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새 학기 유치원 적응 육아일기
결국엔 홍시 앞에서 울고 말았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잘 버티고 있었는데, 엊그제는 집에서 홍시와 긴 대화를 하다가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어른인 아빠도 힘들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려주게 된 것 같아 잘된 건가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안 그래도 심적으로 힘든 홍시에게 큰 짐을 준건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한가득이다.
육아일기를 쓰면서 자연스럽게 홍시의 성격에 대해서 몇 번 쓴 적이 있다. 신생아 때부터 모든 발달 과정이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속도였다. 나는 홍시 성격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되도록 "느리다"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다르다"라는 단어를 쓴다. 그 이유는 홍시가 실제로 "느린"게 아닌 "신중" 해서라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항상 무언가 행동을 하거나, 말을 할 때 한참을 고민하고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고, 실제로 커가면서 이런 내 생각이 맞는 것 같았다.
홍시의 이런 성격을 알고 있기에 정양과 나는 매년 3월 긴장한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때가 되면 홍시는 다른 친구들보다 몇 곱절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같은 유치원에서 학년만 바뀌는 거지만 '새로운 교실, 새로 만나는 친구들, 그리고 처음 보는 선생님'이 홍시에게는 아주 큰 벽으로 느껴지기에 바싹 긴장할 수밖에 없다.
이번 3월도 역시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홍시는 요새 항상 걱정에 빠져있다. 아침밥을 먹을 때도, 씻을 때도, 저녁에 잠들기 전에도 갑자기 유치원 생각이 나면 눈물을 흘린다. 홍시에게 왜 우느냐고 물어보면 "유치원 새 교실, 친구, 선생님이 무서워. 유치원이 싫은 건 아닌데 무섭고, 가슴이 두근두근 거려. 그리고 엄마, 아빠가 나를 데리러 일찍 왔으면 좋겠어"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러면 나는 홍시를 안아서 달래주다가도, 홍시가 잘 이겨낼 수 있다고 용기를 주기도 하면서 다독여 준다.
엊그제 저녁에는 거실에 홍시와 함께 소파에 앉아서 진솔하게 30분 정도를 이야기를 했다. 적당히 어두운 거실 조명에 어떤 소리도 나지 않는 조용함이었다. 나는 홍시에게 어떤 게 가장 힘든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정이 변화하고 있는지, 아빠 엄마가 어떤 걸 도와주면 좋을지 등 물어봤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엄마, 아빠도 회사를 다니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고, 홍시와의 등하원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빠도 회사에서 일이 바쁠 때는 힘들기도 하고, 출퇴근 시간 매일 긴 시간 운전을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니 홍시가 회사는 왜 가야 하냐고 묻기에, 홍시가 지금 요리사가 되고 싶듯이 엄마, 아빠가 지금 하는 일이 어릴 적 꿈이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홍시가 먼저 눈물을 흘리는데, 나도 감정을 참을 수 없었다. 처음엔 애써 꾹꾹 참아보려 했는데, 그냥 아빠의 솔직한 감정도 보여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홍시가 엄마 아빠의 마음을 갑자기 알아주기라도 한 걸까. 아침 등원길이 달라졌다. 홍시가 울지 않고 씩씩하게 인사하며 유치원을 들어갔다. 갑자기 달라진 홍시의 모습에 마냥 고맙고 기특했다.
그런데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었다. 무슨 이유에서 인지 홍시가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 잦은 배아픔과 설사가 있어서 대수롭지 않게 병원 가서 약 받아서 먹고 있었는데, 이번에 목이 아프다고 한다. 열이 나지도 않고, 기침도 없는데 그냥 침을 삼키는 게 불편하다고 한다. 그리고 또 너무 울었는지 눈까지 충혈이 되기도 했다. 사실 아픈 원인이야 따로 있겠지만, 부모로서 죄책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홍시가 새 학기 유치원에 적응하는 게 정말 큰 압박이고 스트레스여서 아픈 것 같았다. 심적으로 느끼는 스트레스로 인해서 결국 이렇게 된 거라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에 또 한 번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분명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누구보다 유치원을 좋아하고, 선생님을 따르고, 새로운 친구들이 없으면 심심하다고 투정 부릴게 분명하다. 조만간 웃으면서 유치원에 뛰어들어가고, 하원할 때는 친구들과 인사하며 신나게 나오겠지. 홍시야 언제나 너의 속도를 응원한다. 엄마 아빠도 옆에서 힘내볼게. 우리 잘 이겨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