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시 Jun 05. 2021

용서 (내 동생, 한호 이야기_3)

나는 십팔 년 만에 열네 살의 자영이를 용서했다.

동생이 하늘나라로 간 후 얼마 동안은 꿈에 동생이 자주 나왔다.

꿈속에서 동생은 언제나 내게 손을 내밀며 어디론가 함께 가자고 했다. 나는 동생과 함께 가고 싶지 않았다.


생생하게 기억나는 꿈이 있다.

작은 방에서 나는 자고 있었다. 그날도 동생은 나를 깨우며 함께 가자고 했다.

가기 싫다며 동생을 뿌리쳤지만, 그날따라 동생은 포기하지 않고 졸라댔다.  

방문 앞에 섰다. 동생은 나에게 신을 신으라 했다. 문 앞에서는 신발 여러 켤레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나는 내 신발을 찾으면서도 가고 싶지 않은데 왜 자꾸 졸라대냐고 동생을 향해 불평을 쏟아냈다.  

그때 어디선가 엄마가 나타났다. 엄마는 가고 싶어 하지 않는 누나를 왜 자꾸 데려가려고 하느냐며 동생을 나무랐다. 그리고는 동생에게 엄마와 둘이서 가자고 하셨다.

동생은 낙심하며 내게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 떠났다.

그 이후로 나는 더 이상 꿈에서 동생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동생에 대한 나의 죄책감은 날로 심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를 먹을수록, 철이 들면 들수록, 내가 얼마나 나쁜 누나였는지를 느끼게 되었다. 많은 시간을 함께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고, 마음을 다해 돌봐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하늘나라로 가던 날에 따스하게 손 한 번 잡아주지 못한 것, 천국에서 행복하게 지내다가 꼭 다시 만나자고 말해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후회스러웠다. 너의 바람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말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그 미안함과 후회와 죄책감을 가슴속 깊이 묻어둔 채 그렇게 십팔 년을 살았다.


서른두 살이 되던 해, 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첫 학기에 목회상담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교수님께서는 좋은 상담가가 되기 위해서는 상담을 받아봐야 한다며 목회상담센터에서 4주 동안 상담을 받는 과제를 내주셨다. 상담을 받으며 처음으로 깊숙이 숨겨두었던 동생의 이야기를 꺼내놓게 되었다.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눈이 퉁퉁 붓도록 한 시간 가까이 동생의 이야기를 하며 울었다. 입 밖으로 이야기를 꺼내 놓을수록 마음은 더 불편해졌고 후회는 더 커졌고 죄책감에 힘겨워졌다.


내 이야기를 다 들어주신 상담 선생님께서 나에게 물으셨다.

'만약 지금 그때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하고 싶어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는 질문이었다.

'학교도 휴학하고, 직장도 다니지 않고 매일 옆에 있어줄 거예요. 동생이 외롭지 않게 해 줄 거예요. 제가 동생 옆에서 돌봐줄 거예요.'

진심이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할 수만 있다면 대학원도 직장도 사역도 다 내려놓고 동생이 천국에 가는 그날까지만이라도 옆에서 함께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의 대답에 선생님은 잠시 생각에 잠기셨다. 정적을 깨고 다시 내게 물으셨다.

'그렇다면 만약 14살로, 그때의 자영이로 돌아간다면요? 그렇게 해줄 수 있을까요?'

그 순간... 어두웠던 골목과 굳게 닫혀있던 문과 캄캄한 집안과 그 안에 산송장처럼 누워있던 동생의 모습이 생생히 떠올랐다.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가슴이 턱 막혀왔다. 십수 년 동안의 후회와 죄책감 속에서 다짐했던 그 마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아니... 절대 할 수 없다. 그때로 돌아가면 나는 또다시 똑같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아니요. 전 못해요. 못할 거 같아요... 그때와 똑같이 할거 같아요.'라고 말하며 펑펑을 울었다.


상담 선생님은 내게 말씀하셨다.

14살의 자영이에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큰 사고와 충격 속에서 자신도 견디고 살아야 할 방법이 필요했다고. 살기 위해 주변에 대하여 방어하며 자신을 지켜낸 것이라고. 그것이 열네 살의 자영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그러니 이제 열네 살의 자영이를 용서해주라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_ 눅 11:4a'

용서란 주님께서 나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내게 보이신 최고의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용서란 내가 타인에게 베풀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며, 내가 전할 수 있는 예수님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놓친 것이 하나 있었다. 내가 나 자신을 용서해야 하는 때도 있다는 것.  


그 밤, 기도 중에 주님께서 깨닫게 하셨다.

그 모든 순간에 주님은 나와 함께하셨다는 사실을. 나보다 더 아프셨고, 나보다 더 슬프셨다는 사실을. 내가 후회하고 자책하며 힘겨워하던 그 순간에도 주님은 나와 함께하셨고, 이미 나를 용서하셨다는 사실을.

나는 십팔 년 만에 열네 살의 자영이를 용서했다.

용서받은 기쁨이 이토록 큰데, 우리를 모든 죄악 가운데서 용서하신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모든 죄악을 용서받은 그 기쁨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을까.


동생은 투병 중 예수님을 만났다.


'한호야!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행복하렴. 누나가 많이 사랑해!'

매거진의 이전글 내 동생, 한호 이야기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