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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풍 Jan 20. 2018

북한의 변화: '장마당'과 시장경제

자본주의에 대하여

2017년 1월 4일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지난 10년간 단절된 북한의 영상을 공개했다. 90년대 대기근을 겪는 처참한 모습만 기억했던 나는 북한의 변화에 적지 않게 놀랐다. 화려한 고층건물과 도로 위를 메운 자동차, 그리고 수많은 불빛이 밝히는 야경은 여느 도시와 다루지 않았다. 주민들은 대형마트 진열대에서 제품을 고르고, 가족들과 동물원에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들의 삶은 우리와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 계속된 대북제재가 있었음을 돌아보면 이런 모습은 상당히 의외였다.


2016년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3.9%로 한국의 2.8%보다 높게 나타난다. 물론 한국과 북한의 경제규모는 40배 이상 차이가 난다. 하지만 90년대부터 오랜 기간 멈추었던 경제상황은 점진적으로 회복하는 양상임은 틀림없다. 10년이 걸친 오랜 국제제재 속 경제가 나아진 것은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그 중심에는 90년대 배급체계가 붕괴하면서 생긴 '장마당'이 있다. 북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이 상설시장은 자본주의적 성격 때문에 법적으로 금지된 '암시장'이다. 하지만 당시 북한 정부도 다른 대안이 없어 묵인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장마당은 계속 이어져, 북한에는 '노동당'과 '장마당' 두 개의 당이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회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민주화 세대 이후 IMF를 겪으며 극단적인 물질주의가 낳은 에코세대(79~88년생), N세대(89~94년생)가 생겼듯이, 북한에는 고난의 행군에 의해 생긴 자립형 시장경제를 겪은 '장마당 세대'(80~90년생)가 있다. 그들은 시장경제의 확산을 지내며 생긴 그들만의 생각과 라이프스타일이 있다. 패션과 IT에 민감하고 자기주장이 강해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부정하는 장마당 세대는 우리의 신세대와 비슷하다. 그들은 "걔 가 우리를 먹여 살려줄 것 아니니, 그냥 우리끼리 잘 살자"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여기서 '걔'는 김정은을 의미한다. 시장경제와 정보통신기술의 범람속에 남북 모두 정치적 이념이나 국가주의보다는 개인과 자율성을 선택한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만한 점은 새로운 경제체제에서 여성의 참여다. 모든 북한 주민은 당에서 정한 직장에서 일을 하고, 공장의 가동이나 수익과 관계없이 의무적으로 근로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경우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기혼여성의 경우 가사를 위해 노동 의무에서 제외되는 점을 활용해서 여성은 장마당에서 장사를 하며 부족한 가계 수입을 충당한다. 이런 이유로 장마당 상인의 80%는 여성이며, 이들 대부분이 사업상 휴대전화를 사용하다 보니 정보 교류가 빠르다. 어쩌면 북한은 이 '아줌마 네트워크'로 인해 변화가 시작되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항상 사회주의 국가는 비효율적 체제를 여성의 노동력으로 충당하며 여성인권과 사회변화를 이루지 않았던가.


최근 북한 경제 분야에서 눈에 띈 것은 2016년 산업별 성장률 중 압도적으로 높은 22.3%를 보인 '전기가스 및 수도업'이다. 전력은 산업화 수준을 대표하는 바로미터이며, 경제발전은 필연적으로 에너지에 대한 갈증을 낳는다. 하지만 현재 북한의 전력공급시스템은 노후화된 발전소와 비효율적인 송전망에 의한 손실 등 여러 문제로 인해 전반적인 정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지열 및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를 적극 도입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전기가스 및 수도업'이 타 산업 대비 압도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보인다는 것은 고질적인 송전망 문제를 손보려는 것으로 추측해본다. 지금 북한의 변화는 전력수급안정이 가장 시급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90년대는 남북 모두 이념이나 정치와 무관하게 자유주의가 퍼진 시기이다. 국가의 통제나 선전과 무관하게 경제적 자유방임주의 원리는 한반도 한 세대의 인식 속에 자리 잡았다. 따라서 기존 북한의 계획경제와 배급 중심의 사회주의로는 지금의 북한 주민들을 통제할 수 없다. 84년에 태어난 김정은도 이를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취임 즈음인 2012년 '6·28 새경제 관리체계'를 도입되며 배급제를 폐지했다. 그리고 농업과 공업을 대상으로 할당량 이상의 잉여 생산을 인센티브로 제공하여 시장에서의 거래를 허용했다. 이 조치는 권력 약화와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요소가 있지만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성공 여부는 좀 더 봐야겠지만 한 가지는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과 김정일 정권부터 이어진 '의식주 문제'에 따른 북한 주민의 피로감은 상당 부분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 항공우주국(NASA)이 찍은 야간 위성사진을 본 적 있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 한반도의 남쪽만 밝게 빛나고 북쪽에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것을 보며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에 뿌듯함을 느꼈다. 최근 나온 2015년 야간 사진의 경우 평양과 중국 접경지역, 그리고 동해안 몇 군데 불빛이 늘어난 것을 볼 수 있다. 아직은 터무니없이 부족하지만, 정치적 상황에 따라 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가 봐도 어색한 이 어둠은 아주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시장경제를 경험한 장마당 세대는 더 많은 전기를 필요로 할 것이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 원활한 전기 보급이 생길 것이다. 이와 함께 ICT 기술은 발전하고 정보화 사회가 형성되면, 시장경제는 더 성장하기 위해 공유와 개방을 요구하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 체제가 지금처럼 폐쇄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우리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지금 북한이 대중 무역과 외자유치에 힘을 쓰는 것은  이러한 맥락과 함께 할 것이다.


요즘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여 관련 뉴스를 보면 마음이  조금 설렌다. 나는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를 반대하지만, 오랜만에 한반도기를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를 기대감이 생긴다. 남북의 선수단과 공연단이 함께 어울리며 같은 언어로 서로 교류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양측 선수들은 남북이 분단된 이유를 잘 모를 것이다. 막연히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을 진실로 받아들이며 당연한 것처럼 서로를 경계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계기를 통해 자신 스스로 한반도 분단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축제를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전해져 전쟁과 평화에 대한 생각의 씨앗이 된다면 이번 평창 올림픽은 멋진 축제가 될 것이다.


2018년 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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