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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Jan 23. 2024

다시 시작되는 삶, 산후조리원에서 읽은 책

<목구멍 속의 유령>

키워드

여성 텍스트 모유 사랑 가족 연대 삶 죽음 언어 시간 사라짐 추적 기록 의미



이야기의 시작

이것은 여성의 텍스트다.
이것은 여성의 텍스트, 존재하는 것조차 작은 기적인 텍스트다. 이것이 활자라는 평범한 경이를 만나 또 다른 의식까지 들어 올려진 지금 이 순간처럼. 평범, 그래, 지금 내 몸에서 튀어나온 생각이 당신의 몸을 덮치는 것, 그 또한 평범한 일이다.

데니언 리 그리파, <목구멍 속의 유령>, 서제인 옮김, 을유문화사, 14p


이 문장은 책 전체 내용을 매우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생활, 삶을 살아가면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 분투한다. 끝없이 밀려드는  돌봄 노동 속에서도 수많은 할 일 목록을 지워가며 만족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몇 백 년 전 여자 시인이 남긴 노래 속 목소리를 다른 언어로 생생하게 담아내기 위해 부족한 시간과 노력을 쏟는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고 심지어 그 일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저자는 그 일에 시간과 정성을, 온 마음을 쓴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그 일에 정성을 다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그러면서 발견한다. 얼마나 많은 다른 목소리, 기록들이 사라졌는지. 아일린 더브라는 시인의 노래는 몇 백 년 후까지 살아남았지만, 그녀가 남긴 삶의 발자취는 사라진 지 오래다. 그의 삶의 궤적이 훗날 전해져야 할 만큼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으므로. 그러나 저자 데리언 리 그리파는 누구보다 애타게 그 기록들을 찾는다. 어떤 삶을 살았는지, 죽어서는 어디에 묻혔는지.


이 책을 읽으며 다큐멘터리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를 다시 보았다. 평생 보모로 살았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사진을 찍고 자신만의 작품 활동을 했던 비비안 마이어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의 작품을 우연한 기회에 발견한 존 말루프가 그녀의 삶을 추적해 가는 이야기는 처음 접했을 때부터 나를 매혹했다. 아니 그녀가 남긴 작품에 우선 매혹되고 그녀의 삶에 또 한 번 빠져들었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누군가가 남긴 작품에 감명을 받으면 자연스레 그의 삶을 알고 싶어 진다. 나 역시 그랬다. 비비안 마이어에 관한 책, 전기, 다큐멘터리 등 그에 대한 기록을 샅샅이 훑으며 그 궤적을 따라가고 그 삶을 내 눈앞의 현실에 겹쳐 놓는다.


그건 기적 같은 일이면서 또 평범한 일이기도 하다.



타인을 위한 하얀 잉크

47p

박스에 담긴 내 모유는 여기서 소독되고 저온 살균된 다음, 해마다 아일랜드 전역에 있는 '신생아 집중 돌봄 부서'로 보내지는 엄청난 양의 모유에 합류함으로써 나름의 작은 몫을 할 것이다. 이것은 액체로 된 메아리다.


이 책 곳곳에는 모유가 흘러넘친다.

나는 출산 가방에 종이책을 딱 두 권 넣어 이곳 조리원에 있는데 그중 한 권이 이 책이다. (그렇다 나는 지금 산후 조리원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아이에게 모유를 주며 생각한다. 모유 수유에 강박을 갖지 말자고. 누구에게나 맞는 정답과 해야만 하는 퀘스트라는 건 없다고. 첫 번째 경험할 때 너무 나 자신을 속박했던 기억이 힘들었기 때문에 마음을 편히 가지려 한다. 해야만 한다는 강박을 놓았을 뿐인데 아이는 오히려 모유를 잘 먹는다. 방금 이 문장을 다 쓰기 전에 끙끙거려 물리니 쌕쌕 숨소리를 내며 열심히 본인의 양껏 먹고 다시 편하게 잠들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정석이 아니어도 — 아니 애초에 그런 건 없으므로 —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서로의 온기를 나누어 갖는다.


이 책 곳곳에는 모유가 흘러넘치고 잊을 만하면 다시 나온다.

심지어 저자가 한쪽만 수유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어 놀란다. 균형에 대한 묘한 강박을 갖고 있는 나는 그걸 몇 년간이나 해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나였다면 ‘이래도 괜찮은 걸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며 스스로를 괴롭혔을 것이다.


이 책에 반복되는 모유에 대한 언급을 보며 의아했다. 왜 이리 모유에 접착하는 걸까? 책을 다시 한번 읽으며 앞의 텍스트들로 돌아가 헤아리니 조금 알 것도 같다.  모유는 말 그대로 저자가 보이지 않는 타자와, 외부 세계와 연결되는 끈이었던 것 같다. 나 역시 고립된 경험이 있기에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었다.


48p

하지만 내게 모유를 기부하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하나 더 있다. 늘 숨어있는 그 원동력은 바로 통제에 대한 환상이다. 내 삶에는 내가 통제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것들이 많다. … 하지만 나는 매일 모유를 생산하는 의식은 통제할 수 있다.


자기 삶에 대한 통제감 역시 중요하다. 비록 그게 환상에 불과할지라도. 그게 없다면 우리는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151p

엘렌 식수의 말이 떠올랐다.
"여성 안에는 언제나 최소한 약간의 좋은 모유가 남아 있다. 여성은 흰 잉크로 글을 쓴다.”


이 흰 잉크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 쓰이지 않는다. 타인을 향한다.

묘하게 용기를 주는 문장이다.



삶과 마주하는 새로운 양식이 필요하다


51p

만약 하루하루가 글자들로 가득한 페이지라면 나는 거기 적힌 글자들을 문질러 닦으며 내 시간을 보내는 셈이다. 그 속에서 내 노동은 내 존재를 지우는 행위가 된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이 말 아래 흐르는 감정이 그대로 다가와서 마음이 조금 아프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첫 아이를 낳고 휴직 기간 동안, 가사 노동과 돌봄 노동을 반복하며 나 자신을 잃어가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급했다. 그래서 복직을 서둘렀다.


그전까지 내 삶은 내 존재를 지우는 것과 거리가 멀었다. 반대로 내 존재를, 나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삶에 가까웠다. 성적으로, 입시로, 성과로, 타인에게서 얻는 인정으로, 나 자신의 가치와 쓸모를 입증하는 삶. 그런 삶에서는 자신의 흔적을 남들보다 두드러지게 남겨야만 한다. 그렇게 주목을 받아야 살아남는 삶에 누구보다 익숙했던 나는 딱히 인정도 받지 못하고 가시적인 결과나 변화 없이,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미덕인 삶의 방식이 낯설었다. 말 그대로 나 자신의 존재가 지워지는 것 같았다.


이제와 다시 돌아본다. 내 흔적을 지우는 것과 내 가치를 증명해야 살아남는 삶. 어떤 것이 더 슬픈지. 아니 이 질문은 잘못되었다. 무엇이 더 슬프다 할 수 없다. 새로운 존재 양식이 필요할 뿐.



번역이라는 기쁨과 슬픔

59p

내 번역은 내가 하는 집안일과 비슷한 결과를 낸다. 정말 열심히 하지만 어딘가에 틈이 생기고 만다... 그래도 나는 계속한다. 이 작업은 내게 아름다운 시들이 존재하는 이유를 알려 주었으니, 내 삶의 몇 달 정도는 전혀 아깝지 않다. 오히려 시의 끝이 다가오자 나는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느낀다. 이 시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일을 상상해 본다.

어떤 일은 들인 시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그 자체로 귀하다.


60p

나는 번역이 아니었다면 결코 접히지 못했을 여러 가지 방식을 그의 화법을 이해하게 된다. 이렇게 공을 들이는 작업에는 신중한 고민이, 속도를 늦춰 읽는 일이, 그리고 일종의 구간반복 — 다시, 또다시 그리고 또다시 돌아가 읽는 일 — 이 필요하다.

하지만 완성된 텍스트는 너무 초라해 보인다. 그건 마치 나 자신처럼 느껴진다. 균형이 틀어지고 결함을 품은 존재.


그러나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많은 것들이 다 그렇지 않은가.

완벽하게 균형이 맞지도 않고 각자의 고유한 결함을 갖고 있다.


158p

나는 내 삶에서 가져다 쓸 수 있는 모든 순간을 아일린의 순간들을 더 많이 이해하는 데 썼다. 살이 빠졌다. 나는 이 노독이 어떻게든 가치 있는 것으로 증명되리라는 생각을 하여 스스로를 위로했다. 다만 어떤 식으로 증영할 수 있을지 아직 확신할 수 없을 뿐이었다.


무언가에 내 노력을 바치지만 결과가 당장 손에 잡히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럼에도 계속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런 자기 확신이 필요하다.

저자도 결국 이 책을 내어 나에게 와닿지 않았는가.



불완전한 세상에서 불완전한 나로 살아가기


279p

견디기 힘들 만큼 피로한 건, 이렇게 한 말을 또 할 정도로 너무너무 피로한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젖을 뗄지 말지 결정하는 일을 계속 질질 끌며 미룬다. 이 아이를 꾀어서 내 몸에서 떼어 내고, 아이의 허기를 다른 어딘가로 향하게 하는 일은 나 자신을 봉사라는 안락한 은신처 밖으로 끌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283p

나는 내가 모유 수유를 계속하기에는 너무 지쳤지만, 젖을 떼겠다고 마을 먹기에도 너무 지쳤다고 깨닫는다.


데니언 나 그리파가 내 친구라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 네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고. 심지어 선택을 조금 미뤄도 괜찮다고.

다만 너는 지금 지쳤으니 조금 더 쉬어도 괜찮겠다고.

그다음에 다시 돌아오라고. 우리는 여기 있다고.



이야기의 끝이자 시작


376p

떠나고 싶지 않다. 나는 천천히 차를 몬다. 집에 가면 기운이 날 만한 일을 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숨겨둔 새 공책을 펴는 게 좋을 것 같다. 이번에는 진공청소기나 침대 시트나 대걸레나 유축기 같은 것들을 적으면서 시작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대신 새로운 말을 생각해 내고 그 말들을 따라갈 것이다. 집 쪽으로 커브를 돌 때, 나는 내가 노트의 첫 페이지에 쓸 문장을 이미 알고 있음을 깨닫는다. 시작을 담당할 메아리,

이것은 여성의 텍스트다.


그렇다 이 책은 여성의 텍스트로 시작해 여성의 텍스트로 끝난다. 우리에게 너무도 오래 사라졌던 목소리를 쫓아가며 시작하고, 다시 불러오며 끝이 난다. 그러니까 이건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다.




덧.

이 책을 읽으며 차마 옮기지 못한 부분도 있다. 너무 아파서. 그리고 어떤 부분에서는 잠시 책을 내려놓아야만 했다.

의식이 있는 존재로 태어나 죽음이라는 소멸이자 또 하나의 시작을 향해 가는 삶은 말 그대로 기적 같은 일이다. 그 기적을 끌어안고 소중하게 살아보자고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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