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국제학교 in Budapest /2023.08. 25의 기록
수업이 끝나자 많은 아이들이 학교 운동장으로 달려가 삼삼오오 모여드는 것과 달리, 아들은 빨간 이층 버스 미끄럼틀 쪽으로 재빠르게 튀어 올라갔다. 이 미끄럼틀에서 저 미끄럼틀로 쏜살같이 옮겨 다니기를 여러 번. 왠지 급하게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것을 보니, 학교 규칙 상 하교 후 놀이터에서 놀면 안 된다는 것을 아들도 분명히 알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저기에 쓰여 있는 거 다 봤잖아. 학교 놀이터는 하교 후엔 이용할 수 없다고 말하는 거야."
시선을 돌려 주위를 살펴보았다. 모래사장에도, 구름다리 철봉 위에도 아들 외에 놀고 있는 다른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마침 선생님 한 분이 놀이터 앞으로 다가오고 계셨다. 어정쩡한 눈인사를 건네자 옅은 미소를 건내실 뿐 별다른 말씀은 없으셨다. 마음이 영 불편했다.
'입학한 지 이제 며칠이지만 그래도 초등학생이 되었는데, 여전히 유치원생처럼 구는 고집을 순순히 받아줘선 안되겠어.'
미끄럼틀 아래서 기다리렸다가 아들이 내려오는 순간 그 작은 몸을 와락 부둥켜안았다. 도망갈 새라 바로 훈육을 시작했다.
"하고 싶은 걸 매번 다 할 순 없어! 이제는 규칙을 지키는 걸 배워야 해. 그러니 얼른 놀이터에서 나가자!"
8월. 유럽의 땡볕 아래 놀이터라니.
그저 놀겠다는 아들의 고집이 마냥 성가시게만 느껴졌다.
"엄마가 알아? 내가 놀이터에서 얼마나 놀고 싶었는지? 점심시간에 친구들이랑 노는 시간이 있었는데, 아무도 나랑 놀아주지 않았어. 나만 친구가 없어서 혼자 앉아 있었어. 그래서 나도 놀이터에서 놀고 싶었단 말이야..."
ㅇ ㅏ .........
울컥 쏟아져 나와버린 아이의 진심.
미안했다. 너무 미안했다.
그제야 비로소, 몸에 맞지 않는 큰 교복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아이의 마음이 보였다. '아이들은 금방 적응해요'라는 말을 믿고, 너도 잘 어울려 지낼 거라 쉽게 넘겨버렸었는데... 엄마가 너무 무심했구나.
이제 와 생각해 본다.
매일매일 너는 어떤 하루를 보내다 오는 걸까?
분명 금방 적응할 거라고 믿고 있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는 당혹감, 좌절감 어쩌면 외로움 속에서 고된 시간을 견디고 돌아오겠지.
매일매일 수고가 많구나, 아들. ㅜㅜ
헝가리에서의 너의 적응기를 엄마가 응원할게.
현재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Y2 학년(만 6/7세) 에는 총 4개의 학급이 있다. 각 반이 정원은 약 22명 정도이며, 대부분의 반에 한국 학생이 4명, 많게는 5명까지 있지만, 아들의 반에는 한국 학생이 아들 혼자다.
처음에는 영어가 더 빨리 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지만, 그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지금 아이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 수 있고, 영어를 다 알아듣지 못해도 도와줄 친구가 있다는 안정감이 훨씬 중요한 듯하다.
한국이었다면 아직 유치원을 다닐 나이인데도 눈치껏 학교 수업을 잘 따라가고 있는 모습이 그저 대견하다. 하지만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일은 또 다른 문제다. 저학년이니 언어와 상관없이 누구와도 쉽게 어울려 놀 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국제학교의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물론 고학년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영어의 장벽이 높다.
아들은 순진하게도 친구들이 먼저 다가와서 놀아주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6세, 뛰놀기 바쁜 남자아이들 눈에 저 멀리 혼자 앉아 있는 한 아이의 아찔한 외로움이 보일리가 만무하다.
어린아이니까 금방 적응할 거라고 너무 쉽게 생각했던 엄마라 혼쭐이 나는 것일까?
친구들 사이에서 겉도는 아이를 지켜 볼 때마다 여러 번 맴찢의 아픔을 경험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