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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Jun 02. 2021

내 동생, 한호 이야기 (2)

동생은 여전히 의식이 없었고, 방안의 악취는 더욱 심해져 있었다.

중간고사를 앞둔 토요일.

교실 앞문이 열리고 누군가 선생님께 귓속말을 전했다. 선생님의 시선은 나를 향했다. 밖으로 나를 불러내시더니 말씀하셨다. 동생이 위독하다고.

한호가 있는 인천 할머니 댁으로 갔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또다시 버스를 탔다. 두 시간이 넘는 긴 시간을 말없이 갔다. 할머니 댁에 도착하니 친척들 몇 분이 와 계셨다. 한호가 있는 방에 들어갔다. 피부가 썩어 들어가는 냄새와 화상연고 냄새가 뒤엉켜 코를 찔렀다. 그 냄새다. 사고가 났던 날, 병원에서 맡았던 냄새. 붕대에 칭칭 감긴 채 누워 있었던 엄마의 다리를 봤을 때, 그곳의 냄새. 딱 한 번 동생을 보러 간 병원에서 맡았던 냄새.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냄새였다.


동생 옆에 앉았다. 한호는 이미 의식이 없었다. 눈은 뜨고 있었으나 눈동자에 초점이 없었다. 살아는 있었으나 살아있지 않았다. 나는 동생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들을 수도 없을 테니... 그렇게 잠시 앉아 있다가 옆방으로 왔다. 그리고는 그 집을 아예 나와버렸다.  

그날 밤은 큰고모 댁에서 잤다. 다음날 점심이 지나서 다시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동생은 여전히 의식이 없었고, 방안의 악취는 더욱 심해져 있었다. 다시 동생 옆에 앉았다. 아무 말 없이 초점 없는 동생의 눈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할머니, 나 내일부터 중간고사예요. 가서 공부해야 해요.'

나는 그곳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버스를 타고, 다시 전철을 타고, 또 버스를 타고 서울 외할머니 댁에 도착했다. 외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돌아오는 길에 동생이 하늘나라로 갔다고. 그러니 다시 인천으로 가야 한다고.

동생을 그렇게 떠나보냈다. 이 날도 나는 울지 않았다.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내게 짐이 될 것만 같은 동생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지 모른다. 이제 토요일마다 더 이상 힘겹게 할머니 댁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했는지 모른다. 화상 때문에 아팠던 동생을 화장했다. 그리고 유골을 산에 뿌렸다.


어느 날, 나보다 열두 살 많은 막내 삼촌이 내게 말했다.

한호는 아플 때도 누나만 생각했는데, 죽기 전까지 누나만 기다렸는데, 나더러 이기적이라 했다.

내가 찾아가는 토요일만 눈이 빠지게 기다리기에 한 번은 삼촌이 한호에게 물었단다.

'누나 여기 와서 지내라고 할까? 여기 와서 너와 함께 지내라고 할까?'

'안돼요. 우리 누나는 공부해야 해요. 우리 누나는 공부 열심히 해서 나중에 훌륭한 사람 되어야 해요.'

한호가 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초점 없이 흔들리던 눈동자가 갑자기 또렷해지더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했다. 그리고는 눈물을 한 방울 떨구며 눈을 감았다고 했다.

삼촌은 내게 말했다. 나를 찾는 것 같았다고. 동생은 그렇게 늘 누나 생각뿐이었다고. 의식이 없어도 들을 수 있었을 텐데 왜 인사 한 번 해주지 못했냐고 했다.


삼촌의 비수가 되어 내게 꽂혔다. 삼촌이 미웠다. 너무 매정하게 느껴졌다.  나이가 열넷, 삼촌의 나이는 스물여섯... 어쩌면 삼촌도 철이   이십 대였기에  내뱉은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말 아팠던 이유는, 삼촌의 그 말 중에 틀린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없는 죄책감이 내 안을 가득 메웠다. 그렇다. 나는 너무나 이기적인 누나였다. 혼자 아팠을, 혼자 힘들고 외로웠을 동생 생각에 가슴이 저며왔다.


그날부터 나는 동생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아니, 꺼낼 수가 없었다. 동생을 생각하면 나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기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눈물부터 쏟아져 나와 이야기를 이어갈 수 없었다.


그리고 동생의 얘기를 다시 입 밖으로 꺼낸 것은 그로부터 10년도 훨씬 지난, 32살이 되던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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