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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쥐마담 Mar 09. 2024

24. 똥멍청이

의사 앞에서 내 힘으로 나 자신을 끌어올리겠다고 큰소리를 땅땅 치고 진료실을 나왔지만 예전처럼 친구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시시각각 후회가 되었다. 잠을 못 자니 우울하고, 체력이 회복되지 않아서 우울하고, 나물을 무치든 강의를 준비하든  원고를 쓰든 일의 종류의 상관없이 집중력이 떨어지고 평소에 쓰던 에너지의 몇 배를 들여도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우울했다. 매일 복용하는 항호르몬제의 부작용 중에도 우울감이 있으니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의사를 만나고 7일 뒤 한 과학고등학교에 특강을 하러 갔다. 평소 같으면 신이 나서 준비를 했을 텐데, 그런 감정은 깨알만큼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기분은 기분이고 일은 일이므로 힘을 다해서 강의를 준비했다. 학생들의 특성을 고려해 과학 이야기에서 출발해 글쓰기의 재미와 보람으로 마무리를 할 계획이었다. 이 강의를 잘 마치면 약간의 성취감을 얻을 것이고, 그러면 우울감을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강의는 그럭저럭 마쳤지만 잘한 부분보다 아쉬운 부분이 더 크게 잔상으로 남았다. 기분은 점점 더 가라앉았다. 

이틀 뒤 부처님  오신 날에는 장마철도 아닌데 30mm가 넘는 폭우가 내렸다. 우울감에 잠겨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다음 날은 비가 더 많이 내렸다. 딸이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겠다고 해서 같이 도서관에 갔는데 길을 나서자마자 신발이 젖었다. 젖은 발로 걸을 때마다  마음까지 축축해졌다. 다음 날, 비는 잦아들었지만 철퍽거리는 기분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젖은 물걸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걸레는 청소에라도 쓰지. 나는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면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억지로 일어나서 베란다 창틀의 먼지를 닦기 시작했다. 먼지라도 닦아서 나의 쓸모를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베란다 청소를 하고 나면 개운해질 줄 알았는데, 냉장고의 얼룩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던 얼룩과 때를 보고 넘길 수가 없었다. 내가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걸 알지만 그 과민을 다스기가 어려웠다. 그날 오후에 후배에게 연락을 했다. 2년 넘게 후배의 아들에게 독서와 작문을 가르쳤는데, 그 수업마저도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지금은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해서 더는 수업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안내받은 식단에 입맛을 끼워 맞춘 지 4개월이 넘었다. 먹는 즐거움은 반납했다고  치고, 운동은 어떻게 할지 고민이었다. 이따금 동네를 걷기는 했지만 그걸 운동이라고 할 수는 없는 수준이었다. 강도는 약했고 빈도는 불규칙했다. 게다가 작년부터 오래 걸으면 오른쪽 엉덩이 옆이 쑤셨다. 이 통증과 유방암은 아무런 연관 관계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괜스레 염려가 되었다. 집에서 가까운 정형외과에 들러서 엑스레이를 찍고 혈액 검사를 했는데 의사는 혈액 검사 결과 염증 수치는 모두 정상 범위이고, 디스크가 조금씩 뒤로 밀려서 물리적인 통증이 있는 거라며 물리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선생님, 병원에서 유방암 재발을 예방하기 위해서 꼭 운동을 하라고 했는데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그러면 살살하세요.” 의사의 심드렁한 대답에 슬슬 화가 나려고 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정말 싫어하는 것을 두 가지 발견했는데, 운전과 운동이다. 운전은 강박감을 극복하지 못해서 포기했고, 운동은 재미를 경험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운동으로 땀을 흘렸을 때 ‘개운한’ 느낌이 들었던 적은, 내 기억으로는 없다. 땀을 흘리면 찝찝할 뿐이지… 운동의 강도와 빈도를 모두 잡아야 하니 헬스클럽에 가면 되는데, 도저히 발이 안 떨어졌다. 무지막지한 운동 기구에 둘러싸이는 상상만 해도 주눅이 들었다. 유튜브에서 ‘헬스 초보’, ‘헬린이 여자 하체운동 루틴’ 같은 문구를 넣어서 검색된 영상을 수십 편 보면서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새 운동화를 샀다. 내키지 않는 운동을 시작하니 보상이 있어야 했다. 강원도 양양에 계신 수사님께 전화를 걸어서 2주 뒤에 수도원에 방문하겠다고 말했다. 우울과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볼 생각이었다.  


구에서 운영하는 스포츠센터에 가서 한 달 등록을 했다. 돈이 아까워서라도 운동을 하겠지 싶었는데 난데없이 다자녀 할인을 받았다. 비용의 부담을 덜었는데 기쁘지가 않았다. 너무 싸서 안 가도 그만이라고 여기면 어쩌지? 떨리는 마음으로 스포츠센터에 들어갔다. 러닝머신을 좀 타다가 랫풀다운, 레그타이, 힙 어브덕션을 하고 스트레칭으로 마무리하면 되겠지? 러닝머신에 올라가 속도를 4에 맞추고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벨트가 움직이는 흐름에 맞출 수가 없었다.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이었다. 너무 당황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내려와서 대안으로 사이클을 탔다. 겨우 10분 탔는데 하체가 마비된 느낌이었다. 상하체 운동기구를 조금씩 이용해 보고 다시 러닝머신에 올라갔는데 마찬가지였다. 러닝머신도 못 타다니… 땀보다 좌절감이 몇 배로 흘러나온 기분이었다. 


어찌어찌 운동을 마쳤다. 락커룸에 붙어 있는 자바라 문을 열었더니 할머니 회원님 세 분이 샤워를 하고 있었다. 샤워 헤드는 여섯 개쯤 있었지만 나까지 들어가면 약간 비좁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얼른 샤워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문을 닫고 어서 샤워실로 들어갔다. 한 할머니 회원님이 키가 커서 물이 튄다고 하셨다. “앗, 죄송합니다.” 다른 할머니들이 키가 커서 튀는 걸 어쩌겠냐고 웃으며 말하셨다. 오늘이 처음이냐고 묻는 분도 있었다. 태어나서 헬스장에 처음 왔는데 아직 적응이 안 된다고 했더니 2,3일이면 적응할 거라고 하셨다. 정말 그런가? 후다닥 몸을 씻고 샤워실에서 나왔다. 옷을 갈아입고 스포츠센터를 나와서 아까 샤워실에서 만났던 할머님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다. “아까 샤워실에서 나올 때 문을 안 닫았어요.” 이 말이 나에게 건네는 말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2초쯤 걸렸다. “어머, 제가 그랬나요? 몰랐어요. 너무 죄송합니다.” “사람이 지킬 건 지켜 줘야 하는데 말이지…” 나는 할머님의 등판에 연신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고 말했다. 얼마나 스포츠센터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으면 샤워실의 자바라 문을 안 닫고 나왔을까. 갑자기 서러움이 파도처럼 몰아쳤다.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날 처음 ‘울컥’을 경험했다.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스포츠센터에 갔다. 운동은 영원히 싫어할 수도 있고, 사실 그러고 싶지만 무엇 하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러닝머신도 못 탄다니, 참을 수가 없었다. 러닝머신의 속도 조절 버튼을 자세히 보니 어제는 보이지 않던, ‘점’이 보였다. 버튼을 한 번 누를 때마다 속도가 0.1 단위로 올라가는 거였다. 내가 어제 4라고 생각한 속도는 실은 0.4였다. 속도가 너무 느리게 설정되어서 아무리 보폭을 맞추려야 맞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속도를 4로 올려 10분을 걸은 뒤에 6으로 올려서 빠른 걸음으로 15분을 걷고 다시 4로 내려서 마무리를 했다. 


나는 러닝머신도 못 타는 똥멍청이는 아니었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집으로 돌아왔다. 생애 최초의 러닝머신 체험은 확실한 결론을 남겼다. 실내에서 걷는 건 싫다는 것, 밖을 걷는 편이 훨씬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날 이후 다시 스포츠센터에 가지 않았다. 대신에 집에서 가까운 서울 성곽길을 열심히 걷기로 마음먹었다. ‘아침에 성곽길을 걷지 않으면 저녁에 가기 싫은 스포츠센터에 가야 한다’는 법칙을 만들었다. 스포츠센터를 배수의 진으로 삼고 운동하는 사람도 있을까마는, 우울과 무기력을 떨치기 위해서라면 뭔들 못할까.


스포츠센터에서 처음 경험한 ‘울컥’은 열흘 뒤 양양의 수도원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다시 나타났다. 막내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를 하라는 말을 남기고 현관문을 나섰는데 버스에 오른 지 5분쯤 되었을까, 막내가 전화를 했다. 왜 전화를 했지? 무슨 일이 있나? 막내는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엄마에게 날씨를 물어보려고 전화했다고 말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전화를 끊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이게 울 일인가? 아닌 것 같은데 왜 눈물이 나지? 아무리 진정을 하려고 해도 30여분 동안 진정이 되지 않았다. 양양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서 수사님을 만나 점심을 먹고 바다도 보았다. 2박 3일 일정으로 왔으니 수사님 말씀대로 마음 편히 쉬고 가면 되는데, 그날 밤에 한숨도 자지 못했다. 수면제는 아무 소용이 없었고, 심지어  막내가 교통사고로 죽는 꿈을 꾸었다. 꿈은 꿈일 뿐이지만 너무 불안하고 무서웠다. 수사님께 간밤에 잠을 자지 못해서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졌고, 예정보다 하루 앞당겨 집에 돌아가야겠다고 말씀드렸다. 양양 버스 터미널에서 표를 사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는데 그때 다시 울컥 버튼이 눌러졌다. 버스에서 한 시간 넘게 울었다. 아무리 멈추려고 해도 멈출 수가 없었다. 이건 정상이 아닌데?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집에 돌아와 막내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불안감이 잦아들었다.


3일 뒤에 대학 병원 암통합케어센터 진료가 있었다. 의사는 우울감에 대해 물었다. 2주 전부터 규칙적으로 집 근처 성곽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우울감과 무기력감은 조금 나아지는 것 같다고 했다. 의사는 걷기가 감각에 자극을 주고 성취감도 있어서 정신건강의학과 외래에서 우울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에게 처방한다며 아주 잘하고 있다고 피드백을 주었다. “그런데 선생님, 난데없이 울컥하는 일이 몇 번 있었어요.” 의사는 그 ‘울컥’이 항호르몬제를 복용하는 환자들이 흔히 호소하는 증상이라고 했다. “만약에 제가 이 증상을 호전시키기 위해서 약을 먹는다면 얼마나 먹어야 할까요?” 의사는 기분과 관련된 약은 6개월 이상 꾸준히 먹어야 효과가 있다고 했다. 그 설명을 들으니 약을 더 먹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졌다. 의사에게 조금만 더 노력을 해 보겠다고 말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과연 내 힘과 노력으로 정상이 아닌 나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집에 돌아와 침대로 들어갔다. 소똥은 말리면 연료라도 되지만 침대에 길게 누운 똥멍청이는 어디에 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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