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애매함.
"열심히 하면 안 되는 건 없어."
잔소리 단골 멘트이자 내 스물다섯 해 인생의 모토였던 이 한 문장이 날 이렇게까지 흔들어놓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네 결과가 안 좋은 건 '노오력'이 부족해서라고. 그러니 그 부족한 노력만큼을 더 채워서 다음번에 더 잘하라고. 꾸중을 들을 땐 마음이 땅 끝까지 떨어지지만, 결국 뒤돌아서 내가 할 일은 분명했다.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
항상 남들보다 잘하고 싶었다.
항상 남들보다 몇 배로 더 노력했다.
항상 남들보다 묵묵히 꾸준히 내 할 일을 했다.
그 모든 게 “네 재능은 좀 애매한 것 같아."라는 한 마디에 금이 가기 전까지.
누군가 그랬다. 무능보다 불행한 것은 '애매한 재능'이라고. 피나는 노력으로도 따라잡을 수 없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면, 애매한 재능은 쉽게 따라잡힌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애매한 재능을 지닌 많은 이들이 스스로를 굉장히 재능있다고 착각했다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고서부터 차원이 다른 경쟁의 세계에 내던져진 기분이다.
내가 경쟁하는 상대는 미국에, 인도에, 중국 등 전세계 도처에 널려있으며 각 나라에서 꽤나 공부 잘한다는 수재들이다. 논문 한 편을 내기도 쉽지 않다. 나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더 좋은 데이터로, 더 좋은 글을 써내는 사람들이 과연 한둘일까.
갈수록 불안해지는 내 눈빛을 눈치채셨는지, 지도 교수님과의 저녁 식사에 이런 말이 나왔다.
"성적하고 좋은 연구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 사이에 뚜렷한 상관관계는 없는 것 같아."
"다음엔 성적이 좋다고 학생 스카웃하는 일은 좀 자제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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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이제 머리에 빨간 불이 좀 켜졌지?"
애매한 학생을 향해 내던져진 애매한 말이 그렇게 날카로울 줄은 몰랐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거야."라고, 은퇴를 앞두신 교수님께서 껄껄 웃으며 말하셨다.
맞다, 애매한 재능이니 천부적인 재능이니 따지기 전에 나는 그렇게 진득하게 노력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스스로 좋은 연구자가 될 가능성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내게 그 어떤 가능성도 없었다면, 웃으며 훌훌 털어버리고 '이건 내 길이 아니야.' 하며 돌아설 수 있었을까.
내게 애매한 재능이라도 있기 때문에 나는 포기와 노력의 갈림길 앞에 서서 헤매는 걸까.
무언가에 열중한 사람들이 가득한 연구실을 도망치듯 빠져나오는 그 기분을.
다른 사람이 기대하는 내 모습이 초라한 나 자신보다 너무 크게 느껴지는 그 기분을.
나는 너무 많이, 자주 느끼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가장 안타까운 참가자들은,
사람들이 웃어넘기고 마는 음치가 아니라, '노래는 잘 하는 것 같은데 무언가 특별한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재능은 있으나 그 어딘가 충분하거나 특별하지 않을 때, 그 애매함에 사람들은 고개를 젓는다.
이들은 '한 번만 더 두고 볼게요'라는 심사위원의 한 마디에 경쟁에서 살아남기도, 'You have nothing special.'이라는 한 마디에 무대를 떠나기도 한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특별한 건 없지만 우선 한 번 두고 볼게.'의 단계에 서있는지도 모른다.
완벽한 드라마가 만들어지려면 이 말을 들은 참가자가 다음 무대에서 모든 이를 소름 끼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내게 그런 저력과 용기가 남아 있을까.
애매하다는 말은, 그 뉘앙스부터 긍정적이지 않다. 우리는 이도 저도 아닌 그 모호한 경계에 선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애매한 재능을 다루는 방법은 세 가지다.
이번 재능은 포기하고 다른 재능을 찾아 나서거나,
노력으로 모자란 재능을 메꾸거나, 아니면 '그 누구도 내 재능의 끝을 모른다'라고 되받아치거나.
어쩌면 내게 부족했던 건 애매한 내 재능으로라도 덤벼보겠다는 확실한 의지일지도 모른다.
애매한 확신이 아닌 확실한 확신을 가지고 움직일 때 비로소 애매한 재능은 빛을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