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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쥐마담 Mar 01. 2024

23. 방향 상실

국가정신건강포털에서는 주요 우울장애의 진단 기준(DSM-5)으로 9가지 증상을 제시하고 있다. 이 증상들 중에서 5가지 이상이 최소 2주 이상 거의 매일 지속되고, 최소한 한 가지 증상은 우울한 기분 또는 흥미나 쾌락의 상실이 면 우울증이라고 진단한다. 나의 경우는 9번 항목(죽음에 대한 생각이 되풀이되어 떠오르거나, 특정한 계획이 없는 자살 사고가 반복되거나, 자살을 시도하거나, 구체적인 자살 계획을 세움)을 제외하고는 전부 해당이 되었다. 


증상 1. 거의 매일 우울한 기분이 이어지고, 수시로 슬픔, 공허감, 아무런 희망이 없는 느낌이 들었다. 증상 2. 거의 모든 활동에 대한 흥미나 즐거움 감소된 상태가 거의 매일 이어졌다. 아무리 일정이 바빠도 조금씩 짬을 내어 혼자 노는 재미를 누리던 나는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었다. 즐겨 듣던 음악이 소음으로 느껴져서 음원 구독 서비스를 해지했다. 증상 3. 체중은 수술 전과 비교할 때 3kg가 줄었다. 증상 4. 처방받은 수면제를 먹지만 잘 못 자는 날도 있고, 그런 날은 아침에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증상 5. 반찬을 만들거나 수업 준비를 하거나 글을 쓰는 일이 잘 안 되고, 그러면 안절부절못하고, 평소보다 지체될 때가 많았다. 증상 6. 거의 매일 피로감에 절어 있고 활력은… 그게 뭔데요? 증상 7. 쓸모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생각이 수시로 마음을 파고들었다. 초등학교 5학년 생인 막내는 원래 스스로 아침을 챙겨 먹고 학교에 갈 준비를 하는데,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니 전에 없던 죄책감이 들었다. 증상 8.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켜면 시시각각 사고력과 집중력이 감퇴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전 내내 카페에서 작업을 해도 A4지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0기 유방암으로 시작된 나의 병치레는 불면증을 거쳐 우울증에 도달한 셈이었다. 환자가 되었다고 해서 모두 우울증에 걸리라는 법은 없고, 나는 겨우 0기 암 환자인데 이게 무슨 꼴인지, 기가 막혔다. 2016년에 우울증을 앓았을 때는 재취업에 도전하면서 활로를 찾았지만 지금은 하던 일도 그만두었다. 어떻게 상황을 돌파해야 할지 난감했다. 체력이 안 되니까 우울한 건지, 우울해서 몸이 안 따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대학 병원에서 영양사와 상담을 할 때 받은 브로슈어에는 일주일에 최소 150분, 중강도 이상의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하라고 나와 있었다. 운동에 아무런 흥미가 없고 그나마 걷는 건 거부감이 들지 않아서 점심을 먹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곤 했는데, 체력이 떨어진 데다가 봄철의 단골손님인 황사와 미세먼지가 심해지자 침대를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어쩌다 기운을 끌어모아서 운동화를 신고 집밖으로 나가면 체력이 반토막 났다는 사실을 마주하고 낙심해서 돌아왔다. 


7년 전, 발목에 진득하게 달라붙은 우울증과 무기력증은 집을 아늑하고 평화로운 안식처로 만들기 위해 애를 쓰다가 나를 갈아 넣은 결과였다. 당시에는 집이 무덤처럼 느껴졌다. 어떻게든 집을 벗어나고 싶었다. 잃어버린 나의 영역을 되찾기 위해 시간강사로 다시 학교에 출근했을 때 비로소 깊은숨을 쉴 수 있었다. 점심시간에 학교 뒤편의 언덕을 산책하다가 소나무와 참나무에 둘러싸인 아담한 묘지를 발견했다. 남향의 묘지는 오후의 햇살을 가득 받아 따뜻하고 평화로웠다. 그 묘지를 거닐면 망자가 누리는 영원한 안식을 조금 맛본 기분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낮에 묘지를 산책했던 경험을 떠올려 글을 썼다. 기회가 될 때마다 시간을 내어 다른 묘지들도 방문했고, 4년 간의 걸음은 책 한 권 분량의 원고로 묶였다. 이 원고와 결이 맞는 출판사를 찾기 위해 고심했고 조심스럽게 A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다. 2021년 2월에 출판 계약이 되었고, 나는 환성을 올렸다. 성실히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기 때문이다.


A 출판사의 대표님으로부터 원고를 출판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연락을 받은 것은 그해 가을이었다. 그는 암과의 사투를 앞두고 있었다. 대표님의 암 재발 소식에 마음이 아팠고, 동시에 출판 계약을 했다가 엎어진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책을 내는 일은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와 비교가 될 수 없었고 원고는 내 손으로 돌아왔다.


대표님이 메일에 쓰신 말처럼 더 늦기 전에 책을 낼 곳을 찾아야 할 텐데… 반토막난 자신감을 긁어모아서 B 출판사에 연락을 했고, 그 해가 가기 전에 계약이 되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유방암 진단을 받고 대학 병원에서 수술 방식을 정한 다음 날, B 출판사 대표님에게 메일을 받았다. 출판사의 사정으로 묘지 원고의 출간이 기약 없이 길어질 수 있을 것 같아서 출간을 포기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글을 쓰는 것보다 애를 낳고 키우는 일이 훨씬 고생스럽다고 생각하기에 원고를 자식에 빗대는 걸 무척 싫어하는데, 그때는 결혼식을 잘 마치고 5박 6일짜리 신혼여행을 떠났다가 이틀 만에 못 살겠다고 캐리어를 질질 끌고 돌아온 자식을 맞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B 출판사 대표님이 그 계약을 어떻게든 지키려고 나름 애를 썼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기에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두 번의 계약과 두 번의 파약을 거쳐 원고는 다시 내 서랍으로 돌아왔다. 두 번의 계약은 이 원고가 독자를 만날 수 가능성이 있다는 증거였지만 두 번의 파약은 그 가능성을 증발시켰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의 묘지 여행기를 2024년에 펴낼 수 있을지, 이 원고의 유통기한은 이미 만료된 게 아닌지 의문이 이어졌다. 우울증으로 새로운 글을 쓸 수 없다면 헌 글이라도 고쳐 보자! 설마 그것도 못하진 않겠지. 눈을 뜨면 샐러드 한 그릇을 꾸역꾸역 먹고 카페로 나가서 묘지 원고를 고쳤다. 글은 고칠수록 좋아지는 법이고, 몇 백 년 전에 쓴 글도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아직까지 살아있으니 분명히 돌파구가 있을 거라고 긍정 회로를 돌렸다. 단행본 한 권이 될 수 있는 원고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자니 너무 아까웠다. ‘이건 두 번 계약이 되었던 글이야. 그러니까 어디서든 다시 계약이 될 거라고. 이번에는 나도 원고를 여러 출판사에 뿌려 봐야지!’ 심호흡을 하고 밭두둑, 아니 복사기 앞에 섰다. 투고하기 전에 새 마음으로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점검하려고 출력을 했다. 글은 고칠수록 좋아지니까, 갈고닦아서 반짝반짝 빛나는 상태로 보내야겠다…는 개뿔, 원고를 끝까지 읽기가 어려웠다. 글에 담긴 내 목소리가 듣기 싫어서 귀를 틀어막은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1년여 만에 묘지 원고의 첫 장을 펴자마자 연결이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설마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글을 쓴 거냐? 내가 나에게 던진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어서 민망했다. 부리나케 문장을 다듬고 고쳤다. 서문을 보완하고 각 장마다 널뛰는 부분을 살살 달래서 차분하게 앉히고 후기를 새로 쓰기 위해 망우리 공동묘지도 다녀왔다. 역시 글은 고칠수록 좋아진다는 말은 진리였다. 하지만 4주 동안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시간을 쏟아부었는데도 바꿀 수가 없는 부분이 있었다. 묘지를 돌아본 나의 감상이 너무 얄팍하고 단편적이었다. 언뜻 보면 뭔가 있어 보이는데 두 눈을 부릅뜨면 안개처럼 사라진달까. 1cm만 더 깊이가 있으면 좋겠는데 그 1cm가 없었다. 묘지를 거닐며 감히 삶과 죽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늘어놓은 말들은 관념적이고 가벼웠다. 암이라는 세계에 들어온 독자의 눈으로 그 원고를 읽으니 간지러웠다. 


이 원고를 살릴 수 없다는 생각이 진해질수록 나는 묘지 원고에 더 매달렸다. 작업 속도가 나지 않아서 밥을 먹는 시간도 아까웠다. 어떻게든 원고를 살려 보려고 없는 기운을 총 동원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를 달달 볶았다. 계절은 충만한 봄으로 바뀌었는데 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암 진단을 받은 날부터 매일 메모를 했는데 묘지 원고에 집중한 마지막 주간에는 아무 기록이 없었다. 그만큼 강박적으로 글에 집착했다. 하지만 그 원고는 저자인 나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나는 완전히 녹초가 된 상태로 묘지 원고를 떠나보냈다. 더는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에 둘러싸였다. 


묘지 원고에서 손을 떼고 12일 뒤, 대학 병원 암통합케어센터에 갔다. 임상 강사는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다. 의사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의사였다. 나는 의사에게 지난 42일 동안 처방받은 약 덕분에 비교적 잘 잤고, 하지만 약 없이 자려고 시도한 날은 여지없이 불면의 밤을 보냈고, 무엇보다도 우울감이 심해졌다고 알렸다. 의사는 지금 처방한 약은 저용량이고 아직 약을 줄일 단계는 아닌 것 같지만 클로나제팜을 반의 반으로 줄여서 먹어볼 수도 있고, 우울증에 대해 약을 추가로 처방해 줄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선생님, 제가 글을 쓰는데, 글이 안 써지고 체력이 떨어져서 우울한 것 같아요. 저는 2016년에 우울증을 겪었던 적이 있으니, 어떻게든 제 힘으로 저를 끌어올려 볼게요. 그래도 안 되면 약을 처방해 주세요. 지금 수면제 먹고 있는 것도 속상한데, 약을 더 먹고 싶지는 않습니다.” 의사는 4주 뒤로 예약을 잡으면서 혹시 그 사이에 우울감이 심해진다고 느껴지면 간호사실로 전화해서 예약을 앞당기라고 했다. 우울증의 끝은 자살이니까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는 건가? 설문지를 작성해서 처음 진료를 받았던 때와 지금의 상태를 비교하기 위해 설문지를 작성하고, 전과 동일하게 수면제를 처방받았다.   


우울증은 환자 자신이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지점에서부터 치료가 시작된다. 비록 지금은 방향을 상실한 기분이지만 의사 앞에서 나의 상태를 인정했으니 어떻게든 출구를 찾겠지. 병원을 나와 지인들을 만나려고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계속 처지고 얼른 집에 가서 눕고 싶다는 생각이 짙어졌다. 출구는 생각보다 멀리에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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