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아부지! 진지 드세요~"
"아이고, 우리 딸 맛있는 거 했네! 애썼다."
식탁의자에 둘러앉는 가족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져. 주방 동쪽 창으로는 적당히 눈부신 햇살이 밀려들어와. 그리고 새들은 오늘도 즐거운지 수다스레 주거니 받거니 앞다투어 조잘대며 파드득 박자를 맞춰. 잠이 덜 깬 고양이가 고르륵 대며 제 이마에 붙은 졸음을 내 다리에 문지르는 따스함, 주전자에서는 칡뿌리와 오미자, 돼지감자가 들어간 차가 건강한 냄새를 풍기면서 뭉게구름을 만들어 내. 등 뒤에서 가만히 안아주는 온기에 고개를 돌리면 아이들이 배시시 웃고 있어. 아이들 아빠는 식전 차를 부모님께 따라드리며 재미없는 농담을 해. 재미없는 얘기에도 모두의 깔깔대는 소리, 아침햇살과 차와 음식 냄새, 그리고 새들의 노랫소리가 어우러져 또 한 그릇의 맛있는 반찬이 돼.
아이는 이제 또 다른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어. 그러고도 많은 시간을 보내.
눈치챘듯이 그 아이는 바로 나야.
나는 길고 지루하지만 투쟁 같은 세월을 지나면서 나그네 같은 인생이 너무 길다 생각했어.
그런데, 이게 뭐야? 지금은 하루하루가 이상할 정도로 빨리 지나가. 마치 어느 순간부터 지구가 빨리 돌고 있는 것처럼 말이지.
아이 같은 투정도 해보지 못하고, 돌봄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나는 참 씩씩하게 잘 살았다고 자부해.
지독한 가난, 아비 없는 설움, 그리고 엄마마저 잃은 고아. 그게 내 정체성이었더래도 나는 성실하고 바르게 어른이 되었어.
부모 없던 나는 시부모님을 독차지해, 받지 못했던 부모의 정을 마음껏 누리고 있어.
그리고 부모님과 한집에 사는 게 이런 안정된 느낌이 처음엔 생소한 감격이었어.
부모님은 처음부터 "너는 내 딸이다. 이제껏 혼자 고생 많았다."라고 손을 잡아주셨어.
달빛이 고와. 어둠의 두려움 따위는 이제 없어.
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부모님께 끝없는 응석을 부리면서 마음의 어둠을 쓱싹쓱싹 청소해.
지나고 보면 우리는 모두 집을 찾아가는 나그네 같아. 가는 길에 강도 건너고 산도 넘겠지. 때로 넘어져 좌절도 하고 강도나 사고를 만날 위기도 많았겠지. 그렇지만, 확실한 건 이 모든 게 다 지나간다는 거야. 아픈 시간뿐만이 아니라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도 말이야.
어떤 사람은 일찍 마음의 집을 찾고, 또 다른 이는 이 땅을 떠나서야 집에 도착하지. 나의 길지만 짧은 여정 속에서 감사가 가득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사실을 깨달아서 일 거야.
나 자신인 아이도, 당신 자신의 아이도 어차피 도착할 그 집에 이를 동안, 모든 수고와 눈물만 기억하지 않게, 많이 웃고, 많이 사랑하자.
그리고 마침내 집에 모여 앉아 옛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그때 참 잘이겨냈다. 행복했다고 추억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