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부르다.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하나요?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노래를 부른다.
떠오르는 마음을 음표로 표현하기도 하고 단 한 사람을 위해 가사를 붙이기도 한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림을 그린다.
눈으로 담고 마음에 새기며 한 사람만을 위한 독창적인 붓터치를 이어간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글을 쓴다.
특별한 기술은 없지만 나의 생각을 담담하게 담아내려고 한다.
오늘 밤, 오직 단 한 사람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누굴 찾아갈 것인가?
알고 있는 사람 중 가장 현명한 사람은 누구인가?
당신의 삶이 오늘 끝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난 대답한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경자다.
이어 두 번째 물음을 한다면 그에 대한 대답도 경자이며,
마지막 질문을 한다면 그 또한 나의 대답은 경자와 눕는 것이다.
모든 물음에 대한 대답은 경자다.
경자는 우리 엄마 이름이다. 엄마는 그렇게 살아왔다. 내가 태어난 이후로 더 정확하게는 우리 오빠가 태어난 이후로 경자가 아닌 엄마가 되어야 했다. 한 때는 경자의 개성을 나타내는 옷과 머리였지만, 엄마가 된 후에는 옷을 입을 때도 아이를 생각하며 골랐다. 머리를 할 때도 자기표현보다는 실용성을 생각하며, 집안의 인테리어까지 모두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들을 위한 선택을 하며 살았다.
난 사람들에게 나의 이름이 불려지는 게 좋다. 어떤 사람을 만나든 난 내 이름을 소개한다. 내 이름은 나다. 나에게 애착 있는 별명이나 호칭을 불러주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이름이 불릴 땐 어느 역할에 치우치지 않는 나의 정체성이 살아나는 느낌이 든다. 경자도 사람들에게 경자일 뿐이었다. 엄마가 되기 전까지. 당당하고 아름다운 그녀의 아우라는 경자가 아닌 누구의 엄마로 소개될 뿐이었다. 내가 내 이름을 좋아하듯 엄마도 '경자'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를 좋아하시지 않을까. 이걸 깨닫고 나니 나처럼 이름을 듣고 싶으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경자 씨는 가장 위대한 여성이다. 자식 둘을 바르게 잘 키워내신 건 물론이요, 남편이 하고 싶은 것은 할 수 있게 지지해주면서 때론 따끔한 조언을 하신다. 가끔 우리 아빤 전생에 어떤 일을 했길래 엄마를 만났을까 생각한다. 물론 실제로도 아빠한테 말한다:) 또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신다. 이건 나라면 절대 못할 것 같다. 이유를 들자면 너무 길어지니 넘어가야겠다.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펼치고 계시며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신다. 뿐만 아니라 일본어, 운동 등 자기 계발을 열심히 하신다.
평일 저녁에 늦은 밥을 먹고 있는데 다른 용무의 학부모가 이어서 전화가 온 적이 있다. 한 전화를 끊으니 바로 다시 전화가 오는 정말 장난 같은 경험을 해봤다. 국도 밥도 식다 못해 차가워져 버렸고, 근본적으로 내가 어떻게 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라서 정말 마음이 턱턱 막혔다. 그때 경자의 번호가 핸드폰 화면에 떴다. 지금 이런 나의 상황을 보고 있었던 것처럼 그때 전화가 온 것이다.
경자 씨는 말에 깊이와 힘이 있다. 누구나 아는 내용,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경자 씨가 해주면 나에겐 다르게 다가온다. 가슴이 꽉 막혔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아무 이유 없이 전화를 걸어도 다 알고 계시는 것 같다. 이게 엄마의 힘인가. 절대 캐묻지 않으시지만 나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신다. 사회생활과 인생 선배, 그리고 같은 여자로서 나에게 진심을 담아주신다. 그래서 난 경자에게 위로를 받고 싶다.
엄마는 마지막 그 한 조각을 아는 분이다. 그 현명함은 엄마를 때로는 수사관, 전문경영인, 합리적인 소비자 등으로 변신시켜준다. 경자 씨가 현명하다는 것은 내가 산 증인이다. 사소한 생활의 팁부터 큰 결정을 내리는 것까지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해서 후회해본 적은커녕 감탄만 해왔다. 그래서 나는 내가 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판단이 되면 경자의 지혜를 빌려 그 일을 해결한다. 가끔 엄마가 없다면 난 어떤 선택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까 라는 무의미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너무 버거운 삶이 될 것 같다.
난 경자가 안아주는 그 따뜻함이 가장 좋다. 내가 아무리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걸 좋아한다고 해도 엄마품은 어떤 걸로도 흉내 낼 수 없다. 기억도 안 나지만 이건 마치 평온했던 엄마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다 큰 딸이지만 누워서 서로 눈을 맞추거나, 엄마가 머리를 넘겨주고 꽉 안아주면 세상 모든 근심이 사라지곤 한다. 기분 좋은 눈 감김이 찾아오고 숨도 고르게 된다. 만약 내가 내일 세상을 떠나야 한다면 한 번만 더 엄마 품에 들어가고 싶다. 그러면 끝난다는 두려움이 녹아 편하고 진정된 상태가 될 거라고 확신한다.
경자랑 쇼핑을 하거나, 둘이 데이트를 할 때면 소녀처럼 좋아하거나 말하는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럴 때면 난 엄마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드려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또 집안일을 나와 상의하거나 하나씩 말씀해주시는 걸 들으면 앞으로 더 든든한 딸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내가 엄마에게 갖고 있는 감정과 마음을 되돌아보면, 나도 딸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경자처럼 대단한 엄마가 되지 못하더라도 한 인간이 기댈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난 감사히도 넘치게 받았는데, 늘 더 주지 못해 미안해하신다. 난 충분한데. 지난 26년간 엄마에게 받기만 한 사랑, 보살핌을 이젠 돌려드려야 한다. 우리 경자 씨 딸을 아주 잘 둔 덕에 더 행복할 일만 남았다고 약속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