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을 가기 전에 연습을 먼저 해야 한다는 아들
이제 7살이 된 아들 홍시는 점점 관심 있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알게 되는 것들도 있고, 나와 정양이 알려주는 정보들도 있다. 그리고 여행 혹은 야외활동을 하면서 보는 것들까지 많은 경험과 정보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중에서 최근에 관심사는 가장 친한 친구들이 다니고 있는 축구클럽과 지난주 체험수업으로 다녀왔던 바둑이다. 물론 그 외에도 미술, 색종이, 캠핑, 키즈카페, 소금 빵, 터닝메카드 등 좋아하는 것들을 나열하자면 끝도 없지만 최근 홍시와 나, 그리고 정양 셋이서 고민하는 것들은 축구와 바둑이다.
홍시의 첫 번째 관심사는 친구들이 유치원을 끝나고 다니고 있는 축구 클럽이다. 작년에 유치원 친구들 중에서 축구에 관심 있는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집 근처 축구 클럽 체험 수업을 갔다. 수업 내내 홍시도 다른 친구들과 재미있게 체험수업을 즐기는 것 같아서 "아 친구들이랑 축구 클럽을 다니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집에 와서 홍시는 "축구가 재미있기는 한데 난 안 다닐 거야"라고 이야기해서 의외였다.
그리고 두 번째 관심사는 바둑이다. 바둑은 친구들이 아닌 나와 정양의 관심사였다. 물론 강제로 홍시한테 바둑을 배워 보라고는 하지 않았다. 집에서 자주 바둑과 비슷한 보드게임을 하기도 하고, 가끔 소아과에 갈 때 근처에 있는 바둑교실에 가서 구경하는 정도로만 노출을 시켜줬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홍시가 바둑에 관심을 보일 때쯤 바둑학원에 가서 체험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결과는 "난 바둑이 재미있기는 한데 학원은 안 다닐래"였다.
홍시의 대답이 약간 이상하기는 했는데 "뭐 애들이니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했다. 한창 좋은 것과 싫은 것이 하루에도 수없이 바뀔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최근에 홍시가 한 말은 나와 정양이 많은 생각에 빠져들게 했다.
"아빠, 엄마. 나는 바둑이랑 축구를 친구들과 학원에서 배우고 싶기는 한데, 가기 전에 집에서 연습을 해서 갈 거야. 축구도 아빠랑 밖에서 연습을 미리 해야 하고, 바둑도 엄마 아빠랑 집에서 연습을 해야지 학원에 갈 수 있을 것 같아."
일단은 홍시가 저렇게 이야기했을 때 무슨 말이라도 대답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홍시야 학원이라는 곳은 우리가 축구랑 바둑을 배우려고 가는 거야. 꼭 미리 연습을 해서 잘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는 없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홍시는 "난 그래도 연습을 하고 학원에 가고 싶어."라고 대답했다.
대화가 끝난 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홍시가 학원을 가기 전부터 연습을 해서 가야 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아빠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홍시의 의도는 아래와 같았다.
1. 낯가림이 심한 홍시가 그냥 학원이 안 다니고 싶어서 그런 건가?
아주 어릴 때부터 홍시는 낯을 많이 가리는 아이였다. 사람뿐만 아니라 새로운 장소에 대한 적응 시간도 다른 아이들보다 좀 더 필요한 아이였다. 그러다 보니 같은 작년 초에는 유치원에서 학년이 올라갔을 뿐인데도 새 학기에 적응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었다. 그래도 작년 여름이 지나면서부터 낯가림이 점점 줄어들고 외향적으로 바뀌는 듯한 느낌이 들었었는데, 여전히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불편함으로 그런 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2. 혹시 완벽주의자?
내가 내 아들한테 '완벽주의자'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좀 부끄럽지만, 혹시 그런 건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현재 1년 정도 다니고 있는 미술 학원은 처음에 학원에 가는 걸 어려워하지 않았었다. 아마도 유치원과 집에서 충분히 그림도 많이 그려보고, 이것저것 많이 만들어본 경험이 있어서 미술에는 자신 있는 상태라 그랬던 것 같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홍시에게 축구와 바둑은 학원 가기 전에 연습이 더 필요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3. 친구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요새 홍시가 친구들이랑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예전과는 다르게 주도적인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친구들이랑 놀면서 본인의 의견을 명확히 이야기하고, 게임 방식은 어떤 식으로 하면 좋을지 설득하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혹시 홍시가 다른 친구들과 새로운 학원을 갔을 때 본인이 잘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기가 싫은 건 아닌가 싶었다.
4. 그냥 집에 있는 게 좋은 건 아닐까
마지막으로는 그냥 집에 있고 싶은 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홍시는 집을 좋아한다. 주말에 나랑 정양이 어디 나가자고 하면 "나는 집이 좋아. 집에서 잠시 혼자 놀 수 있는 자유시간을 줬으면 좋겠어."라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홍시가 집에서 노는 걸 좋아하다 보니, 학원보다는 집에서 놀고 집에서 뭔가를 배우고 하는 게 좋은 걸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시에게 티는 내지 않았지만, 홍시의 말 한마디에 엄마 아빠는 생각이 깊어진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아이의 대답일 수도 있지만 생각이 많아지는 걸 보니 점점 나와 정양도 진짜 부모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주면서, 티 나지 않게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게 참 어려운 것 같다.
홍시야 너의 마음속에 한번 들어가 보면 안 되겠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