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지나온 날을 되돌아보니, 내 살아갈 날들이 괜찮았다.
지난 며칠간 우울에 빠져 있었다. 밑도 끝도 없는 우울감으로 회사에 나가기가 싫었다. 매우 노력했으나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것 같은 2023년을 생각하니, 억울하기도 하고 앞날이 불안하기도 했다. 그와 더불어 회사는 전쟁 같았고 그 상황에 많은 사람들은 상처 입었고 교활하고 이기적인 사람은 살아남은 거 같았다.
영화 피아니스트를 생각했다. "전쟁이 끝나면 무엇을 하겠냐고" 주인공에게 물으니 주인공은 "연주를 해야죠"라고 답했다. 나는 그 포스터를 출력해 내 책상에 붙였다. 이 전쟁통에서도 나는 기록관리를 하고 전쟁이 끝나도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내부적은 설득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우울했고, 여전히 절망적이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 성과를 낸 한 해였지만, 어느 것도 이룬 게 없는 한 해 같았다. 그리고 그 성과라는 것도 개인적으로 봤을 때 큰 성과였지, 회사에서는 인정받지 못한 거 같았다. 또한 노력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배경과 상황 속에 실수 또한 잦았다. 도전했으나 부끄러운 기억도 많았고 기록관리라는 일에서 성과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되새기는 한 해이기도 했다. 그리고 앞날도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일해야 할지 몰랐고,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시지프스의 형벌 같았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그렇게 무겁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우울의 정점을 찍은 날이 있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팩트라는 것으로 이야기되는 날.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용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여기에 온 이유, 타인의 시선이 어떠하든지, 내게 주어진 일은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에 "용기"가 났다. 그리고 아침에 일기를 썼다.
내 지나온 날을 되돌아보니, 내 살아갈 날들이 괜찮았다.
좋은 부모를 만났고, 착한 아이들을 만났다. 그리고 주위에 좋은 사람들도 많다.
늘 용기 있게 살았고, 현실적인 것에 몰두하기보다는 더 나은 삶,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 왔고, 지금 내 삶은 그것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비록 "노력=성과=성공"의 공식은 아니었지만 긴 인생을 돌아보면, 결국 될 일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긴 인생을 돌아볼 때, 내 노력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즉각적으로 이루어진 적은 없으나, 결국.... 주어졌다.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현실에 주어진 어려움을 절망하지 말아야겠다. 현실에 낙담하고 절망하며 살아왔다면 나는 이 자리에 오지 못했을 것이다. 과거를 생각하니, 마음이 나아졌다. 늘 신의 의미를 헤아렸다. 그리고 신이 내 소리를 듣고 있는지 의심했다. 아니, 듣고 계시다 생각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 속에 내 기도는 묻혀버렸다 생각했다.
그러나 과거는 내게 말하고 있다. 잘해왔다고, 늘 용기 있고 씩씩하게 해야 할 일을 해왔다고, 비록 그 상황 속에 실수도 잦고, 부끄러운 행동도 있었지만, 다시 일어서서 걸어왔다고, 그리고 다시 또 그렇게 주어진 길을 걸어갈 거라고 내가 내게 말하고 있었다.
비록 앞날이 밝아 보이지 않아도, 내가 하는 일이 사람들의 호응을 사는 일이 아니더라도, 내게 주어진 일을 나는 하는 것이고, 사람들의 호응 없는 말들은 이제 내게 아무 슬픔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리고 나의 신에게 감사기도를 드렸다. 숱한 날, 숱한 시간 나의 이 많은 생각 속에 함께 해주심을, 그리고 결국 감사를 말할 수 있음을 감사드렸다.
내가 살아온 그 시간보다 더 나은 시간을 살아가게 될 것이란 것을 나는 생각한다.
2024년의 전가희,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