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가희의 나라 Jan 19. 2024

망각을 위한 기록

기록의 힘-기억, 설명책임성, 사회정의

  아침마다 성경처럼 읽고 있는 책이 있다. 내용이 좋지만, 어렵고 성경책만큼 두껍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곱씹게 되는 책이다. 며칠 전까지 수메르라는 책에 빠져있다가(이 책도 양이 두껍기로는 대동소이하다) 지루해진 틈에 다시 기록의 힘이라는 책을 들게 되었다. 

  기록은 기억하기 위함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나도 자주 인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 우리가 쓰고 기록을 수집보존하고, 흔적을 찾고, 우리 들의 흔적을 남길 때,.... 그 흔적은 동시에 기억이고, 아카이브이고, 삭제이고, 억압이고, 안전하게 보존되어있어야 하는 것의 잊기이다. 이러한 모든 이유들 때문에, 아키비스트의 작업은 단순한 기억의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애도하는 일이다. 그리고 애도하는 작업은... 기억의 작업이지만 또한 단지 다른 것을 잊게 하는 최선의 방식이다. 데리다는 주장했다. 내가 종이에 무엇인가를 쓸 때 나는 그 종잇조각을 내 주머니에 넣어두거나 안전하게 보관한다. 그것은 바로 쓴 것을 잊기 위한 것이고, 다시 그것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이다. 한편 그러는 동안에 나는 그것을 잊는다.... 데리다는 진실화해위원회의 목적이, 과거를 사람들의 일상의 경험으로부터 분리해서 안전하게 보관하도록 함으로써, 과거를 잊게 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과감하게 제시했다. "


  이태원 압사사건, 세월호사건 등  중요한 사건에 대한 기록보존행위는 사람들에게 그 절망스러운 상황을 잊고 새 출발 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단순히 그것을 계속 기억하면서 슬픔 속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기록으로 사건을 봉인함으로써 주어진 삶을 살다, 애도해야 할 때, 우리는 그 기록을 통해 그 사건을 깨닫고 교훈하는 것이다. 기록의 보존은 망각을 위함이고, 새로운 삶을 준비할 때, 아쉬움이 없도록 준비하는 작업이다.  


  계속 기억하면 안 된다. 우리는 잊어야 할 것들을 잊어야 한다. 그러나 과거에 있었던 그 사실들은 우리 삶의 흔적이며, 그 흔적이 현재의 나이기 때문에 다음에 우리에게 그 흔적을 소환해야 할 때가 있을 때, 기록은 우리의 현재를 구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기록은 우리에게 현재를 살아가게 하고, 과거를 아쉽지 않도록 하고, 미래에 있을 고난에서 구원해 줄 것이다. 


  나의 기록은 기억이고 망각이다. 


  

작가의 이전글 2023년 한 해를 결산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