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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 Nov 23. 2024

사람에 대하여

4. 어쩌다 오늘

아침 햇살보다 이른 알람에

충직한 마음 다잡아

정신도 깨기 전에 솜 젖은 육신을 일으켜

허깨비 마냥 밥을 지으러 가.


평생을 해 온 일상조차

처음 겪는 일처럼 낯선 날


내 영혼은 이 땅에 삶에 익숙지가 않아

늘 어설프고 낯설기만 할까 ...

익숙한 이들이 부럽.

노련한 그들이 부럽.


구름을 걷듯 운전을 하고

왁자지껄 아이들과 수업을 해.

아이들은 행복을 노래 부르고

짜증을 소리 질러 대.


꿈틀꿈틀 잠시도 멈추지 않는 생명들과

숨을 쉬고 있으나 감각이 없는 나는

연두색 새순과 적갈색 낙엽처럼

한 공간에 안 어울리게 달려있어.


괜찮은데 괜찮지 않은

불행은 아닌데 행복도 아닌

빠른 시간에 지루한 일상

황사 같은 공기가 울렁울렁 거려.


"이럴 땐 어쩌지?"

내 물음에 중2병 제자가 조언한다.


"운동을 하세요. 저도 우울한 게 운동

하면서 나아졌어요."


아. 이게 우울이구나.

아무렇지도 않게 찾아와서

가만히 나를 조정하는 이것이

우울이구나!


"그래야겠다! "

수년간 가르치기만 했던 나는

겸허히 제자의 조언에 감사해.


삶의 많은 언덕을

괜찮은 듯, 안 아픈 듯

기어오르고 달려온 지금껏

외면하고 인정 못했던 우울.


열다섯 어린 제자도 알고 있는 걸

나는 몰랐어.


앞만 보고 생존하려다

소중한 이들을 지키려다

외면하던 나의 외침이, 고독이,

불현 듯 찾아 올 때마다 밀어냈는데

마침내 이렇게 둑을 무너뜨릴것을. ..


안돼!


고개를 든다.

하늘을 본다.

운동화 끈을 매자.

그리고  


우울의 수문을 무겁게 밀어 열고

흘려보내야지.


오늘은 햇살보다 늦은 알람이 울려.

아침 운동을 나가야지.

아무렇게 또

아무렇지도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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