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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kDolphin Apr 29. 2018

벌써, 혹은 아직 스물다섯.

반 오십과 20대 중반에 기로에 서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우리 벌써 반 오십이다."

"반 오십 말고 20대 중반이라는 산뜻한 단어 쓰면 안 될까?"

"25살이 이 세상에서 제일 어중간한 나이야. 아주 어리지도, 아주 성숙하지도 않은."

"그렇다면 난 오늘부터 한국식 나이를 버리고 만 23살로 살아갈 거야."


끄덕끄덕. 스물다섯, 갓 졸업을 하고 취업 준비에, 공부, 진로 고민에 한참인 우리의 일상인 대화다. 



스물다섯은 아주 많이 혼란스럽다.


엄마가 나를 낳았을 때의 나이,

친구들이 대학을 졸업하며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는 나이,

아주 가끔씩 또래 친구들의 결혼 소식이 들려오는 나이.


스무 살이 된다는 건 짜릿한 일이었다. 나도 드디어 미성년자가 아닌 성인이라니! 

젊음과 패기로 가득한 '20대 클럽'의 입장권을 손에 쥐고 그토록 행복했다. 하지만, '20대 <중반> 클럽'의 입장권은 어쩐지 달갑지 않다. 스무 살, 앞으로 남은 날들에 대한 희망과 기대로 가득했던 날들과 다르다. (나도 대학 졸업하기 전엔 주커버그처럼 페이스북 같은 거 하나 만들 줄 알았지) 


스물다섯은 어쩐지, '내 인생은 망했다. 이제부터 뭘 해야 하지..'라는 자조와 푸념 섞인 어두운 터널 같다. 



'Post Graduation Depression' (대학 졸업 후 우울증) 이라는 단어가 괜히 생겨난 건 아닐 것이다. (출처: someecards)




60대, 70대 인구도 인생의 새로운 막을 걱정하는 시대라는데, 그분들 입장에서는 스물다섯의 이런 자조 섞인 걱정이 웃음도 안 나오는 어이없는 고민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늘 그랬듯, 본인보다 어린 사람들의 고민거리는 '심각성 없는 귀여운 고민' 정도로 치부되기 십상이니까. 


기원전 1700년 전에 쓰인 수메르 점토판에도, '요즘 젊은 것들은 철이 없다.'라는 글귀가 있다. 



치맥을 함께 하던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야, KFC 창업자 할아버지는 65살에 사업을 시작했다는데, 그럼 우리도 40년 정도 더 여유 있는 것 아닐까?"


"당연하지, 근데 그 할아버지도 25살엔 우리랑 똑같이 이렇게 방황하고 힘들었을걸? 본인이 40년 후에 세계적으로 거대한 치킨집 사장이 될 줄 알았으면, 25살엔 그냥 아무 걱정도 안 하고 놀지 않았을까?"


일자리 정책, 양육 지원 정책 등 모든 정책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스물다섯과 서른다섯의 범위 그 어딘가에 존재하는 우리들이다. 특히 사상 최고치를 찍고 있는 취업난에 스물다섯을 바라보는 눈빛들은 측은하기만 하다. 


하지만 스물 다섯들의 고민 가장 밑바닥에는 어쩌면, 그들이 '아직도' 스물다섯에 지나지 않는다는 위로가 아닐까. 


'벌써'와 '아직'은 다르다.

벌써 스물다섯이라면,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고 인생 설계를 하며 어엿한 사회인으로서의 자기 구실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따라붙는다.


아직도 스물다섯이라면, 책임감보단 방황해도 괜찮다. 누구나 처음이 서툴듯이 스물다섯으로 사는 것은 처음이고, 서툴다. 2~3년 전만 해도 꿈과 욕심이 많았던 내 모습이 옛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결국 우리는 꿈 많던 그 모습의 연장 선상에 와 있을 뿐, 스물다섯을 기점으로 다른 세상에 넘어와버린 것은 아니다. 


아직도 스물다섯은 터무니없는 꿈을 꿔볼 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충분히 해볼 수도 있는 나이라고. 나의 친구가, 가족이, 사회가 말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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