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보아야 세상이 굴러가는 게 보일 때가 있잖아

매일 조금씩은 달라

by 유로지

아이는 걸을 수 있던 나이 때부터 굴러가는 공이라면 뭐든지 엄청나게 좋아했다.


겨우 걷기 시작할 때부터 놀이터에 나가서 자기 몸만 한 농구공을 들고 힘들게 미끄럼틀 위로 올라가서는 아래로 공을 굴렸다.


네다섯 살쯤 되어도 여전히 공을 좋아하고 어디든 굴렸다. 집에는 작은 공이나 구슬들이 트랙을 따라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장난감들이 넘쳐났다.

그리고 그때쯤 계단에 꽂혀버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파트 계단에서 공을 굴리고 또 굴렸다. 탁구공만 한 크기의 장난감 공을 계단 위에 서서 떨어뜨리고는 그 공이 통통 튀기며 아래까지 내려가는 걸 보는 게 아이의 재미이자 행복이었다.


아이에게 최고의 재미를 선사한 이 놀이는 한 명의 어른은 계단 아래서 공을 주워줘야 했기에 가족들 사이에선 일종의 '벌칙'이기도 했다.


꼼짝없이 계단 아래서 공을 주워다가 다시 올려주는, 그게 백번이라도 계속 반복해야 하는 벌칙말이다.

덤으로 계단을 내려오는 공을 보며 최고의 리액션을 보여줘야 했다.


어른들은 공이 구르는 걸 세 번만 봐도 지루해한다.

하지만 아이는 달랐다.

몇 번이고 다시 보아도 뭐가 그리 재밌는지 신난 표정이었다. 그건 마치 아이 인생의 가장 큰 첫 발견이자 매우 흥미로운 실험 같은 느낌이었다.


사실 아이가 던지는 공이 계단을 내려오는 걸 100번 지켜본다 해도, 단 한 번도 똑같은 장면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지루해한다.

둥근 물체는 어디든 구르고 중력의 법칙에 의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이 사실을 공부하게 되면 더 이상 이 계단놀이가 재미 없어질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아이는 공을 '본다'.

어른은 ‘공이 굴러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공을 더는 보지 않는다.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어른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이유는 새로운 일이 줄어들기 때문이란다.
처음 경험하는 순간, 우리는 그 안에 온전히 집중한다.
하지만 이미 아는 일 앞에서는, 경험이 아닌 관성으로 지나간다.


반복은 어른에게 익숙함이고, 익숙함은 곧 지루함으로 이어진다.
어제랑 똑같은 하늘, 같은 지하철 풍경.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이 특별할 게 없다고 느끼곤 한다.


하지만 아이는 똑같은 공, 똑같은 계단을 통해 늘 조금 다른 걸 봤다.
오늘은 공이 더 많이 튀었고,

오늘은 계단 끝에서 방향이 바뀌었고,
오늘은 더 소리가 컸고.
공이 구르는 걸 보며, 그 작고 단순한 기쁨을 온몸으로 느낀다.


그리고 나는 아이를 통해 다시 배운다.

공이 아래까지 내려오는 목적보다 공이 어떻게 내려갔는지를, 공이 왜 굴러가는지에 대한 설명보다는 실제 내려오는 공을 보는 것을, 익숙함에 젖어버린 관성보다 매번 다르게 느끼는 감각이 삶을 음미하며 천천히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결국 어쩌면 사물이나 사람, 혹은 어떤 순간을 온전히 음미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

그건 ‘안다’는 것보다 훨씬 깊고 중요한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