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고 싶지 않을 때가 있잖아

서두름의 이유

by 유로지

분주히 퇴근준비를 하고 사무실을 나서다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남편이 아이를 하원했다는 문자를 받고는 깊은숨을 내쉬어본다.


해가 저물어 어둠이 내려앉은 퇴근길,

평소라면 바쁜 걸음으로 집을 향했겠지만 오늘만큼은 천천히 걸어보기로 했다.


여유롭다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의도된 느림이었다.

나는 일부러 서두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역사로 들어오고 있는 지하철을 보고도 계단을 급히 내려가지 않고 다음 지하철을 타기로 마음먹었다. 만원 버스에 몸을 구겨 넣지도 않았고 집 앞 신호등이 나보다 조금 앞서서 초록불로 바뀌었을 때도 뛰지 않았다.


서두르지 않아도 곧 무사히 집에 도착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토록 서둘렀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밤에게 물었다.


밤이 대답한다.

"그리움이야."

나의 서두름은 그리움이었다.


달려가 품 안에 쏙 안을 아이.

그 아이를 향한 그리움이 내 걸음을 재촉했던 것이다.


집 앞에 다다른 순간, 이제야 비로소 서두름 뒤에 감춰져 있던 그리움을 꺼내본다.

그 그리움으로 아이를 힘껏 안아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