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택시가 하나쯤 있잖아

특별한 부탁

by 유로지

꽤 오래전일이다. 밤새 야근을 하고 새벽 5시쯤 녹초가 된 몸을 택시에 실었다.

당시 강북에 살던 때라 강남에 있는 회사에서 택시를 타면 꼭 한강다리를 건너야만 했다.

해가 뜨려고 하는지 한강 저 너머로 은은한 주황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창밖에 스치는 물빛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장관이었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한강 위로 퍼지는 주황빛 물결, 그 일출이 더 멋있게 해주는 저 멀리 서있는 롯데타워까지. 나도 모르게 휴대폰을 꺼내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바로 그때, 택시기사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진 잘 찍혔어요?"

달리는 차 안에서 찍었는데도 마치 다리 위에 서서 찍은 것처럼 선명했다.


기사님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다리를 그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도 사진 한 장 못 남겨봤네요."


정해진 목적지, 그곳을 향해 1분 1초가 아쉽게 달려가는 택시 안에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앞에 거의 다다르자 기사님께서 작은 부탁을 하셨다


“아까 찍은 사진 말이에요. 저도 좀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어렵지 않은 부탁이었기에, 알려주신 번호로 사진을 전송했다.


그날 이후로 가끔 새벽에 택시를 탈 때면 문득 그 기사님을 떠올리곤 한다.

여전히 같은 길을 달리고 계실까. 그날 한강 위를 일렁이던 물빛들을 기억하고 있으실까.

그리고 그 사진을 보며 잠시나마 바쁜 하루를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셨을까.


누군가는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를 풍경이 다른 누군가에겐 한 장의 추억이 된다는 것,

그게 이 바쁜 일상 속에서도 아름다운 순간은 늘 존재한다는 걸 반증하는 것 같다.


아침과 밤이 바뀌는 풍경,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 창밖으로 펼쳐지는 작은 기적들,

아름다운 순간은 늘 우리 옆에 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살아갈 힘을 우리에게 준다.


우리는 그것을 알아차릴 여유가 없을 뿐, 삶은 언제나 크고 작은 빛으로 채워져 있다.

때로는 스치듯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때로는 낯선 이의 한마디 속에서.

그날 새벽, 한강 위에서 마주한 일출처럼 바쁜 하루의 틈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반짝이는 순간들을 만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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