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자전적 이야기 "문맹"을 읽고
나는 헝가리어와 프랑스어의 차이를 알지 못한다. 한국어와 영어만큼의 차이인지, 한국어와 일본어만큼의 차이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언어학을 전공한 나는 특정 시기를 지나 습득한 외국어는 한 개인에게 모국어만큼의 지위를 획득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작년 7월부터 점심시간을 이용해 일주일에 2번 일본어를 배우고 있다. 남편을 따라 한국에 온 지 10년이 되었다는 나의 일본어 선생님은 간혹 명확한 한국어로 치환할 수 없는 단어는 한자를 사용해서, 혹은 그 단어가 쓰이는 상황을 조금씩 변형해 반복하면서 설명한다. 한자를 한국어로 읽거나 상황을 떠올리며 우리는 뜻을 유추해 본다.
요즘 같은 때 일본어를 배워 무엇하냐고 에둘러 물어보는 동료들도 있다. 영어나 중국어를 배우는 게 낫지 않겠냐고. 서른이 넘어 일본어를 공부하게 된 이유를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강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일본어를 접한 것은 중학생 때였다. 지금보다 일본어가 실용적인 언어로서의 지위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매결연을 맺은 학교를 방문하는 일정이 포함된 일본 여행에서 생애 처음 비행기를 타보았다. "하지메마시떼" "이따다끼마쓰" 같은 말을 한글로 적어 몇 마디 외웠다. 홈스테이로 배정된 집에 가서 "하지메마시떼"라고 낯선 외국어로 입을 떼자, 친구의 아버지는 화들짝 놀라며 신기하고 대단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준비했던 다른 말을 미처 하지 못했다. 일본 여행을 다녀온 후 일본어 수업을 하나 선택해서 들었는데, 가타카나 외우는 것을 포기하고 접었다.
그 뒤로도 일본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일본 영화에 아이돌 가수에 한참 빠졌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프랑스어를, 중국어를 선택했다. 나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는 거부감이 어딘가에서 튀어나왔다. 내 기억에는 없지만 교육받아왔던 식민지배의 역사 때문일까. 실용적인 도구로써 언어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반항심 때문일까.
그 모든 것에서 조금 멀어졌을 때, 그러니까 작년 6월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싶어 졌다. 일본어가 손에 닿았다. 어딘가에 서린 거부감을 인식하고 있었기에, 그 거부감에서부터도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굳이 피해 가려했던 언어를 택했다. 누가 왜 일본어를 지금 배우냐고 물으면, "덕심이죠."라고 답한다.
1월 영화 <말모이>를 보았다. 모국어를 잊어가는 사람들, 폭력 앞에서도 자신을 멸시하는 언어로 답해야만 하는 사람들, 곧 사고까지 그 언어로 하게 될 사람들. 그 무서움을 미리 깨닫고 말을 모으고 "사전"으로 엮으며 저항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영화적 서사의 재미와 별도로 나에게 "언어"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게 만들었다.
영화관 옆 서점에서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맹"을 발견했다.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책의 한 대목을 소개한 내용을 들은 적이 있어 어떤 내용인지 알고 있었다. 모국어인 헝가리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이야기. 서가에 한 권 꽂힌 이 책을 발견하고 운명처럼 느껴졌다. 언어, 자유, 글쓰기에 대한 담담하지만 치열한 기록이 나를 사로잡았다.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내가 그린 그림은 일본어로 된 책을 읽은 것이었다. 다른 언어로 적힌 책을 읽고 싶었다. 지금도 그 목표는 변함없다. 하지만 일본어로 글을 쓸 수 있을까? 작문 숙제를 하면서도 알고 있는 문장의 형태로 표현해야만 하는 한계에 자꾸만 부딪힌다.
하지만 괜찮다. 이렇게 나의 모국어로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으니. 모국어 안에서 숨 쉬듯 말이 따라온다. 숨 쉬듯 따라온 말을 숨을 고르듯 한 번 더 고르고 골라 글로 적어낸다. 글을 쓰는 과정은 앞뒤를 왕복하며 다시 짚어내는 일이지만 숨 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막힘이 없다. 생각이 명료해지고 내 눈으로 읽히는 과정 자체가 즐겁기까지 하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모국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것을 "한 문맹의 도전"이라고 말한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프랑스어를 쓰는 작가들처럼은 프랑스어로 글을 결코 쓰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쓸 것이다.
이 언어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운명에 의해, 우연에 의해, 상황에 의해 주어진 언어다.
프랑스어로 쓰는 것, 그것은 나에게 강제된 일이다. 이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한 문맹의 도전.
이 도전이 어떤 것인지 나는 가늠하지 못한다. 그러나 글을 쓰는 것은 즐거움과 동시에 도전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 한다. 자유를 위협해 오는 것들에 맞서는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