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이 사소하지 않을때가 있잖아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

by 유로지

해야 할 일을 다 못 끝낸 사람처럼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결국 새근새근 잠든 아이를 옆에 두고 내일 출근 걱정도 배게 한편에 밀어 두고 거실로 나왔다.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 일이 남은 남편이 아직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나는 조용히 책장에서 ‘모순’을 집어 들고 안방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러곤 절반쯤 남아있던 책을 단숨에 다 읽었다.

어쩌면 내가 잠 못 들었던 이유가 이 책 때문이었을까?


그런데 대뜸 남편이 옆에 오더니 무슨 책을 읽냐고 묻고는 책 내용을 이야기해달라고 한다.

내 옆에 누운 남편에게 조잘조잘 책 내용을 한참 이야기 하고 남편은 그 이야기를 다 듣고 있는다.

재촉하지도 중간에 이야기를 끊어버리지도 않고 가만히.


안진진의 마지막 선택에 대한 내 나름의 생각들을 아무렇게나 쭉 펼쳐 놓고는 열띤 1인 토론을 마치고서야 어렴풋이 안진진의 마지막 선택이 왜 내 마음을 먹먹하게 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마지막 내 감상평까지 다 듣고 나서야 남편은 만족한 듯 싱긋 웃는다.

그 이후로도 우리는 ‘모순’을 두고 한참을 더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곤 나는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와 왜인지 모를 충만한 기분으로 누웠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남편이 내게 책이 어떤 내용인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본 게 오늘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책을 좋아하지도 않고 문학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는 늘 물어보았다.

지금 읽는 책이 어떤 책이고 무슨 내용이며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물어봐주고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 그것은 큰 의미였다.


그리곤 생각했다.

누군가 사랑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오늘 밤을 들려줄 것이라고.

나의 세계를 온전히 안아주는 이 사소함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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