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것이 달라지고 있는 5살
홍시가 5살이 되고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하니 생각보다 많은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 친구들과의 관계, 어린이집과는 다른 유치원의 학습방식, 아이의 신체, 정신적 발달 속도 등 많은 것들이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정양과 함께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어쩌면 너무 빠르게 달라지는 홍시를 못 쫓아 가는 건 아닐까 매일 생각한다.
최근에 우연히 내가 영어로 전화하는 걸 듣게 되면서 홍시에게 영어에 흥미가 생겼다. 개인적으로 모국어가 아직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2 외국어에 노출을 시키는 게 올바른 방식인지 확신이 없었기에 따로 영어공부를 시켜야겠다 라는 생각은 안 했었다. 하지만 아이가 먼저 스스로 영어를 배우고 싶다고 하는데 안 된다고 할 부모가 어디 있는가. 우리 역시 홍시가 갖고 있는 영어에 대한 호기심을 위해서 예전에 사놓은 영어 동화책들과, 물려받은 영어교재들, 그리고 Number Blocks라는 유튜브를 통해서 조금씩 영어와 친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홍시가 먼저 영어를 말하고 싶다고 이야기는 했지만, 절대로 우리가 먼저 영어책을 들고 다가가지 않는다. 홍시가 먼저 영어책이나 영어 관련 장난감을 들고 올 때만 가르쳐줬다. 어른이건 아이건 아무리 즐거운 일이여도 타인에 의해서 하게 된다면 금방 흥미를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기다리고 또 기다려 주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하다 보니 홍시가 영어와 친해지는 속도가 빠르지는 않다. 이제 막 숫자 1부터 20까지 영어로 셀 줄 알고, 간단한 아침저녁 인사 정도가 전부다. 그래도 우리는 홍시가 여전히 흥미를 잃지 않고 영어를 즐겁고 재미있는 놀이의 대상 정도로 생각을 하는데 만족하고 있다.
홍시가 유치원을 다니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나나 정양의 친구 자녀들이 함께 커가면서 다양한 또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누구네 아들은 홍시와 같은 5살인데 한글을 다 읽을 줄 안다. 4살짜리 친구 딸은 벌써 영어로 문장을 만들 줄 안다. 어떤 친구는 벌써 수학, 미술, 영어 학원을 다닌다.
오늘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숫자를 영어로 읽을 줄 알고, 사랑한다는 말을 '알러뷰'라고 말하는 홍시가 너무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진심으로 단 한 번도 소위 말하는 엄친아의 이야기가 부럽지 않았다. 모두 다 부모와 아이가 원하는 속도에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누구보다 느린 것도 아니고, 당연히 빠른 것도 아니다.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나는 아이가 얼마나 행복하게 배움을 느끼고 재미있어하는지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읽었던 책에서 기억나는 내용이 있다. 아이가 어릴 때 1년 먼저 한글을 깨친다고, 나중에 수능시험 언어영역에서 더 좋은 점수를 받을까? 일찍 깨우친 한글 덕택에 이 아이의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변화할까?
나는 조금 늦게 영어를 배우더라도 제2외국어가 재미있는 언어라는 걸 알게 해주고 싶다. 영어뿐만 아니라 배움이라는 게 절대로 책상에 앉아서 하는 지겨운 활동이 아닌, 내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즐거운 행위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속도'보다는 '즐거움'에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 중이다.
홍시가 성인이 될 쯤이면 분명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돼 있을 거라 생각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우리의 삶이 변하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홍시에게 정해진 무언가를 알려주고 외우는 방식의 배움 보다는, 스스로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능력을 키워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홍시가 "왜"라는 질문을 하면 정말 고맙고, 최선을 다해서 같이 왜 그런 건지 생각해 보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면 홍시는 숫자 7을 좋아하는데 내가 "왜" 좋냐고 물어보면, 홍시는 무지개 색깔이 7개여서 좋다고 한다. 그러면 나는 홍시에게 "왜" 무지개는 7개 색깔이야 물어본다. 그러면 홍시는 한참을 생각하다 원래 그런 거라고 대답하거나, 혹은 나에게 반대로 질문을 한다. "아빠 왜 무지개는 7개야?"
무언가를 궁금해하고 그 해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엄청난 창의력이 발휘한다. "왜" 무지개가 7개인지 아이가 생각하는 내용들은 어른의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내용들이지만, 아이들은 생각의 울타리가 없기에 다양한 생각을 하고, 그런 생각들은 아이를 발전시킨다. 그래서 항상 홍시에게 "왜"라는 질문을 하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