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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Mar 08. 2023

별의 시간

우리는 모두 별의 조각들이다

시작과 끝


“우리는 모두 별의 아이들이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의 놀라움을 기억한다. 비유적으로 들리는 표현이지만 실은 과학에 근거한 이야기이다.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의 대부분이 우주에서 별이 폭발할 때 나온 원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우리 인간이란 존재는 별의 먼지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과 죽음은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인간으로서의 삶이 시작이고 죽음은 끝인 것일까? 유기체의 삶이 죽음을 통해 무기체로 돌아간다면 이건 별의 관점으로 돌아가면 다시 시작인 것 아닐까?

다소 철학적으로 느껴지는 이 질문들은 내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책 <별의 시간>을 읽고 난 다음 떠올린 물음들이다.

덧붙이면 <별의 시간>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가 생전에 남긴 마지막 책이고, 내가 읽은 그녀의 첫 책이다. 처음과 시작은 이렇게 맞닿아 있다. 내겐 이 맥락 자체가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시작이란 것은 없으며 수없이 많은 시작과 끝이 반복되어 왔을 뿐이라고. 그렇기에 모든 끝도 그냥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마치 이 책에 아래 구절처럼.

온 세상이 ‘그래’로 시작되었다. 한 분자가 다른 분자에게 ‘그래’라고 말했고 생명이 탄생했다. 하지만 선사 이전에는 선사의 선사가 있었고 ‘아니’와 ‘그래’가 있었다. 늘 그랬다. 어쩌다 알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우주가 시작된 적이 없음을 안다.

—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별의 시간>, 17p


별의 시간이 남긴 흔적


다소 사변적인 말들로 이 글을 시작했다. 그건 내가 아직 클라리시 리스펙토르가 언어로 그려낸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건 너무도 강렬하여 나도 모르게 그의 세계 속 목소리를 흉내 내지 않고는 이 책에 대해 말할 수 없을 것만 같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나는 클라리시 리스펙토르가 마법처럼 뿌려놓은 시간의 흔적에서 잠시만 벗어나 이야기를 이어간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이 책을 읽기 전과 후는 조금 달라진 내가 될 수밖에 없는지.

독특한 화자의 목소리


이 소설은 매우 독특한 화자의 목소리로 시작을 한다. (아니, 사실 어디가 소설의 시작인지 애매한 구조로 되어 있다.) 화자는 호드리구 S.M이란 이름을 가진 남자 작가이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어느 순간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북동부 출신의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그런데 그가 건네는 말들은 하나같이 그녀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자기 자신 혹은 말,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무엇보다 아직 그녀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자꾸만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아아, 시작하려니 몹시 두렵다. 나는 심지어 그 여자의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 게다가 이야기는 너무 단순해서 절망적일 정도다.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처럼 쉬워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를 자세히 풀어가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이미 거의 지워져서 잘 보이지도 않는 걸 선명히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진흙 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진흙투성이의 굳은 손으로 더듬어 찾는 것이다.

—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별의 시간>, 30p


이쯤 되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이길래. 별거 아니라고 하지만 더 궁금하게 만드는 힘이 이 화자의 목소리에 있다.

화자가 쓸 수밖에 없었던 사람은 바로 북동부 출신의 가난한 타이피스트, 마카베아이다. 화자는 왜 그녀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서도 길게 이야기하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녀의 삶에 더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어째서 나는 아름답게 꾸며지지도 않은 가난 속에 사는 젊은 여자에 대해 써야 하는가? 아마도, 그녀의 내면은 이 세상과 동떨어진 공간일 것이기 때문에, 또한 저 너머에 존재하는 것들의 숨결을 느끼고 싶어 하는 내가 신성에 가닿으려면 육체와 영혼의 가난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나는 너무도 보잘것없기에 나 이상의 존재가 되고 싶다.

—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별의 시간>, 34p


그렇다. 화자는 혹은 화자를 통해 말을 하고 있는 작가는 어떤 진실을 드러내고 무언가에 가닿기 위해 육체와 영혼이 가난한 한 여자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끝났을 때 우리에게 무엇이 남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마카베아의 삶, 그리고 끊임없이 겹쳐지는 삶들


밝혔듯 주인공 마카베아는 가난하다. 동시에 무구하다. 그래서 그녀의 삶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숙연해진다. 연민과는 다른 감정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간략하게만 전달해 보면 이렇다. 악마가 신발을 잃어버린 곳이라는 알라고아스 오지에서 태어난 그녀는 두 살 때 부모님을 잃고 고모의 손에서 자란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반짝이거나 행복하지 못했다. 배고픔과 학대 속에 살면서도 마카베아는 삶이 으레 그런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 이상의 삶을 상상하거나 기대하지 않고 행복하다고 여긴다. 도시에 와서도 누구의 인정도 받지 못한 채 타이피스트로 일하다 병까지 얻는다. 그녀의 불행은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어쩌다 올림피쿠라는 이름의 남자 친구를 만나게 된다. 그 역시 가난한 직공이지만 국회의원이 되어 이름을 떨치려는 야심가이고 동시에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마치 도구로 대한다. 마카베아와 나누는 대화를 보면 그곳에 사랑이나 이해가 자리하기보다는 자기애와 야심만 보인다. 결국 그는 마카베아의 동료이자 마카베아보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글로리아를 만나기 위해 마카베아를 차버린다.

이렇게 마카베아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이상한 감정이 솟구쳤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라는 작가가 만들어낸 작품 속 화자인 호드리구가 만들어낸 인물인 마카베아의 삶을 따라갔을 뿐인데 자꾸만 그 삶에 다른 이야기들이 겹쳐 보이는 것이다. 단순한 연민의 감정이 아닌, 마케베아와 겹쳐지는 그러나 각자 다른 결을 갖고 있는 인물들을 떠올리다 보면 결국 이것이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데 생각이 미친다.

이 이야기가 언젠가 나 자신의 응고물이 될까? 그걸 어떻게 알겠는가. 만약 여기에 진실이 들어 있다면—물론 이 이야기는 지어낸 것이긴 해도 진실하다—모두가 그것을 통해 자기 안에 있는 진실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하나이기 때문이며, 또한 금전적으로 가난하지 않은 사람은 영혼이나 열망의 가난에 허덕이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황금보다 소중한 무언가를 결핍하고 있다: 연약한 본질을 결핍한 사람들.  

—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별의 시간>, 19p


그렇게 작가의 의도대로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마다 각자의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삶이 있다면 그 다음 오는 것은

그 이후의 이야기는 솔직히 내 예상을 많이 벗어났다. 그리고 깊은 흔적을 남겼다.

남자 친구의 배신으로 실의에 빠진 마카베아에게 손을 내민 건 배신의 상대인 글로리아다. 글로리아는 마카베아에게 점쟁이를 소개해 준다. 점쟁이에게 마카베아는 이제까지의 삶은 비참했으나, 이 문 밖을 나가는 순간 모든 것이 다 달라질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다. 돈이 많은 외국인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질 거라는 이야기는 그녀에게 삶의 희망이란 것을 가져다준다. 그녀가 한 번도 꿈꿔본 적 없었던 것, 희망을 가져보지 않았기에 절망도 없었던 삶. 그리고 그 순간 운명이 폭발하여 사고로 그녀는 죽음을 맞이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소설의 이야기에서 기대하는 것을 하나의 결말이다. 완결성이 있는. 그러나 이 소설의 마지막은 이야기의 결말이 아닌 우리 모두 피할 수 없는 삶의 결말, 그러니까 죽음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그것이 끝이 아니다. 이 소설의 시작을 어디라고 해야 할지 모호한 것처럼, 끝도 그냥 끝나지 않는다. 그 마지막은 한 명의 독자로서 직접 확인해 보길 권한다. 마지막 문장만 읽어서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를 것이다. 이야기를 따라간 시간 위에 마지막까지 다다랐을 때 왜 그냥 끝이 아닌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이름들

이 책의 시작이 모호하다고 한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이야기와 조금 동떨어진 내용이 앞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저자 헌사이고 다른 하나는 이 이야기의 제목이 될 수도 있었던 다른 제목들이다.

이 이야기를 다 읽고 나서 유독 눈이 가는 제목은 아래 세 개 였다.

비명을 지를 권리
어두운 바람 속의 휘파람
뒷문으로 조심스럽게 퇴장


이 밖에도 다른 제목 후보들이 여럿 나열되어 있다. 그러나 역시 <별의 시간>이란 제목이 제일 와닿는다. 광막한 어둠 속에서 태어난 우리는 모두 별의 아이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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