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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쥐마담 Mar 22. 2024

26. 몸은 좀 어떠세요

8월의 무더위가 한풀 꺾인 월요일 아침, 남양주에 있는 M 학교를 향해 길을 나섰다. 지난 겨울방학과 봄 학기, 여름방학을 뛰어넘어 출근을 하게 되었다. 성곽길을 오르며 여름을 버텼지만 체력은 여전히 반 토막이 난 상태였다. 이런 몸으로 왕복 3시간의 행로난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고 선생님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을지, 수업은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염려되었다. 용기를 낸 줄 알았는데 실은 만용을 부린 격이었을까?


월요일 아침 8시의 지하철은 이미 사람으로 가득했다. 드디어 나도 이 사람들처럼 출근한다! 순간적으로 마음이 벅차올랐지만 곧 숨이 막혔다. 어떻게든 열차에 올라타야 출근이든 뭐든 할 게 아닌가. 전동차의 출입문이 열렸지만 발 디딜 틈을 찾기 어려웠다. 가까스로 몸을 구겨 넣자마자 눈앞에서 문이 닫혔다. 나는 수족관의 낙지처럼 문에 찰싹 붙어서 옴짝달싹 못 하는 꼴이 되었다. 두 역만 지나면 내릴 거니까 잠깐만 버텨야지. 집에서 나온 지 10분이 될까 말까 한데 벌써 퇴근하고 싶어지는 걸 보니 확실히 출근길이 맞았다.   


열차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진입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열차가 정차했지만 내가 붙어 있던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열려야 하는데, 왜 안 열리지? 어리둥절해하는 찰나에 반대쪽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다. 6년을 오간 길이라 눈을 감고도 출근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겨우 두 계절을 건너뛰었을 뿐인데 출근길은 낯설고 어색했다.


학교에 도착해 교무실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선생님들의 인사말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선생님, 반가워요!”

“잘 지내셨어요?”

“좀 말라 보여요.”

"건강은 어떠세요?"


오랜만에 만난 건 피차 마찬가지인데 모든 인사말은 나에게로만 쏠렸다. 선생님들이 나를 걱정하고 마음을 쓴 만큼 관심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 내게 건네는 말들이 인사치레가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한꺼번에 쏟아지는 질문을 혼자 감당하려니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평소에 관심받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도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 얼떨떨했다. 선생님들은 예전처럼 그대로인데 나만 어딘가로 튕겨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듯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열리지 않는 전동차 문 앞에 다시 서 있는 기분이었다.


“아, 네. 뭐…”


나는 선생님들의 인사에 답하는 둥 마는 둥 말끝을 흐렸다. 대답을 뭉개지 않으면 정말 솔직하게 말할 것만 같은 충동이 들었다. ‘저도 반갑습니다. 제 안부가 궁금하시다니, 내키지는 않지만 말씀을 드려야겠죠. 지난 8개월 동안 잘 지내지 못했습니다. 하루하루가 만만치 않았어요. 몸은 당연히 괜찮지 않고, 정신도 영 별로인 것 같습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 적도 있어요. 겨우 0기 암 환자인데도 말이죠! 그런데 어찌어찌하여 출근을 했네요?’


내 입에서 힘들다, 괜찮지 않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서 불안하고 걱정스럽다는 말이 나오면 상대방은 당황할 것이다. 예상 범위를 뛰어넘는 대답으로 안부를 물은 사람을 머쓱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하지만 상대방을 배려하겠다고 얼굴 가득 억지 미소를 지으며 그동안 잘 지냈다고, 나는 원래 날씬했다고,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하고 컨디션도 좋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이라도 데려와서 입이 없는 헬로키티가 되게 해 달라고 빌고 싶었다.


얼른 자리에 앉았다. 나는 여기에 일하러 왔고 지금 중요한 건 수업이니까. 노트북을 열고 수업 자료를 확인하고 마이크를 충전했다. 하지만 옆자리의 E 선생님이 몸은 좀 어떠시냐고 다정하게 묻자 그만 생각지도 않은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E 선생님, 질문 거절합니다.”


말을 하자마자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이 무슨 싸가지 없는 말인지. 순간적으로 교무실의 실내 온도가 10도쯤 내려간 느낌이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M 학교에서 가장 친절하고 배려심이 깊은 E 선생님께 매몰차게 말할 건 뭐람. 아무리 E 선생님이 별명처럼 ‘천사’라고 해도 이런 말에는 빈정이 상할 수밖에 없다. 결국 나는 출근과 동시에 교무실의 암적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것인가. 짧은 정적이 2초쯤 흘렀다. E 선생님은 몸은 좀 어떠시냐고 물었던 톤과 다르지 않은,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알겠다고 답했다. E 선생님은 정말 천사였다.


점심시간에 선생님들과 다 같이 학교 옆 카페에 갔다. 나의 복귀를 환영하는 의미에서 차를 마시자고 몰려갔는데, 수업에 들어가느라 내 얼굴을 보지 못했던 한 선생님이 인사를 건네며 안부를 물으려고 하셨다. 그러자 다른 선생님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정 선생님이 질문 거절한대요."


다들 들으셨구나. E 선생님께는 새삼 죄송했지만 이상하게 안도감이 들었다. 이제는 아무도 내게 안부를 묻지 않겠지. 차를 마시는 동안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카페의 한쪽 벽에 쌓여 있는 커피 원두 포대처럼 존재감 없이 앉아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역시 출근은 과욕이었을까?


5교시 수업을 마지막으로 4시간의 수업이 모두 끝났다. 그늘이 없는 버스 정류장에서 뜨겁게 내리쬐는 강렬한 오후의 햇살을 온몸으로 맞으며 배차 간격이 제멋대로인 버스를 기다렸다. 머릿속은 안방 침대에 눕고 싶다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안간힘을 써서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땀에 전 몸을 씻자마자 침대에 널브러졌다. 한 시간이 넘도록 멍하게 누워 있었다. 막내와 저녁을 먹고 한숨 돌린 뒤에야 겨우 정신이 들었다. 오늘이 가기 전에 E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내 입에서 나간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지만 내가 왜 그런 생뚱맞은 말을 했는지 설명을 드리면 E 선생님도 언짢은 마음을 풀고 평안한 저녁을 보내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심호흡을 하고 메시지 창을 열었다.


“… 지난 6개월 동안 새로운 삶에 적응하려고 나름 애를 썼는데, 이번 생에 암 환자로 사는 게 처음이라 아직도 감을 못 잡고 있어요. 학교에서만큼은 저의 암 환자 정체성을 잊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그래서 좀 생뚱맞지만 '질문 거절'을 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선생님께서 저를 걱정해 주시고 안부를 물어주시는 마음은 좋은 마음인데, 저는 아직 그 마음에 제대로 화답을 못 하는 상태랄까요.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뵐게요!”


삼십 분쯤 뒤에 E 선생님의 답을 받았다. 오랜만에 나를 만나서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질문을 했고, 자신의 질문에 부담을 느끼셨을 것 같아 죄송한 마음도 든다고 하셨다. E 선생님과 동료 선생님들은 나에게 부담을 주려고 안부를 물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질문들이 부담스러웠다. 아무도 내 앞에서 암이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았지만 질문에 답하려면 나와 암을 연결해야 했다.


나는 암과 나를 연결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암과 나는 이미 연결되어 있다.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끝냈어도 나는 여전히 암의 사정거리 안에 있다. 암은 내가 먹는 것, 마시는 것, 가는 곳, 만나는 사람을 바꾸어 놓았다. 암은 내 몸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암을 잘 모른다. 암은 내 안에 있는 미지의 세계이다. 나는 이 세계를 온전히 파악할 수가 없다. 그저 실체를 알 수 없는 암으로 인한 온갖 변화에 휘청거릴 뿐이다. 설명하는 일로 밥을 먹고사는 선생이지만 알지 못하는 것을 설명할 재주가 없다.


E 선생님은 질문에 답하기 어려워하는 내 마음을 이해한다고 하셨다. 그는 나를 이해하기 위해 암 환자의 자리에 자신을 앉히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을 것이다. 암 환자가 아니지만 암 환자를 이해하기 위해 시간을 썼을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마음,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는 마음은 사랑에서 기인한 마음이다. E 선생님은 그냥 착하기만 한 천사가 아니라 사랑의 능력을 갖춘 대천사였다.


이번 학기에는 내 오른쪽에 앉은 대천사를 수호천사로 삼고 싶다. 수호천사가 날갯짓 몇 번만 하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은 저 멀리 날아갈 것이다. 조용하게 출근하는 날들이 쌓이다 보면 학기 말이 될 테고, 그때쯤이면 쓸데없이 비대해진 암 환자의 자아도 적당한 크기로 줄어들겠지. 역시 개학과 동시에 방학을 꿈꿔야 계속 출근할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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