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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kDolphin Aug 04. 2020

5년, 국제 연애의 끝.

평범하고 특이했던 우리 연애. 나는 결국 이별을 택했다.

문득 잊고 있던 브런치라는 공간이 생각났다. 이따금 따뜻한 댓글을 달아주시는 독자들 덕분에 방문하긴 했지만, 새로운 글을 쓰려고 노트북 앞에 앉은 지는 참 오래간만이다. 프로필 사진에는 내가 그 애와 잡고 있는 손이, 프로필 소개란에는 '세계 반대편에서 온 남자와 연애하는 범생이'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이 작은 온라인 공간에서 나를 정의하던 5년 간의 지난 우리 연애는 이별로 막을 내렸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나는 오랜만에 글을 쓴다.


'브라질 남자'라는 단어가 나는 아직도 생경하다. 그 생경함에 다른 이들이 우리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 생경함만큼이나, 너는 언제나 내 삶의 이방인이었을까. 나는 그게 가끔 원망스럽다. 나는 너를 너로 사랑했을 뿐인데, 너는 늘 내 삶을 겉돌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우리의 이야기가 소설이라면 나는 결말을 이렇게 내지 않았을지 모른다. 너를 원망할 생각은 없지만, 아직도 나는 평행선만 그리던 우리 인연에 대해 생각할 뿐이다.


우리 사이에 말이 부쩍 줄어들기 시작한 건,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고 내가 가을에 앞두고 있던 미국행을 고민하기 시작할 때부터였을까? 아니면, 내가 할아버지를 갑작스럽게 잃고 나서 연락이 뜸했던 그 일주일 이후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내가 버거운 현실에 자꾸만 안정을 선택하고 싶어진 그 이후일까. 답은 아무도 모를 거다. 심지어 우리마저도.


할아버지를 보내던 그 날, 너무 울어 실신 직전까지 갔던 나를 위로해주던 너의 따스한 메시지가 생각이 난다. 작은 화면 안에서 보던 너의 눈물 젖은 얼굴도 생생히 기억이 나. 그런데 내가 더 잊어버리기 힘든 건, 텅 빈 장례식 안에서 휴대폰을 손에서 놓았을 때 느껴지던 적막과 고독함이다. 그 때였던 것 같다. 너와 내 인연을 갈라놓고 있는 모든 현실의 무게 앞에서 나는 그저 주저앉고 만 것이다.  


우리는 만남도, 함께 보낸 5년도, 헤어짐까지 자연스러운 사람들이었다. 헤어진 날의 대화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물 흘러가듯, 나는 헤어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너는 그런 나를 붙잡지 않았다. 우리 인연을 붙잡고 있는다는 건, 앞으로 몇 년간 서로의 미래를 실낱같은 희망으로 붙잡아 두겠다는 아집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이전에도 몇 번이고 헤어짐을 말했다. 너는 그때마다 나를 뒤돌아 세웠다. 그리고 나는 기꺼이 뒤돌아서 너에게로 뛰어갔다. 이번에는 달랐다. 너는 나를 붙잡지 않았고, 나는 끝내 뒤돌아 서지 않았다.


사랑이 변한 건 아니다. 나는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한다. 우리는 이렇게 어른이 되었던 것이다. 기다리기만 한다고 원하는 걸 다 가질 수 없다고, 색이 바래져가는 인연에 때로는 등 돌릴 필요도 있다고, 시간이 내게 알려줬다. 어수룩한 너를 처음 만났던 스물둘 여린 청춘에서 스물일곱 살짜리 어른으로 성장한 그 여정에서, 나는 이별을 만나 더 단단해졌다.


우리는 길 가다가 마주친 전 연인들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우연을 가장해서라도 너를 길거리에서 마주칠 행운은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내 인생 1/5을 차지하던 인연의 막이 내렸다. 내가 나이가 들수록 그 숫자와 너의 무게는 점차 희석될 것이다.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고, 가고, 누군가와 가족을 이루며 살아갈 동안 나는 늘 우리의 5년을 소중히 간직할 거다. 그 기억의 자리가 먼지 뽀얗게 앉는 마음의 다락방 한 켠이라도, 그 온기와 기억과 웃음을 간직하려고 한다.


가장 평범한 사람들이 만나 사랑했을 뿐인데, 그리고 그 이야기를 글로 적었을 뿐인데, 아직도 많은 분들이 내 이야기에 울고 웃고 공감해주신다. 누군가의 눈에는 특이하게만 보였을 우리의 연애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나와 그 사람의 인연은 여기에서 마침표를 찍었지만, 내 삶은 그렇지 않다. 지나간 인연에 대한 애도와 묵념이 깊어질수록, 내 마음은 가벼워지고 있다. 너와의 삶을 위해 내 삶의 부분을 내어줘야 한다는 압박과 부담에서 벗어나니 진정한 행복이 보이기 시작했다. 너 역시도 내가 조금 더 행복해지기 바랐을 거라 믿는다. 나는 죽는 날까지 늘 네 삶을 멀리서나마 응원하려고 한다.    


우리 인연은 이렇게 끝났지만, 내 삶과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다만 나를 수식하던 말들이 바뀔 뿐이다. 나는 더 이상 너의 연인이 아니지만, 네게 가장 친한 친구였고, 한 점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너를 사랑하던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삶의 새로운 챕터를 열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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