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군 Sep 21. 2024

7살 아들과 나누는 대화의 기술

저녁 메뉴 고르다 시작된 심각한(?) 대화

 며칠 전 저녁을 먹으러 스타필드에 갔다가 메뉴를 고르면서 7살 아들과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둘이서 저녁 메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작은 문제가 발생했다. 아들은 피자와 빠네파스타가 먹고 싶다고 했고, 나는 알리오올리오가 먹고 싶었다. 서로 먹고 싶은 메뉴가 다른 상황에 우리는 마주 보고 앉아서 어떤 음식을 주문할지에 대해서 꽤 오랜 시간 이야기를 했다.



홍시 : 아빠 나는 토마토 피자와 빠네파스타가 먹고 싶으니 이렇게 두 개를 시키자!


나 : 아빠는 알리오올리오 오일 파스타가 먹고 싶으니 우리 각자 먹고 싶은 거 하나씩만 시키자


홍시 : 나는 둘 다 꼭 먹고 싶은데 그럼 나는 두 개 시키고, 아빠가 먹고 싶은 거 하나도 시키면 좋을 것 같아


나 : 오늘은 우리 둘밖에 없는데 음식을 3개나 시키면 너무 많을 것 같아. 2개면 충분해.


홍시 : 나는 꼭 두 개를 먹고 싶은데...


홍시 : 음... 아빠, 그럼 내가 먹고 싶은 걸 두 개 시켜서 나눠 먹으면 안 될까


나 : 아빠는 홍시가 고른 파스타를 먹고 싶지는 않아. 여기서 먹어본 적 없는 건데 별로일 것 같아.


(위의 대화 무한 반복)


홍시 : 나 밥 안 먹고 집에 갈래.


나 : 음... 그래 이렇게 계속 서로 다른 말만 할 거면 집에 가서 밥 먹자. 


홍시 : 아니 그게 아니라... 


홍시 : 아빠가 그냥 내가 원하는 음식을 먹어주면 안 돼? 


(홍시가 삐진척하면서 집에 가자고 해서, 알았다고 내가 그냥 집으로 가자 하니 당황해하는 홍시)


나 : 홍시야 오늘 아빠가, 네가 먹고 싶은걸 같이 먹었으면 좋겠어?


홍시 : 어 아빠 근데 아빠는 아빠가 먹고 싶은 게 있다니까 답답해


나 : 홍시야 그럴 땐 화난 거 같이 갑자기 집에 가자고 이야기하면 상대방도 기분이 안 좋아. 오히려 그럴 땐 네가 지금 먹고 싶은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지 아빠한테 이야기를 해주면 어떨까? 아빠는 네가 먹고 싶은 빠네파스타를 먹어본 적이 없거든. 그래서 네가 예전에 엄마랑 먹어본 빠네 파스타가 얼마나 맛있는지 잘 설명해 주면 아빠도 그게 먹고 싶어질 수 있어.


홍시 : 아빠는 이거 먹어 본 적 없어? 이거 진짜 맛있는 거야. 빵으로 그릇을 만들어서 파스타가 그 안에 담겨 나온다고. 그래서 파스타 그릇인 빵을 직접 뜯어서 먹을 수도 있어! 


나 : 그릇이 빵으로 되어있다고? 그래서 빵으로 된 그릇을 뜯어서 먹는다고? 진짜 신기한데?!!


(이렇게 극적으로 홍시가 먹고 싶은 두 개의 메뉴로 극적 타결!)



 나는 홍시한테 빠네파스타가 얼마나 맛있는 음식인지, 어떻게 생겼고, 어떤 맛이 나는 음식인지 설명을 들었다. 그러고는 마침내 홍시가 먹고 싶었던 두 개의 메뉴를 주문했다. 메뉴를 주문하고 나니 잠시 후 식전 빵이 나왔는데 보자마자 홍시가 막 설명을 시작했다. "아빠 이거 빵 엄청 쫄깃하고 맛있는 거야 한번 먹어 바. 여기 소스도 있어서 찍어 먹으면 더 맛있어!"


식전 빵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금세 피자와 파스타가 나왔다. 나는 빠네파스타를 보자마자 약간의 호들갑(?)을 떨면서 반응해 줬다. "홍시야 이거 파스타 그릇이 진짜 빵이네! 엄청 신기하다. 이걸 왜 진작 이야기 안 해줬어. 홍시가 이야기해 줬으면 아빠도 바로 이거 먹자고 했을 텐데!". 홍시의 얼굴을 보니 입꼬리가 씰룩거리며 기분이 좋아졌다. 신이 난 홍시는 어떻게 빵을 뜯어먹는지 설명도 해줬다. 


요새 홍시는 정말 잘 먹는다. 또 한 번 키가 크려고 하는 건가 정말 먹는 양을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 나는 피자 딱 한 조각 먹었는데 나머지 한 판을 전부다 홍시 혼자 먹었다. 그리고 파스타도 나눠서 먹고 빵으로 된 그릇까지 뜯어서 다 먹었다. 


 

 사실 아이와 저녁 메뉴 하나 고르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개인적으로 아이와 함께 있을 때 오늘 같은 대화가 축적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나중에 홍시가 자기와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이야기해야 좋은 건지 알 수 있을 테니까. 상대방과 대화 중 문제가 생겼을 때 회피하거나 화를 내는 것보다, 상대방에게 내 의견을 어떻게 설득시킬지 생각한다면 좀 더 멋진 아이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홍시야 근데 오늘 빠네파스타 진짜 맛있었어:)

작가의 이전글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세상을 살게 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