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눈을 떠서 집을 나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책상에 앉아서 코드를 짠다.
코드를 짜는 일은 지겨워 보이지만 전혀 지겹지가 않다.
내가 짠 코드가 어떤 동작을 일으키는지 내 눈으로 바로 결과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코드 한 줄 한 줄에 의도를 가득 담아 작성한다. 결과는 0 아니면 1, true or false 다.
명확하고 즉각적이고 확실하다.
하루 종일 코드를 짜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쓴다.
글을 쓰는 일은 지겨워 보이지만 전혀 지겹지가 않다.
글을 쓰는 동안의 이 세상의 온갖 소음들은 모두 내 안에 들어온다. 바깥은 고요하고 그 고요는 세상의 모든 소음을 내가 가져온 덕분이다.
글 한 줄 한 줄에 의미를 가득 담아 쓴다.
결과는? 모른다.
코드는 짜고 나면 어디서 오류가 났는지 결과는 어떤지 바로 알 수 있는데 글은 쓰고 나면 이 글이 어떻게 어디로 흘러가서 올지 예측할 수 없다.
마치 유리병 하나에 고이 접은 편지 하나를 매일 하나씩 바다에 띄우는 기분이다.
언제 올지 모르는 답장을 마냥 기다리는 일이 어느 날은 꽤 서글프기도 하다.
그럴 때면 낮에 내가 짠 코드들이 위로해주곤 한다.
클라이언트가 보낸 요청을 서버가 못 받아도 그건 클라이언트의 사정은 아니라고 말이다.
그러면 나도 그들 옆에서 그것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아무렴 어때. 나는 보냈으니 그만이야'라고 생각한다.
그러고는 편지를 고이 유리병 안에 넣고는 바다에 찬찬히 띄어 보낸다. 답장이 오지 않아도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충분한 나의 글을 애정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