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기억하는 어떤 누군가가 한 명쯤 있잖아

당신을 기억한다고요!

by 유로지

늦더위가 아직 물러서지 않았던 어느 여름 퇴근길,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내 앞에 가벼운 발걸음 하나가 보였다. 그 경쾌한 발걸음보다도 더 밝은 목소리로 계속 뭔가를 말하는 그녀, 혼잣말인가? 궁금해서 뒷모습을 따라가 보니 그녀가 끌고 있는 유모차가 보였다.


2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아직 말이 트이지 않아 보이지만 그녀는 유념치 않고 아이에게 계속 말을 건넨다. 뒤에서 종알종알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아이도 가만히 듣고 있다.


평범한 퇴근길에 신호등 앞에선 지친 사람들.

그 사이로 밝은 그녀의 모습이 낯선 이방인처럼 유독 눈에 띈다. 그러다 문득 불과 몇 년 전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하던 내 모습이 떠오르며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며칠 뒤 하늘에서 장대비가 쏟아지던 퇴근길. 또다시 마주친 그녀는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한 손으로는 유모차를 끌며 여전히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다. 쏟아지는 많은 비에 아이는 괜찮을까 걱정했던 마음이 유모차에 야무지게도 씌워진 방수커버를 보고 나니 한결 가라앉았다.


가끔 퇴근길에 그녀를 마주치면 기분이 좋다. 더워도 비가 쏟아져도 나왔을 그 산책길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알고 있으니까. 돌아오는 대답이 없어 더 큰 소리로 내뱉은 혼잣말의 외로움을 알고 있으니까.


점점 괜찮아질 거라고, 지금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기억해 주는 것뿐일 것 같다. 당신은 나를 모르지만 나는 기억한다고, 유모차를 이끄는 경쾌한 발걸음, 하이톤의 밝은 목소리 그리고 그 어떤 외로움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