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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bokchi Sep 24. 2022

[신사마을에서 온 편지]허상에서 시작한 바질 포레스트

시골 바질 밭에서 인심났다

<신사마을에서 온 편지>는...

아빠 나이 16, 엄마 나이 20. 사는 마을은 달랐지만 동향인 부모님은 일을 하기 위해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났습니다. <신사마을에서 온 편지>는 40년 만에 고향집으로 돌아간 부모님과 카톡으로 나눈 시골살이 이야기를 엄마아빠만의 갬성을 담아 전합니다.



시골으로 택배를 하나 보냈다. 우연히 허브 씨앗을 2, 3천 원이면 살 수 있는 쇼핑몰을 발견하고 몇 개를 골라 아빠 이름으로 주문을 넣었다. 혼자 살면서 집에서 사부작사부작 요리해 먹기를 좋아하는데, 장바구니 목록에 자주 넣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허브이기 때문이다.


바질이나 루꼴라를 넣어 샐러드를 해먹기도 하고, 딜과 요거트를 섞어 그리스식 차지키 소스를 만들어먹기도 한다. 향이 강한 음식을 싫다고 고수는 안 먹어도 이 허브만큼은 자주 손이 가기 때문이다. 근데 이 작은 이파리들이 뭐 그렇게 비싼지, 한 주먹 거리가 3천 원이나 하니 말이다. 그래서 이 참에 씨앗을 키워 부모님 댁에서 자란 허브를 갖다 먹어볼까 싶은 요량이었다.


“딸, 이게 뭐냐? 뭐 택배에 씨앗이 잔뜩 있다”

-어 아빠, 그거 우리 집 텃밭에 좀 심어줘. 허븐데, 그거 서울에서 사 먹으려면 엄청 비싸단 말야.


시작은 리틀 포레스트였다

치커리, 바질, 로메인, 딜… 아빠에겐 생전 처음 들어보는 것들 투성이었을 테지. 며칠 후면 시골집에 내려갈 예정이라, 우선 몇 개만 심어달라고 부탁했다. 심은지 일주일이나 되었을까. 허브는 싹도 나지 않았다. 아무리 빨리 자라더라도 일주일 남짓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고, 날씨도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 여름이었기 때문이다. 나름 ‘리틀 포레스트’를 꿈꾸며 여름휴가 때 시골집에서 바질 파스타를 해 먹으려 했던 나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 후로 한 달이 지났을 무렵, 가족 단톡방에 사진이 올라왔다.


아빠: 바질이 많이 자랐는데 채취하여 보내줄까, 딸?



바질이 이렇게 잘 자라는 허브였나? 언뜻 보면 깻잎밭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바질을 심은 땅 가득히 파란 잎이 피어올라있었다. 바질과 루꼴라도 함께 심었는데, 루꼴라는 할머니가 잡초인 줄 알고 몽땅 뽑아 버리셨다고 한다. 바질도 할머니 살아생전 본 적 없는 풀이었을 텐데, 왜 뽑지 않고 놔두셨는진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그렇게 할머니의 밭메기에서 살아남은 바질은 몇 차례 태풍이 지나갔음에도 끄떡없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바질 밭에서도 인심 난다

추석을 쇠고 잠시 도시(?) 집에 올라온 엄마가 바질을 모두 따왔다. 살충제를 하나도 치지 않아서 군데군데 벌레가 먹은 흔적이 많았지만, 바질을 담아온 통 뚜껑을 열자마자 엄청난 향이 느껴졌다. 도시 마트에서 산 바질에서는 느껴본 적 없는 강력한 향이었다. 


이 많은 바질을 처리(?)할 방법은 하나뿐이다. 바질 페스토. 추석 연휴 내내 집에서 바질을 씻고 다듬었다. (양쪽 엄지손톱이 새까매지도록) 올리브유 반통을 넣고 견과류와 파마산가루, 소금을 넣고 믹서기에 돌리길 반복했다. 집안일 안 하려고 추석에는 시골집에도 안 내려가는데 이렇게 사서 고생이라니. 바질이 어찌나 많았는지 다 만들고 보니 500ml 유리 자에 가득 담겼다.



부모님, 남동생 분량을 남겨두고 집에 가져와, 회사 직원들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방부제가 하나도 없어 공기와 닿는 면은 색이 금방 변한다는 것 말고 바질 페스토는 너무 완벽하리만큼 맛있었다. 남은 잎은 집에서 피자를 만들어 먹을 때도 활용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바질을 풍성하게 먹어본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풍족하게 말이다.



무한한 생명력 바질, 엔들리스 바질 지옥

이제 겨우 바질을 해치웠을 무렵, 또다시 카톡이 왔다.


아빠: 바질이 너무나 잘 자라고 있음.


뭐든 과유불급이라 했지,

이 많은 장성산 바질을 또 어떻게 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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