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세 아이들의 인사는 별로 유쾌하지 않았어.
일 학년, 삼 학년, 오 학년 삼 남매는 서둘러 버스정류장을 향해갔지. 어떤 이유일까 서둘러 먼저 뛰어가 버린 언니 오빠를 잡지도 않아. 그리고 주머니 속에서 오십 원짜리 동전 하나와 십 원짜리 동전 한 개를 재차 확인하고 버스를 기다려. 아이 눈앞엔 활기찬 아이들이 친구들과 재잘대며 지나가고 있어. 그들의 세상과 자신의 세상은 애초에 다른가보다 얼핏 느껴져.
버스에 올라타며 아이는 생각해. '잘 내릴 수 있을까?' 어른들 다리사이에 서 있는 아이는 특별히 의자손잡이를 잡을 생각도 안 해. 유난히 작고 마른 아이는 어깨에 자신 등보다 큰 가방 어깨끈만 꽈악 붙잡아. 다행히 흔들릴 때마다 이 사람다리 저 사람 다리에 기대 져서 넘어지지는않아.
'여기는 어딜까?' 내려야 할 정류장 차례를 하나, 둘 세다가 오늘도 놓쳐버려.
'다시 셀 수도 없고...'
몇 번의 상하차가 반복되고 버스에 몇 안 되는 국민학생들이 내리자 껌을 짝짝 씹으며 안내양 언니가 정 없는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
"얘, 너는 안 내리니? 학교잖아!"
오늘도 아슬아슬 학교를 지나치지 않고 내린 아이는 다행이다 생각해.
학교 정문, 커다란 건물 앞에서 아이는 또 잠시 멈춰.
'교실은 잘 찾아갈 수 있을까?'
그게 걱정이라는 걸 인식도 못한 아이는 표현 못하는 켜켜이 쌓인 걱정을 조그만 몸에 가득 지고 숙제처럼 하나씩 헤쳐 나가. 그게 두려움인지 외로움인지도 모르고.
아이는 아이들이 바글대는 학교건물의 4층까지는 구분할 수 있었어. 그 이상의 층은 머릿속에 넣을 공간이 없어. 일 학년이니까 일층 어딘가를 기웃기웃하다가 우연히 아는 얼굴을 발견하고 안심이 돼.
'오늘은 종 치기 전에 교실을 찾았어.'
'내 자리는.. 음...'
자신의 자리에 앉았을 때야 긴장이 조금 편안해진 아이는 벌써부터 배가 고파 와.
아이는 교실 안을 둘러봐.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깔깔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 부럽다는 감정도 모르기에 그냥 고개를 돌려버려. 단지
'쟤는 키가 크네? 예쁜 옷을 입었네? 선생님 옆에서 말도 잘하네?'신기하기만 해. 그리고 그 친구들이 선생님만큼이나 먼 거리라고 느껴.
아이는 감수성이 남달랐어. 아주 아기적의 기억, 냄새, 뭉클한 감정, 불안한 감정... 정체가 뭔지도 모를 시절부터의 것들을 가슴 깊은 곳에 차곡히 쌓아놓고 있었지. 그것들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 때까지 잃어버리면 안 되는 것처럼. 그것이 판도라의 상자일지 보물상자일지 모르는 데도 그 작은 몸에 자신만의 동굴을 채워가고 있어ㆍ그래서 등굣길, 교실의 위치 같은 것들도 직감만을 가지고 찾는지도 모르겠어.
그런데, 단 한 가지는 명확히 알 수 있었지.
'가난'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무엇인가의 부재에 대해서 만큼은 끔찍할 정도로 알고 있었어.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의 부재, 돈을 벌어야 아이 셋을 키울 수 있는 홀엄마의 부재, 아이가 충분히 귀찮았을 언니, 오빠의 부재 ㅡ어쩔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아이는 일찍 기대하지 않는 것, 기다리지 않는 것, 요구하지 않는 것을 배워버렸어.
그래도 아이에겐 이상한 희망이 있었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꼬물거림. 그것은 사랑이었지. 살뜰히 챙겨주진 못해도 새벽마다 머리맡에서 눈물을 흘려 기도해 주시던 엄마의 사랑.
그래서 아이는 괜찮았어. 그리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지. 그리고 자기 자신보다 엄마를 더 믿었기에 뭐든 참아낼 수 있었던 거야.
' 엄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시키는 거야. 그러니까 괜찮아.'
이런 마음으로 버스를 타고, 교실을 찾고, 꾸역꾸역 그러나 담담히 학교생활을 살아내었지. 그렇지만 생존에 에너지를 다 쏟은 탓인지 수업 내용은 하나도 기억에 없다는 게 좀 아파와.
'와아!' 수백 명의 아이들이 학교가 끝났다고 앞다투어 몰려나와. 아이는 알림장을 끝까지 쓰고 오늘도 맨 끝에 천천히 나가.
낯익은 버스가 오고 아침과 반대주머니에 동전 두 개를 찾아 작은 주먹에 꼭 쥐고 확인을 해.
' 집에 잘 갈 수 있을까?'표정 없는 생각이 살짝 스쳐 지나가.
낯설고 낯익은 차창 너머 풍경이 반복되다 본능적으로 여긴가 싶은 느낌이 들 때, 아이는 허둥허둥 버스에서 내려. 빵모자를 삐딱하게 눌러쓴 하늘색 유니폼의 안내양 언니가 한심하다는 듯 작은 한숨을 쉬며. 제 다리 길이만 한 버스 계단을 다 내려갈 때까지 '오라이'를 참고 기다려 주었어.
'조금만 가면 집이다.'
사력을 다해 등교를 하고 미아가 될 위기를 피해 집에 도착한 아이를 팔 벌려 맞이한 건,
'가난'이 익숙하게 웃고 있는 단칸방이야.
아이는 그게 가난일지라도 반겨주는 익숙함에 잠시 울컥 ~. 그리고 가난의 냄새가 가득한 이부자리에 안겨 짧은 잠에 꼬르륵 빠져들어.
더 긴 하루가 남아있었지만 아이 마음은 서둘러 내일의 등교를 준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