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슬픔이 빠를 때 있잖아

슬픔도 말하는 연습이 필요해

by 유로지

"요즘 뭐 힘든 거 없으세요?"


어느 평일, 오후 일과 중 직장동료와 커피 한잔을 사들고 들어오던 길이었다. 동료의 질문에 나는 한참을 말이 없었다. 할 말이 없던 건 아니었다.


사실 나는 올해 승진과 더불어 원치 않는 직책까지 떠안게 되었다. 그게 내겐 엄청난 스트레스였고 팀장님에게 이 무거운 마음을 털어놓아보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막상 뜻밖의 타이밍에 그 질문을 받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마치 아직 어떤 단어도 준비하지 못한 사람처럼 어버버 하며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음... 글쎄요... 안 힘든 사람 없잖아요."

대충 얼버무리고 자리에 돌아오니 기분이 묘하게 이상했다.


이상했다.

내 머릿속엔 분명 있는데 왜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걸까. 그날 퇴근길에 그 대화를 여러 번 되돌려봤다. 그러다 문득 며칠 전 유튜브에서 본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어느 개그맨분이 힘들었던 시절, 그 마음을 유재석 님에게 털어놓았는데 "그래, 네 이야기 정말 듣고 싶었어" 라며 아무것도 묻지 않고 끝까지 들어줬다는 이야기.

사실 나는 그 영상을 보다가 청승맞게도 지하철에서 눈물을 흘렸었다.


어렴풋이 떠올린 그날의 영상과 오늘의 내가 겹쳐지며 나의 어설펐던 대답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힘든 일을 누군가에게 터놓고 말하면 위로를 가장한 어두운 그림자 같은 말에 내 슬픔이 잠식 돼버렸던 것 같다.

'나도 요새 너무 힘들어'

'다른 사람은 더 힘들다'

'너 정도면 괜찮지'


그래서인지 힘든 일 없냐는 누군가의 물음에 나의 슬픔들은 언어보다 빠르게 입을 열기도 전에 먼저 문을 잠가버렸다.


생각해 보면 '힘들다'라고 느꼈던 날들에 그 마음을 어딘가 털어놓을 곳이 마땅히 없었다.

서른 중반에 꽤 쌓인 연차 그리고 엄마가 된 나는 약하게 보이고 싶지 않았나 보다.

그렇게 스르르 내리는 눈처럼 겹겹이 쌓이고 쌓여서 푹 눌러앉은 감정들이 내 언어까지 통제하고 있었나 보다.


이제 나는 나에게라도 슬픔을 말해야 하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누군가에게라도 말 못 할 슬픔이라면 나에게는 무한히 말해도 되지 않을까. 그럼 또 나는 '네가 말해주길 기다렸어' 라며 무한히 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