지 검색하여 두리안으로 만든 아이스크림과 쉐이크, 조각케이크까지 먹고 나서야 직성이 풀렸다.


<뾰족한 가시가 가득한 외피를 자르면, 버터크림처럼 보드라운 과육이 몇 덩어리씩 들어있다.>


이렇게 두리안을 좋아하는 내게, 두리안에서 휘발유 냄새가 난다니? 고수의 맛을 비난했던 것은 글러먹은 행동이었음을 깨달았다. 고수는 동생에게는, 음식의 풍미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훌륭한 향신료였던 것이다.


최근에 한 지인의 언행을 이해하기 어려워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었다.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기에 더 신경을 쓰게 되면서 민감해졌던 것 같다. 하지만 여행의 기억을 통해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있었다. '그냥 나는 두리안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너는 고수를 좋아하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해 보기로 한 것이다. 상대에게 조언하거나 화를 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냥 취향과 가치관의 차이인 것뿐이니까! 


선을 긋지 않고 열린 마음을 가진다면 가끔 발견하는 공통점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은 덤이다. 마치 동생과 내가 망고스틴이라는 열대과일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낸 것처럼 말이다. 태국여행 마지막 날, 우리는 봉지에 가득 사온 망고스틴을 손가락이 자줏빛으로 물들 정도로 많이 까먹었다. 나의 두리안과 너의 고수가 있지만, 우리에게는 모두의 망고스틴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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