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다합 여행기
2018년 10월 15일
두 번째 다합.
이번엔 프리 다이빙을 배우기로 했다.
첫 세션은 블루홀에서 진행했다. 수심 100m에 가까운 바다의 파란 구멍. 바닥에 손을 짚고 오는 사람도 있다는데,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오랜만에 물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떨리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던 프리다이빙 첫 수업은,
말 그대로 당황의 연속이었다.
물 최고 바다 최고 외치던 나도 막상 아무것도 없이 숨을 참아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긴장되고 무서웠다.
천천히 내려가다가도 문득 공포감이 몰려와 빨리 위로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급하게 턴하고 물 밖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기 일쑤였다.
물속으로 산소통 없이 내려가는 것도 긴장되는데 아직 감을 잡지 못한 이퀄라이징(압력 평형)을 동시에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더욱더 두려움이 커졌다.
몇 번을 시도해도 물 밑에서 30초도 머무르지 못했고, 급하게 올라와서는 무서움에 사로잡힌 상태로 회복 호흡을 했다. 후-하-후-하. 무섭다. 힘들다.
부표를 잡고 얼마간 쉬기로 했다.
부표에 매달려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았다.
나, 얼마 만에 바다에 들어온 거더라?
내가 이 바다를 얼마나 그리워했더라. 푸른 홍해 바다에 내리쬐는 햇빛, 따뜻한 바다의 온도, 잔잔한 파도와 투명한 물 색.
아, 맞다. 나 바다 정말 좋아하지.
바다에 몸을 맡기듯 온 몸의 힘을 풀었다. 수면 위에서 편한 자세로 누워 물이 출렁이는 것을 느꼈다. 편안했다. 이퀄 신경 쓰지 말고 그냥 편하게 들어갔다 올까? 하고 바다에 들어갔다.
그렇게 들어간 바다는, 너무 안락하고 평온하고 예쁘더라.
선생님이랑 수업을 함께 듣는 버디들이 바다가 무섭다는 사람이 밑에서 일분이나 있냐면서 이번엔 편안해 보였다고 말했다. 다이빙 타임을 확인해 보니 정말 1분이 넘어 있다.
(이퀄 못해서 팔 미터도 못 갔지만) 모든 것은 내 마음에 달려있다는 것을 (또) 느꼈다.
마음 저 편 한 구석에라도 불안함이 있으면 어느새 두려움이 찾아오는 거고, 온전히 편안한,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상태라면 균형을 잡고 나를 보며 집중할 수 있는 거고.
말하는 거는 거의 뭐 이미 포스타 프리다이버인데요... 현실은 오늘도 이퀄 연습하러 가야지.
2018년 10월 23일
"마음에 달려있다. 항상 눈과 귀가 마음에 누가 된다. 열하일기에 쓰여 있다."
아빠가 메세지를 보냈다. 예전에 아빠는 항상 어려운 말, 추상적인 말만 해 주고 상황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고 답답해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삶에서 내가 온전하게 바꿀 수 있는 건 내 마음, 삶의 태도이고 그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들이 모여 내 삶을 이루는 것이라는 걸, 아빠는 항상 삶을 이야기했다는 걸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프리다이빙을 배우면 배울수록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곧 다이빙을 즐길 수 있는 방법임을 알게 되는 것 같다.
마음을 편히 먹고, 내 마음 상태에 집중했을 때만이 눈이 보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다.
귀는 물에서 잘 안 들리니까 제외!
이퀄라이징은 여전히 될랑 말랑 잘 모르겠는 느낌이지만, 나는 지금 내 마음에 집중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물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침대에 거꾸로 누워 프렌젤 연습하기, 샤워하다가 입 크게 벌리고 후두개 부분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관찰하기, 자기 전에도 괜히 한번 더 해보기 등 이퀄라이징을 위한 맹연습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 이 즈음엔 10m쯤에서 정체가 왔었다. )
2018년 11월 3일
드디어 AIDA2를 땄다!
수심과 세이프티, 잠영, 스태틱을 모두 통과해야지만이 자격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이퀄라이징이 잘 안 되는 바람에 3일 코스를 늘리고 늘려서 수업도 여러 번 받았고, 중간에 쉬기도 했고, 스쿠버 다이빙 펀 다이빙 나가는 데에 잠시 한눈을 팔기도 했지만, 어쨌든지 이제 나도 프리다이버가 되었다!
2018년 11월 4일
프리다이빙을 배우기로 마음먹었을 때 목표로 했던 것이 있다.
바로 다합의 앞마당인 라이트하우스 바닷속에 있는 여러 조형물 중, 여러 링이 놓아져 있는 구간이 있는데 그곳을 통과하고 링을 잡아 액자인 것처럼 연출한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수심 13m 정도 되는 구간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스노쿨링을 하면서 3-4m 정도만 들어갈 수 있었을 때는 이 곳에서 자유롭게 다이빙하는 프리다이버들이 아주 멋져 보였다.
프리다이빙 수업을 주로 블루홀이나 라이트하우스 바다에서 받았는데, 프렌젤을 완벽히 익히지 못해서 8-10m 정도만 갈 수 있었을 때도 이 링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이 링이 얼마나 깊고 멀게 느껴졌는지...
그런데 내가 해냈다!
목표했던 것을 이뤘을 때의 느낌이란 그 얼마나 짜릿한지!
이 링에서 다이빙하려고 펀 다이빙 나갔던 날의 기분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2018년 11월 7일.
"그 날 바다가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조류가 세던, 시야가 좋던 안 좋던, 온도가 어떤지는 상관없어요. 일단 바다를 들어갔다 나오면 그 날 할 일을 한 것 같고, 뿌듯하고 보람찬 하루를 보낸 것 같고 그래요. 날마다 바다는 다른 것들을 보고 느끼게 해 주지만, 내가 바다에서 행복하다는 것은 변함없죠."
카이로에서 내 두 번째 다합 생활을 생각하며, 내가 다합을 하루도 빠짐없이 그리워했던 이유를 썼다.
매일 같은 포인트를 간다고 해도 그 날 그 날의 바다는 모두 다르다.
그리고 그 모든 날들은 내게 가르침을 줬다.
다합 바다야 잘 있어. 내가 곧 다시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