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음력 3월 12일 23시 18분), 멀리 사는 딸 허둥댈까 봐 조용히 불러 놓고 임종의 시간까지 함께 하게 해 준 아버지. 고맙습니다.
평소 다니러 가듯 내려간 당일, 산소호흡기를 대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아버지를 뵀을땐 곧 회복할 것처럼 깨끗하고 평안한 모습이었지요. 아버지 아버지 부를 때마다 힘겹게 눈을 떠주기도 하셨어요. 모든 정황상 그리 오래 계시진 못할 거라고, 따뜻한 봄이 오면 삶의 존엄성이 더 무너지기 전에 가시자고 입버릇처럼 말했지요. 평생 아프다 소리 한번 안 하시다가 아프다 온몸이 아프다 말하고 사흘 만에 그리 허망하게 가실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귀는 열려있어요. 하고 싶은 말을 하세요.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 거예요. 간호사들이 말했어요. 그동안 고마웠다고, 먼저 가 계시면 저도 가겠다란 상투적인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어요.
평생 말이 없으셨던 아버지. 아버지와 함께 했던 길다면 길었던 그 시간 동안 왜 저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을까요? 병중에 계셨던 2년 동안 왜 더 큰 추억을 만들지 못했는지.... 그 와중에도 아버지는 천년만년 제 곁에 계실 거라 생각했던 어리석음으로 가득했어요.
어떤 질문에도 쓰윽 웃음으로 대신 답하셨던 아버지. 하고 싶은 말이 없었나요? 아니면 할 말을 다 가슴으로만 하셨나요? 자식들에게만 그러셨나요? 그래도 엄마에게는 좀 편히 하셨지요?
가난한 집 장남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고생하며 가진 재능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했던 삶이 억울하고 원망스러울 만도 한데 불평하거나 남 탓 한 번 않으셨던 아버지. 그저 열심히 사셨던 아버지. 저 세상에서는 못다 이룬 꿈, 하고 싶었던 거 다하며 살아보셔요.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는 이제 봄을 싫어하지 않아요. 봄은 아버지를 아름답게 모셔갔고 봄이면 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이제 정말 보내드릴 시간이 온건가요? 저는 아버지를 통해 책과 음악을 사랑하게 됐고 아버지의 많은 장점을 고스란히 받아 이렇게 잘 살고 있는데 아버지는 제게 고작 2년, 신세랄 것도 없는 신세를 지고 떠나시는 거네요.
30년을 넘게 살아온 익숙한 동네, 금정구 부곡동 오륜대 <오륜사>에서 자비로운 스님을 만나 공부도 많이 하셨지요? 가시는 길에 두려움은 다 놓아버리셔요. 아버지가 알뜰살뜰 사셨던 덕분에 엄마와 저희들은 편안히 잠시 더 살아갑니다. 이승에서 모든 인연들은 편히 놓으시고 저 밝은 세상, 아무 근심걱정 없는 세상으로 훌훌 떠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아버지.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부디 편히 가셔요. 다음 세상에서도 저의 아버지로 다시 만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아버지. 아버지께 약속한 대로 끝까지 제가 함께 할 수 있게 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아버지가 틈틈이 모아 제게 주셨던 줄지 A4용지에 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를 쓰게 될 줄도 몰랐습니다 아버지 안녕! 아버지 이제 안녕!
내년 봄에 식사하러 오셔요. 그리고 언제라도 제 꿈으로 오셔도 됩니다. 항상 반갑게 맞아드릴게요. 아버지 아버지 이제 정말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