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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운 Mar 01. 2021

시작은 3월 2일

교사를 하는 동안엔 변하지 않는 진리

꼬박 3년이 지났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는 건 분명하지만

10년, 15년, 25년을 교직에 몸담고 계신 분들 사이에 있으면 절로 겸손해진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교사라는 직함을 갖게 된 나에게도, 20대 중반을 살아가는 나에게도

크고 작은 경험이 모여 내 삶의 틈을 채워줬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배울 게 많은 쪼렙이다.



2018년의 3월
낯설고, 설레기도 하면서 두렵고 긴장되었던 그때

2021년의 3월은 그 시절과 많이 닮아있다.

내일은 내가 학교를 옮겨 새로운 교육과정을 시작하는 첫날이다.

그렇다. 소속이 달라졌다!



3년 차가 되고 누구나 한 번씩 하게 되는 '학교를 옮기는 문제'에 대해 고민했다.

내가 남아도 좋은 이유는 단 두 가지였다.


첫째, 따뜻한 기억이 많다.

난 서툴렀다. 특별한 교사도 아니었고 특출난 교사도 아니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날 반겨줬고, 서로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큰 일은 많지 않았다. 물론 어른인 나만의 생각일 수 있어 확신은 하지 못하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고마운 게 많다. 처음이라 더 애틋하고 감동이었던 사소한 일들이 가득하다. 이 학교가 소중한 기억을 남겨준 아이들을 만났던 곳이라는 것. 그게 첫 번째 이유였다.


둘째, 집과 학군이 멀다.

자취를 하고 있는 집이나 아파트 문 앞으로 가끔 학생들이 찾아온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교사인 친구들이 학교 주변에서 밥을 먹거나 퇴근을 할 때 길이 같은 방향인 이성인 동료와 걷는 것조차 불편하다고 한 적이 있다. 소문이나 가십거리에 교사가 종종 등장하게 되는 일이 생긴다나. 생활 반경과 학군이 같아지면 불편한 일이 많아진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학교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남아야 하는 이유보다 나가야 하는 이유가 더 많았다.  

내가 있는 지역에서는 한 학교에 5년 이상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지역 제한도 있어서 10년 만기가 되면 다른 지역으로 나가야 한다. 다른 지역으로 전보를 갈 때도 점수를 쌓아야 원하는 지역으로 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고생을 많이 해야 한다. 계산을 해보니 이 학교에 1년 더 있게 되면 4년 차가 되는데 그때 학교를 옮기면 애매해져서 5년을 꽉 채워야 하는 선택지를 골라야 한다. 미래를 생각하자니 나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이유는 더 있다.

작년에 코로나가 나에게 온라인 학습 업무를 가져다주었다. 내가 맡는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코로나로 업무가 아예 사라진 사람도 있고 몇 배가 된 사람도 있는데 그런 조율이 잘 안 되는 것 같아 보였다.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그리고 내가 뭔가 말을 할 수 있는 짬이 아니기에 받아들이고 뭐라고 못했지만 생각하긴 싫다. 올 겨울에 정말 추웠다. 근데 노후화된 건물로 인해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늘 몸이 얼어있었다. 손이 너무 시려서 마우스를 잡기도 힘들었다. 학교에서 핫팩을 나눠줄 정도이니.... 하루 종일 몸이 굳어있었다가 이사를 해서 멀어진 집으로 출퇴근을 하려니 몸과 마음이 다 지쳤다. 새로운 경험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마지막까지 날 뭉클하게 만들어준 학교

학교를 옮기기로 결정하고 내가 처음 담임을 맡았던 아이가 졸업식이라며 인사를 하러 우리 교실에 들렀다. 

내년에 학교에 놀러 오면 볼 수 있냐는 아이의 질문에 아쉽지만 난 없을 거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선생님 가지 마세요"라고 말하며 내 옷을 꽉 잡았다. 잊을 수가 없다.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다며 아이를 다독이고 보냈다. 

2년 전에 첫 제자들과 한 약속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스무 살이 되는 해에 다 같이 모여 치맥을 하기로 했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제발 올 한 해도 무사하길!

새 학교에서도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고 싶다. 3년이나 했는데 뭐 그리 자신 없냐고 물어볼 수도 있지만, 모든 학교에는 그 학교만의 방식이 있다. 학교 주변 가정의 환경과 학부모의 성향, 학생들의 태도 모두 학교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다. 물론 공통적으로 국가 교육과정을 적용하지만 학교 내부, 외부의 조건에 의해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건 다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업무라도 학교마다 다른 매뉴얼을 가지고 있다. 전혀 다른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에서 의사소통 방식도 달라지기 때문에 학교를 옮기게 되면 교과서 내용 빼고는 다 달라진다고 보면 된다. 


수업 준비를 하고, 한 해를 어떻게 꾸려갈지 고민을 하다가 문득 글을 쓰게 되었다.

걱정 가득한 오늘 밤도 카네기의 자기 관리론을 읽으며 진정해보려고 한다.

어디선가 시작을 걱정하고 두려워할 당신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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