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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군 Jan 12. 2022

스스로 관심을 보일 때까지 기다려주기

5살 아들의 숫자공부

 요새 부쩍 홍시가 숫자와 한글, 그리고 알파벳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방 문마다 붙여 놓은 한글과 알파벳 포스터를 예전에는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쳤었는데, 요새는 지나가다 발걸음을 멈추고서는 자기가 좋아하는 단어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야기를 한다. 



 홍시가 포스터를 보고 "버스다", "비행기다"라고 말하는데 그러면 나는 "비행기는 에어플레인~! A로 시작하지~"라고 이야기를 해주곤 한다. 홍시가 글씨나 숫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절대로 책상에 앉아서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하지는 않는다. 주입식 교육이라는 게 뭔가를 배우는 데 있어서 효율적일 수는 있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있기 때문에 최대한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학교에 가게 되면 주입식 교육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최대한 집에서 만큼은 홍시에게 자율성을 주면서 즐겁게 무언가를 배우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드디어 화이트보드를 사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집 인테리어와 잘 어울리는 화이트보드를 열심히 찾아서 주문했고 며칠 전에 택배가 도착했다. 택배를 뜯을 때 홍시가 옆에서 신기하게 쳐다봤다. 그리고 물어봤다. 

"엄마, 아빠 이게 뭐야?"

"응 이거 엄마 아빠가 사용할 그림판이야"

 홍시가 요새 글씨, 숫자 등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시점에 어떻게 하면 좀 더 스스로 관심을 더 가질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우리의 결론은 나와 정양 역시 홍시의 눈높이에 맞춰서 글씨와 숫자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화이트보드는 나와 정양을 위한 글자, 숫자 칠판인 셈이었다.



 화이트보드를 홍시의 눈높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위치에 두고 정양과 나는 매일 같이 숫자를 보드에 적어 나갔다. 처음에는 1부터 10까지 숫자를 전부 화이트보드에 써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숫자 2를 써놓고는 관련된 그림을 그려 넣기도 했다. 

 우리가 화이트보드에 뭔가를 쓸 때 홍시는 관심을 보일 때도 있지만,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혼자서 장난감들과 놀 때도 있다. 사실 나는 홍시가 아예 관심을 갖지 않기를 원하고 있다. 그냥 엄마, 아빠가 매일 화이트보드에 뭔가를 쓰고 있구나 정도로만 홍시에게 인지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가끔 내가 칠판에 숫자를 쓰고 있으면 홍시가 옆으로 다가와서 앉는다. 그리고는 마카펜을 들고 옆에서 같이 뭔가를 쓴다. 자기는 숫자 1이 제일 좋다면서 보드 구석구석에 숫자 1을 채우기 시작한다. 그러면 나는 숫자 1을 쓰고 있는 홍시 옆에 앉아서 조용히 숫자 2를 쓰기 시작한다.

 홍시에게 숫자 2를 보여는 주되, 절대로 써보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지금은 숫자 1이 좋다고 하니까 마음껏 숫자 1만 쓸 수 있도록 지켜본다. 화이트보드에 숫자 1을 가득 채우고 나면 지우고 나서 다시 채운다. 언제 끝날지는 모르지만 그냥 홍시가 좋아하는걸 계속할 수 있도록 지켜본다. 그리고 나는 그냥 옆에서 숫자 2와 3을 조용히 쓴다.




 그렇게 숫자 3을 몇 번 쓰고 나서는 다시 홍시가 좋아하는 숫자 1로 칠판을 채우기 시작했다. 자기는 숫자 1이 제일 좋다면서 계속 채워 나갔다. 그리고 나는 옆에서 인제 숫자 4를 쓰기 시작했다. 홍시가 숫자 4에 관심을 갖게 될 때까지 며칠이 걸릴지 모르지만 그냥 자연스럽게 노출시켜주고 있다. 그러면 분명 홍시가 관심을 가질 거라 믿었다.

 난 예전에 수학능력시험을 두 번 치렀다. 고3 때 한번,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 기존에 다니던 대학을 자퇴하고 또 한 번. 그때를 돌이켜 보면 공부라는 걸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진심으로 뭔가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야 공부가 재미있어진다는 거였다. 내가 고3이니까, 주변 친구들이 다들 공부를 하니까, 막연히 대학을 가야 하니까 하는 공부는 재미없고 지루했다.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 역시 즐겁지만은 않았었다. 하지만 두 번째 수능시험을 치를 때는 내가 진짜 해보고 싶은 공부를 한다는 마음이 있으니 책상 앞에 있는 시간이 재미있었다. 같은 내용의 수능시험 과목들에 대한 공부였지만, 분명히 다른 느낌이었다.

 이제 막 글씨와 숫자들을 궁금해하는 홍시에게 조금이나마 내가 두 번째 수능시험을 치르면서 느꼈던 그런 감정들을 알려주고 싶었다. 이런 방식이 지금은 또래의 친구들보다 조금 늦을 수는 있지만, 홍시가 직접 배움에 대한 재미를 느끼면서 무언가를 배우는 방식을 터득한다면 지금의 속도가 오히려 나중엔 큰 거름이 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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