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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쥐마담 Mar 30. 2024

27. 몸은 좀 어떠세요 2

가을 학기 첫 수업은 수업을 했다는 데 의의를 두고 돌아왔지만 그다음 주는 좀 더 수월했다. 비가 내려서 일주일 전보다 기온이 7도나 내려갔고 수업도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학생들은 새 학기를 맞아 새 출발을 하려는 듯 과제를 모두 제출했다. 역시 수업은 학생들과 함께 추는 군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걸음이 한결 가벼웠기에 침대로 직행하지 않고 미역국을 끓일 수 있었다. 


출근 3주 차 주간에 대학 병원 정기 검진이 있었다. 이번 검진은 암 수술을 하고 6개월 뒤에 처음 받는 진료였다. 미리 유방 촬영과 초음파 검사를 하고 변화 여부를 의사에게 듣는 날이었다. 진료실에 들어가 침대에 걸터앉으니 옆 진료실에서 의사가 들어왔다. 의사는 촉진을 하면서 색깔이 더 빠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방사선 치료 때문에 오른쪽 가슴의 피부가 약간 칙칙한데, 그건 시간이 해결해 줄 거니까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의사는 방사선 치료를 받은 부위에 보습 크림을 잘 바르고 있는지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검사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의사는 한 마디로 대답했다. “좋습니다.” 지난 6개월이 그 한 마디로 귀결되었다. 의사가 보기에 내 몸은, 특히 유방은 좋은 상태였다. 


의사는 산부인과 진료 결과를 물었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떨리는 마음으로 동네 산부인과에 가서 자궁내막의 두께를 쟀다. 항호르몬제로 인한 최악의 부작용은 자궁내막암이다. 암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궁내막증식증이 생길 수 있어서 정기적으로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자궁내막이 정상 범위 이상으로 증식되면 자궁내막을 긁어내는 소파수술을 받아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검사 결과는 정상 범위 안쪽이었다.


“운동하시나요?” “네, 교수님.”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해서, 예상하지 못한 항호르몬제의 부작용으로 불면과 우울, 무기력을 겪어서, 여름부터 성곽길을 올랐지. 암세포는 나를 꺼구러뜨리지 못했는데, 불면과 우울, 무기력은 나를 거의 집어삼킬 뻔했고 지금도 그 위협은 사그라들지 않았지. 의사는 약을 받으시고 6개월 뒤에 뵙자며 진료를 마무리했다. “교수님, 저는 타목시펜 부작용 때문에 수면제 처방을 받고 있는데요…” “네. 진료받으시면 됩니다.” 내 정신 건강은 외과의가 아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소관이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부작용들이 암 재발만큼이나 중요한, 삶의 질을 좌우하는 이슈라는 사실이 하찮게 여겨지는 것 같아서 좀 아쉬웠다. 


그다음 주에는 마지막 방사선종양학과 진료가 있었다. 흉부 엑스레이 촬영을 해서 6개월 전과 비교했다. 의사가 모니터의 방향을 틀어 두 장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다. 방사선 치료를 받았던 오른쪽 가슴에 꾸준히 보습 크림을 바르라는 말을 듣고 진료실을 나왔다. 이제 방사선종양학과와는 안녕이고 유방외과 진료도 6개월 뒤인데 8주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꼬박꼬박 만나고 있다. 이 의사야말로 내가 질병의 세계에 들어온 뒤로 가장 자주 만난 의사이다.   


나는 의사에게 3주 전부터 다시 학교에서 강의를 하기 시작했고, 첫날은 새로 직장에 나가는 것처럼 얼떨떨하고 긴장이 되었지만 점점 나아졌다고 말했다. 그런데 만나는 사람마다 몸은 좀 어떠냐고 물어서 너무 부담스럽고 짜증이 난다고 의사에게 하소연을 했다. 나는 은근히 폼생폼사라서 ‘아프다, 힘들다, 괴롭다’는 말을 잘 안 한다. ‘아프지만 견디고 있다, 힘들어도 참는다, 괴로운데 버티는 중이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편인데, 이 날은 의사 앞에서 원초적으로 짜증을 표현했다. 의사는 암통합케어센터 진료실을 찾는 암 환자들 중에 나처럼 주변 사람들이 안부를 물어서 괴롭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런 사례에 대해 의사가 제시한 모범 답안은 “안부를 물어 주어서 고맙지만 나는 나의 몸에 대해, 암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라는 말이었다. 내가 학교에 다시 출근한 첫날, 이걸 알고 갔으면 ‘안부를 물어 주어서 고맙지만’으로 시작할 수 있었을 텐데…    


아서 프랭크의 <아픈 몸을 살다>는 의료사회학자인 저자가 심장마비와 암 경험을 바탕으로 아픔에 대한 사유를 풀어낸 역작이다. 그는 이 책에서 질병을 적극적으로 살아낼 것을 강권한다. 그가 말하는 ‘적극적’이라는 의미는 질병과 싸우고 질병을 극복하라는 뜻이 아니다. 질병의 이상적인 결말을 회복으로 설정하는 견해에는 문제가 있는데, 우리 모두가 알듯이 어떤 이들은 질병에서 회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계속 아프다고 해도, 심지어 죽어간다고 해도 질병을 통해 새로워질 수 있다고 보았다. 환자가 질병을 통해 새롭게 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암의 세계에 발을 들인 뒤로 새롭고 낯선 경험과 생각을 하게 되면서 아프다는 것은 그저 다른 방식의 삶이라는 저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몸은 좀 어떠냐는 질문과 얼굴색이 전보다 좋아졌다는 인사말과 어서 건강을 회복하라는 덕담을 들을 때, 나는 옅은 압박감을 느꼈다. 그 말들에 관심과 애정이 담겨 있음을 알지만 어서 빨리 건강을 회복해 건강한 보통 사람들 사이로 돌아가라는 무언의 압력을 받았다. 왜  질병이 찾아왔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답답하고 질병으로 인해 내 몸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서 속상하고 질병의 터널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알 수 없어서 막막한데 이런 질문과 인사말과 덕담까지 들으면 한쪽 콧구멍이 막힌 기분이 들었다. 내 몸이 어떤 상태인지 굳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생각해야 하니까. 남들에게 내 얼굴색에 대한 품평을 들어야 하니까. 건강을 회복하려고 아등바등 노력하고 있는데 더 ‘노오력’을 해야 할 것만 같으니까. 아서 프랭크는 위 책에서 내가 느끼는 압박감이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의 문제임을 밝혔고, 덕분에 막혔던 콧구멍이 뚫렸다. 남은 과제는 하나다. 나는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건넬 때 더 섬세하게 배려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잔인한 여름을 관통할 때 나는 몸은 좀 어떠냐는 질문을 매일 받고 싶었다. 그 질문에 대답함으로써 내가 질병의 세계에서 길을 잃지 않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가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 질문을 받아도 부담스럽지 않은 사람은 남편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내게 그 질문을 해 주지 않았다. 그가 맞이한 여름도 종류는 다르지만 상당히 잔인했던 모양이었다. 제 코가 석자인 사람은 건너뛰고 차선책을 찾기로 했다. 성곽길을 올라 와룡정에 도착하면 사진을 찍어서 친구들의 단톡방에 올렸다. 한동안 친구들의 눈과 귀를 시끄럽게 했으니 밥을 사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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